어느 모임에서건 "조국 이슈" 못지않게 열띤 논란이 펼쳐지는 주제가 서울집값 문제다. 며칠 전 서울집값 폭등의 원인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오가는 중에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복잡한 논리가 필요 없다. 돈이 많이 풀려서 서울집값이 폭등한 거다." 단순한 논리지만 그 자리 누구도 이 말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돈이 많이 풀린 것은 금리인하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울집값이 폭등한 가장 큰 원인이 금리인하다" 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금리인하 때문에 서울집값이 폭등했다"는 일반국민의 상식
그런데 이 말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작년 10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기자간담회에서 "금리를 인상해도 집값이 오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최근에는 금통위원 중 한 명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금리인하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심지어 역대 최저수준보다 금리를 더 낮추어도 문제없다는 발언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도대체 우리 경제에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있길래 서울집값 폭등을 더 조장하면서까지 금리를 인하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기사를 꼼꼼히 읽어보았더니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논리가 참으로 황당하였다.
금통위원이라면 금리를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 생각이 합리적인지 아니면 황당한지가 집값은 물론 한국경제에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지난 9월 18일 신인석 금통위원이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내용을 짚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물가상승 위해 금리인하하자"는 금통위원의 주장
신인석 금통위원의 발언내용을 거의 모든 언론이 큼지막한 제목으로 보도했다. 어느 신문은 "신인석 금통위원 '기대인플레 하락 위험, 기준금리 내려야'"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 기사 제목이 말해주듯 '기대 인플레 하락을 막기 위해 금리를 더 인하해야 한다'는 것이 신인석 금통위원의 주장이다. "기대 인플레"란 미래의 물가상승률이다. 그러므로 미래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금리를 인하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인가? 서울집값 폭등의 주범이라고 대다수 국민이 생각하는 금리인하를 또 하자는 이유가 고작 "앞으로 물가를 더 올리기 위해서"란 말인가?
지난 10년여 일반국민이 체감하는 경제상황은 침체였다. 경제성장률은 하락을 지속했고, 가계소득은 정체 내지 감소했다. 가계의 살림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그나마 물가라도 오르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그런데 신인석 금통위원은 물가가 오르지 않아서 앞으로 국가경제에 큰 위험이 닥칠 것이 분명하니, 어떻게든 물가를 올리기 위해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금통위원이란 말인가.
"한국은행의 목표가 물가하락을 막는 것"이라는 금통위원의 인식
"기대 인플레이션의 하락을 막기 위해서는 물가목표 달성, 금융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두 가지 목표 중 전자에 가중치를 두고 정책을 펴야 할 때"라고 말했다고 기사는 전한다.
"금융안정"이란 말 그대로 금융위기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자는 것이다. 수많은 경제전문가들이 한국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가계부채를 지목했다. OECD국가들 중에서도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이 최악수준이라고 여러 국제기관들이 경고했다. 당연히 금융안정을 위해서는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
그런데 이 금통위원은 가계부채가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금리를 인하해서 가계부채가 더 증가하더라도 괜찮다는 것이다. 국내외 연구기관과 수많은 전문가의 경고를 가볍게 무시한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금리를 인하해야 하는 이유가 "기대 인플레이션 하락을 막기 위해서"다.
그가 말하는 "물가목표 달성"이 또 어이가 없다. 물가목표라고 하면 일반국민은 물가상승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행이 물가상승을 막는 기관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금통위원이 말하는 "물가목표 달성"은 물가하락을 막고 물가를 상승시키자는 것이다. 금통위원들의 생각이 일반국민의 생각과 완전 반대구나 하는 사실을 확인하곤 아연실색해진다.
"물가가 하락하면 소비가 감소한다"는 금통위원의 논리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는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가? 신인석 금통위원의 논리를 기사를 통해 확인해본다.
"기대 인플레이션 하락을 방치할 경우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제심리가 위축돼 20년간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경제의 전철을 답습할 수 있다."
소비와 생산이 감소하면 경제는 침체된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우리 경제가 답습할 거라는 주장은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부적절한 발언이지만, 소비감소가 경제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소비와 생산이 감소하는 이유가 물가가 상승하지 않아서'라는 주장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자.
"물가가 하락하면 소비가 감소하나요? 아니면 물가가 하락하면 소비가 증가하나요?"
열이면 열 모두 물가가 하락하면 소비가 증가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물건값이 싸지면 소비를 늘리지 왜 줄인단 말인가? 그런데 이 금통위원은 그 반대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도대체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인지 의문이 든다.
"물가하락이 일본식 장기침체를 초래할 것"이라는 금통위원의 발언
한국경제가 저성장 혹은 경기침체 상황인 것은 맞다. 그리고 경기침체의 가장 큰 원인이 소비감소인 것도 맞다. 가계소비가 감소하면 기업투자도 감소하고 경기는 침체된다.
중요한 점은 '왜 가계소비가 감소했는가' 이다. 지난 주 금리에 대해 인터뷰를 하면서 인터뷰하는 기자 두 명에게 질문을 했었다.
"소비를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1초도 안 되어 대답이 나왔다.
"수입(소득)이 적어서 소비를 하고 싶어도 못 합니다."
우리 국민 열 명 중 여덟아홉은 똑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소득이 늘지 않아서 소비를 못하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형편 아닌가?
경제교과서에도 '소득을 결정하는 핵심요인은 소득이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이 금통위원은 "소비를 하지 않는 이유가 물가가 상승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심지어 물가가 상승하지 않으면 "20년간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경제의 전철을 답습"할 거라는 불길한 전망까지 내놓는다.
이 금통위원의 주장대로 금리인하를 해서 물가가 상승하면 가계의 실질소득이 감소한다. 실질소득이 감소하면 소비는 더 감소할 것이다.
황당한 논리를 대문짝만하게 보도하는 언론의 의도가 궁금하다
설사 그 금통위원의 주장처럼 금리인하가 소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서울집값 상승으로 인한 부정적 효과는 긍정 효과의 몇 십배 몇 백배에 달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논리는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소비주체인 일반국민에게 물어보면 그것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금리와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실로 중대한 권한을 가진 금통위원의 황당한 주장 못지않게 어이없는 사실이 또 있다. 대다수 언론이 이런 주장을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는 점이다.
금통위원의 발언을 보도한 대여섯 개의 기사를 읽었는데, 그 논리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 기사는 없었다. 기자가 경제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상식만 있으면 그 논리가 현실과 동떨어진 허구임을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황당한 주장을 대문짝만한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그에 대해 아무런 비판을 제기하지 않으면, 일반국민은 금리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사를 토대로 금융통화위원회는 다수 국민이 금리인하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이다.
마치 잘 짜인 한편의 시나리오를 보는 듯하다. 금리결정 권한을 가진 금통위원과 여론형성의 권한을 가진 언론이 합심하여 금리인하를 실행하는 각본 말이다. 그 각본의 귀결은 서울집값의 폭등이다.
서울집값 폭등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는 수많은 국민의 심정을 대변하는 곳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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