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실무협상의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미국이 계산법을 바꾸지 않으면 '끔찍한 사변'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를 두고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 가능성 언급에 이어 김 대사가 발언 수위를 높이면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역설적으로 유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지난 5일(이하 현지 시각) 미국과 실무협상을 마친 뒤 성명을 통해 강한 불만을 드러낸 김 대사는 7일 북한으로 가는 귀국길의 경유지인 베이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할 생각이 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회담이 진행되느냐 마느냐는 미국 측에 물어보라"며 "미국이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 어떤 끔찍한 사변이 차려질 수 있겠는지 누가 알겠느냐. 두고 보자"고 말했다.
앞서 그는 지난 5일 성명을 발표한 뒤 기자들과 질의 응답 과정에서 "우리의 핵시험과 ICBM 시험 발사 중지가 계속 유지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되살리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입장에 달려있다"며 위협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과 협상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스웨덴에서 발표한 성명과 마찬가지로 "추후 회담은 미국 측에 달려있다"며 "이번 회담은 역스럽다(역겹다)"는 원색적인 불만을 쏟아 냈다.
2주 후에 협상을 재개하자는 스웨덴의 제안에 대해 김 대사는 "미국이 판문점 회동 이후 100일 가까이 아무런 셈법을 만들지 못했는데 2주 안에 만들어 낼 수 있을 거 같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미국이 어떤 제안을 해야 협상을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질문에 그는 "얼마나 준비가 되겠는지는 미국 측에 물어보라"며 북한이 미국에 대해 요구한 사항 역시 미 측에 이미 제안해 놓았다고 밝혔다.
그는 협상에 대해 "미국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실망스럽다"며 "미국 측의 새로운 제안을 기대했고, 우리도 준비를 많이 했는데 새로운 방법이 없었다. (미국이) 완전히 빈손으로 나왔다"고 주장했다.
김 대사는 미국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밝힌 대목과 관련, "사실과 맞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김 대사가 실무협상 직후에 이어 북한으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기자들과 만나 미국에 대한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을 두고 미국 측의 '계산법' 변화를 촉구하는 압박성 발언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미 지난 4월 미국과 협상 시한을 올해 말까지로 정해둔 상황에서 미국의 입장이 바뀌지 않자 급해진 북한이 ICBM을 포함해 '끔찍한 사변' 등을 언급하며 미국의 입장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의 요구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한 미국은 적당한 실무협상 뒤 정상회담으로 직행하는 것보다는 북한과 실무협상을 지속하면서 협상안을 만드는 것에 주력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과 실무협상에서 북한이 만족할만한 수준의 '비핵화에 대한 가시적인 상응 조치'를 논의하기보다는, 북한 비핵화의 최종 상태(엔드 스테이트)를 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분간 북미 간 접점을 찾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북미 실무협상이 사실상 결렬되면서 11월 한-아세안 정상회의 때 김 위원장의 참석을 기대했던 한국 정부의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은 7일부터 나흘 일정으로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이번 북미 실무협상의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만나 향후 협상 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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