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경록 한국투자증권 차장의 '인터뷰' 한 편을 놓고 파장이 커지고 있다. 김 차장은 조국 법무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자산관리를 맡아온 인물이다.
유 이사장과 김 차장이 지난 8일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를 통해 밝힌 주요 내용은 △김 차장과 정 교수가 동양대 PC 하드디스크를 교체한 것은 증거인멸 의도가 아니라 '유리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였으며 △조 장관이 김 차장을 자택에서 만나 '고맙다'고 말한 것은 하드디스크 교체에 대한 감사인사가 아니라 통상적인 인사말이었다는 것 △김 차장이 한국방송(KBS)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 검찰 조사를 받을 때 검사의 PC 화면에 보였다는 것 △김 차장이 보기에 정 교수는 조 장관 5촌 조카 조모 씨의 공범이 아닌 피해자에 불과하다는 것 등이었다.
논란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증거인멸 부분과 관련해, 유 이사장이 김 차장의 증언 중 조국 법무부 장관 등 여권에 유리한 내용만을 '짜깁기' 편집해 공개했다는 논란이다. 둘째, 유 이사장의 유튜브 방송 이후 KBS가 진상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KBS 사회부 기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KBS의 '취재유출'인가 '교차확인'인가
10일 현재 시점에서, '짜깁기' 논란보다 더 큰 관심은 KBS 관련 부분이다. 이날 노무현재단이 공개한 유 이사장과 김 차장의 대화록 전문을 보면, 김 차장은 "제가 KBS에서 인터뷰를 하고 들어왔는데 그 인터뷰를 한 내용이 검사 컴퓨터 대화창에(있었다)"며 "'KBS와 인터뷰', '무슨 얘기 했는지 털어봐' 그런 내용을 제가 우연찮게 보게 됐다"고 말했다.
노무현재단은 "KBS는 8일 '알릴레오' 방송이 나간 직후 해당 방송 내용이 허위사실이라고 반박하며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면서 "방송에서 허위사실을 전달한 적이 없음을 인용한 녹취록 전문을 공개해 밝히고자 한다"고 KBS를 직접 겨냥했다. 재단은 이어 "KBS 역시 자신의 취재 내용에 왜곡이 없는지를 입증하기 위해 9월 10일 KBS 법조팀과 김 차장의 한 시간 분량 인터뷰를 공개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KBS는 김 차장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방송 당일인 지난 8일 보도자료를 내어 "취재원의 인터뷰 내용을 유출하지 않았다"며 "인터뷰 내용을 일부라도 문구 그대로 (검찰에) 문의한 적 없고, 인터뷰 내용 전체를 어떤 형식으로든 검찰에 전달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KBS는 오히려 "'알릴레오'에서 김 차장과 유 이사장은 'KBS가 인터뷰하고도 보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인터뷰가 진행된 바로 다음날인 11일 <9시 뉴스>에 2꼭지로 보도됐다"고 지적했다.
유 이사장은 '알릴레오' 방송 다음날 교통방송(tbs)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보도하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상 입장을 바꿨다. 유 이사장은 "인터뷰를 하고 그다음 날 보도가 나갔는데, 김 차장의 음성 변조된 증언으로 검찰발 기사를 뒷받침하는 한 두 문장만 잘라서 원래 이야기한 취지와 정반대로 보도한 것"이라며 "과연 이 인터뷰에서 이 뉴스가 나올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보도하지 않았다'에서 '김 차장의 의도와 정반대로 보도했다'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유 이사장은 "입건된 피의자가 굉장히 용기를 내서 인터뷰했는데 어떻게 검찰이 바로 인터뷰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사실관계를 재확인하느냐"며 KBS가 검찰에 취재 내용을 전달했다는 입장은 바꾸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KBS는 9일 오후 돌연 '진상조사위를 구성하겠다'며 자사 취재팀과 유 이사장 간의 공방에서 유 이사장의 손을 들어주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고, 이에 KBS 기자들은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KBS는 9일자 입장문에서 "외부 인사를 포함한 진상조사위를 구성해 최근 의혹이 제기된 조 장관 및 검찰 관련 취재·보도 과정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겠다"며 "시청자위원과 언론학자 등 중립적 외부 인사들이 참여해 관련 내용에 대해 충실히 조사한 뒤 최대한 빠른 시일 내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했다.
KBS는 또 "진상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조국 장관 및 검찰 관련 보도를 위한 특별취재팀'을 구성해 관련 취재 및 보도를 담당하도록 하겠다"고 밝혀 기존 법조팀을 업무에서 제외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다만 KBS는 사내 논란이 일자 '업무 배제가 아니라 법조팀은 취재를 계속하되 특별취재팀도 별도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존 법조팀'을 지휘한 성재호 KBS 사회부장은 이 같은 사측 입장에 반발해 보직 사퇴 뜻을 밝혔다. 성 부장은 사내 게시판에 쓴 글에서 "녹취록 전문을 첨부한다"며 "당시 조 장관과 정 교수는 사모펀드 투자 과정에서 운용사 투자처 등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해 왔는데, 인터뷰 과정에서 정 교수가 (이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정황 증언이 나온 것이다. 이 얘기보다 중요한 다른 맥락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유 이사장이 '김 차장의 의도와 정반대의 보도가 나갔다'고 주장한 데 대한 반박이다.
