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강경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파면당한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이 11일 열린 형사재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광주지법 목포지원 형사2단독 양효미 부장판사는 1980년 전교사 계엄 보통군법회의에 의해 계엄법 15조, 13조 등의 위반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이 서장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의한 재심 청구로 39년 만에 명예를 회복한 셈이다.
이준규 서장은 1980년 5월 21일과 22일 시위대 120여명이 각목 등을 들고 경찰서에 들어왔음에도 최루탄 등으로 무력 대응하지 않고 병력을 철수시킨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 서장은 사상자 발생을 막기 위해 무기를 소개하고 비무장하라는 안병하 국장의 명령에 따라 경찰서에서 병력을 철수시키고 총기의 방아쇠를 분리해 배에 실어 해경과 함께 가까운 섬인 안좌도로 옮겼다.
또한 부하 경찰들에게 시민들에게 발포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고 목포로 진입한 시민군들을 설득해 무기를 회수 목포 관내에서 단 한명의 경찰과 시민도 희생되지 않는 공적을 세웠지만 지휘권 소홀 등 혐의로 보안사에 구속돼 모진 고문을 받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유족들은 “ 505보안대에서 심한 고문을 받은 결과,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고 일어나지도 못했다고 부하직원이 증언하고 있다”며 “계엄사령부에 의해 91일 동안 고문 받고 강압에 의해 조작된 진술서에 서명할 수 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밝혔다.
또 유족들은 전두환 신군부가 유독 이준규 서장에게만 구속 고문수사 후 파면이라는 가혹한 처벌을 내린데는 정치적 배경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80년 5월 17일 김대중 대통령을 내란음모로 구속 기소한 신군부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에서 유혈사태가 있어야 내란의 증거가 확실해지는데 27일 시위 본부가 있는 목포역 진압작전에서 단 한명의 사상자도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되자 크게 분노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준규 서장이 가장 가혹하게 고문당하고 파면 당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정치적 배경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날 재심청구에 의한 무죄 선고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이 서장의 사위인 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행정학과)다.
윤 교수는 “다른 유가족들은 슬픔이 극한에 달해 소송에 나설 엄두도 내지 못했다”며 자신이 법정 투쟁에 직접 나서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오늘 무죄 선고는 유족들로선 감개무량할 결과이지만, 오늘 결과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파면무효 소송과 이에 따른 보상 청구 등 아직도 갈길이 멀다”고 강조했다.
이날 재판 결과에 대해 고 안병하 치안감의 아들 안호재 대표(안병하 인권학교)는 “사필귀정의 결과다. 80년 5월 전남경찰은 모두가 안병하였다”고 의미를 규정하며 “이번 재판 승소를 시작으로 당시 시민의 생명을 지키다가 신군부에 의해 가혹한 시련을 겪은 모든 전남경찰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 서장은 구금과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돼 5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다가 1985년 암으로 사망했으며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7월 이 서장을 5·18민주유공자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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