성 부장은 '김 차장 인터뷰 내용을 검찰에 유출했다'는 김 차장과 유 이사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출입기자의 통화가 '출입처와 내통한 것'이라고 한다. 검찰 수사가 순수하지 않다고 해서 검찰을 상대로 취재·보도조차 안 할 수는 없다"며 "우리는 김 차장의 피의사실을 검찰에 물은 게 아니라 그가 말한 정 교수의 의혹을 물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성 부장은 "MB 집사에게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그 집사의 의혹이 아니라 MB의 의혹과 관련된 증언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 수사 중인 검찰에 확인 시도를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비유하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수사 당시에도 그랬다"고 지적했다.
조태흠 KBS 법조반장도 사내 게시판에 쓴 글에서 "검찰 확인 과정에서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얘기했다거나 검찰이 알지 못하던 내용을 전달한 바는 전혀 없다"며 "검찰에 확인한 내용은 두 가지다. '정 교수가 2017년 초 자산관리인에게 먼저 코링크 제안서를 들고 왔다는 내용이 취재됐다. 검찰이 확보한 자료나 수사 내용에 비춰 사실에 부합하느냐' 하는 것, '정 교수가 사전에 사모펀드 내용을 알았다면 자본시장법과 공직자윤리법에 저촉되느냐'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조 반장은 "김 차장(이 KBS와 한) 전체 인터뷰의 취지는 '정 교수가 코링크도 알고 있었고, 코링크가 투자할 회사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5촌) 조 씨가 다 꾸민 일이고 정 교수는 속았던 것 같다'는 것이었다"며 "'앞에 가던 사람이 누군가 흘린 지갑을 줍는 것을 봤어요. 그런데 돌려주려던 것 같아요'라는 말이 있다면, 팩트는 '지갑을 줍는 것을 봤다'는 부분인가, 아니면 '돌려주려던 것 같아요'라는 부분인가?"라고 꼬집었다. 역시 김 차장의 인터뷰 '취지'를 언급하며 KBS 보도를 '왜곡'이라고 비난한 데 대한 반박이다.
KBS 사측의 '조사위 구성'에 대해서도 기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한 사회부 기자는 "유 이사장이 '알릴레오' 방송을 내보낸 지 겨우 하루가 지난 시점"이라며 사측의 돌연한 결정을 비판했다. 이 기자는 "법조팀 전원은 오늘 출입처가 아닌 회사로 출근했다"며 사실상 기존 법조팀 기자들이 취재에서 배제됐음을 시사하고 "대통령, 청와대, 유시민 씨, KBS가 거짓말했다고 주장하는 일부 시민들, 아니면 당장 국감을 앞두고 자리를 지켜야 하는 사장과 간부. 그 누구를 의식한 조치인지는 도통 모르겠으나, 적어도 국민의 알 권리와 진실을 고려한 조치라고는 결코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기자는 "회사를 살리기 위한 정무적 판단이라고 하지 말라"며 "그 판단으로 인해 회사는 묵묵히 제 역할을 해온 훈련된 기자들을 한 순간에 질 낮은 '기레기'로 만들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KBS 기자들은 이날 오후 긴급 기자협회 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김경록 "증거인멸 인정하는 게 맞다" 발언 삭제 논란…柳측, 사실상 '정정보도'
논란 가운데 하나인 '증거인멸 인정 발언 편집 논란'에 대해서는 이날 노무현재단 측에서 해당 내용이 포함된 대화록 전체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면서 사실상 사실관계 판정이 끝난 형국이다.
이날 노무현재단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대화록 전문에 따르면, 유 이사장이 "검찰에서는 (김 차장을) 증거인멸 피의자 겸 참고인으로 해 놓지 않았느냐"고 묻자 김 차장은 "제가 인정을 했다. 업그레이드를 하든 뭘 손을 대든, 하드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제출했지만 그 행위 자체로 증거인멸이라고 인정을 하는 게 제가 생각하기에도 맞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이에 대해 "그건 본인이 인정하고 말고와 별로 상관이 없는 것인데"라며 "(검찰 조사에서) '증거인멸이라고 생각을 안 했다'고 하는 게 맞다"고 했으나 김 차장은 "그게 안 되더라"고 말했다.
앞서 8일 '알릴레오' 방송은 정 교수의 증거인멸 혐의 부분과 관련해 김 차장이 "유리한 자료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면서 "(정 교수가 증거를) 없애라고 했으면 제가 이미 다 없앴을 것이다. 시간도 많았다"고 말한 부분은 내보냈으나 '인정했다'는 발언은 공개하지 않았다.
김 차장은 다만 조 장관이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했다는 부분과 관련해서는 "'고맙다. 집사람 도와줘서 고맙다'고 한 것"이라며 "제가 검찰에 어떻게 (기억하고) 진술했느냐 하면, 진보 인사인데 '집사람'이라는 표현을 하길래 속으로 '역시 그래도…'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검찰에 진술했다"고 했다. 김 차장에 따르면, 조 장관은 2014년부터 김 차장을 만날 때마다 정 교수와 아들 등 가족을 잘 돌봐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이는 지난 8월 28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김 차장은 자신이 생각하는 사건의 진상에 대해 "친척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정 교수가) 뭔가 들떠 있고, 그 친척이란 사람이 뭔가 (수익이) 확정적인 얘기를 하고, 그러다 보니까 저희는 본능적으로 안다. 이상하다(는 것을). 그런데 그 선을 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친척이니까"라며 "(5촌) 조 씨의 사기라고 생각하면 모든 의문점들이 해소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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