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분야에서 요사이 가장 큰 관심을 끌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기업과 인권'이다. '인권경영'이라고도 불리며, 기업이 어떻게 인권을 존중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기업문화 창출에 나설 것인지를 다룬다. 기업을 둘러싼 인권 리스크는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경우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가 주요 쟁점이다. 주요 이슈로는 해외사업장에서의 아동노동 및 강제노동, 현지 주민의 강제퇴거, 환경파괴 등이 포함되며, 최근에는 국내사업장이나 일터에서 벌어지는 직장 내 괴롭힘, 성폭력 및 성차별 등 인간 존엄성 문제로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세계화가 심화됨에 따라 다국적기업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글로벌 공급망이 실타래처럼 얽히면서 어디에서 어떤 인권침해와 차별이 벌어지는지 쉽게 판독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나이키의 노동권 침해, 쉡의 환경오염 사례를 시작으로 글로벌 기업들의 인권침해 사례가 널리 공유되면서 기업의 인권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졌다. IT 기업들의 세금 회피 사례나 개인정보보호 책임 등의 이슈도 인권경영의 프리즘으로 보면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한국의 간판 기업들도 각종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포스코 인도 오디샤 제철소의 경우, 2005년 인도 오디샤 제철소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나 이후 환경파괴 및 강제퇴거 문제에 직면하면서,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대우인터네셔날의 경우 우즈베키스탄에서 강제 및 아동노동 논란이 있는 면화를 구매해서 관련 업체에 공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전 세계 주요 사회책임투자자들이 대우인터네셔널을 통해 면화를 공급받은 글로벌 기업들을 압박하면서 국제적 논란으로 비화했다. 삼성전자 역시 2014년 중국 내 협력사의 아동 고용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뉴욕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중국노동감시(CLW)가 중국 광동성 둥관에 위치한 삼성전자의 협력사 공장에서 아동 및 강제노동이 발생했다고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2011년부터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들이 폐 손상을 입어 대규모 피해자가 발생하고 이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옥시, 롯데쇼핑 등 기업들이 소비자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침해했다는 논란이 확산했다. 관련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전개되고 임직원 기소와 처벌이 뒤따랐다. 최근 몇 년간 기업 내 '갑질사건'이 터지면서 기업 총수의 전횡과 프랜차이즈 본사의 가맹점에 대한 횡포 등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공분을 산 일도 있었다. 이른바 '갑질 방지법' 혹은 '양진호 방지법'이 통과하면서 기업구성원들의 인간 존엄성 문제가 불거졌다. 해당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도 이어져 기업 이미지가 하락하고, 남양유업의 경우 불매운동으로 인해 매출이 전년 대비 10% 감소하는 뼈 아픈 경험을 하기도 했다.
선진국의 대응이 심상치 않다. EU의 경우 2018년부터 500인 이상의 기업의 경우 인권을 포함한 기업의 비재무정보 공개를 법제화했다. 프랑스의 경우 2017년 5000명 이상의 기업에 대한 '인권실사'를 법제화했고, 이런 노력은 스위스, 독일 등의 유럽선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아직 기업의 비재무정부 공개가 법제화되어 있지 않고, '인권실사' 역시 정착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이해도 낮은 수준이어서 더는 뒷짐 지고 방관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다.
삼성의 경우 지난해 노동인권감독관을 선임하여, 베트남 사업장에 대해 인권영향평가를 실시하는 등 전향적인 대응을 시작했다. LG화학의 경우. 미국 IBM 및 포드, 중국 화유코발트 등의 기업과 손잡고 코발트 공급망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여 생산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노동권 침해를 획기적으로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기업이 갖는 인권존중 책임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다. 인권경영에 대한 요구도 커졌다.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의 리더십이었다. 공공기관 인권경영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수년간 기초연구를 진행했고, 2018년에는 공공기관 인권경영 가이드라인을 펴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목표와도 맞아떨어지면서 2018년부터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기준으로 인권경영체계 구축이 포함되는 성과도 거뒀다. 현재 860개가 넘는 공공기관이 인권경영선언과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사기업에도 인권경영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굿 프라이빗(Good Private)에 대한 요구이다. 최근 법무부는 인권경영 기본지침 안을 만들어 대외에 공표하고 현재 공청회를 진행 중이다. 이와는 별개로 몇몇 사기업들은 인권경영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관련 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미 기업들이 기업책임경영, 지속가능경영 등의 유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이들과 인권경영 간의 중복 문제가 쟁점으로 등장했다. 공기업과 사기업 간의 본질적 차이가 있고, 해외사업장을 실제로 대규모로 운영하는 사기업의 경우 기초 체력과 역량이 미흡한 상황에서 섣불리 제도 도입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법적 분쟁 등 의도치 않은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으며, 사기업이 처한 여건과 상황에 따라 점진적으로 인권경영을 도입해 나가는 혜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기초 투자가 부진한 상황에서 인권경영이 또 다른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부담이 된다. 기업의 잠재성과 책임성을 들어, 기준에 기준을 덧씌우는 오류는 피해야 한다. 핵심은 준법경영, 기업책임경영, 지속가능경영 등 기존의 CSR 모델들과 인권경영 모델을 조화시키는 일이다. 제도 운영 전반에서 중복을 줄이고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인권에 대한 공감대와 이해 수준을 넓혀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능력 있는 노동인권관을 임명해도, 개별사업장의 관성과 책임경영진의 편견을 깨지 못하면 개혁은 좌초할 수밖에 없다. 모든 조직 개혁이 그런 것처럼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합의와 협조, 역량 강화 없는 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인권을 다양한 사회적 책임 중 하나로 보는 좁은 견해도 경계해야 한다. 노동권의 문제는 단순한 노사관계 문제가 아니며, 존엄성의 문제는 단순한 작업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문제가 단순한 노동공이나 강제노동, 강제 퇴거의 문제로 축소되어선 곤란하다. 특히, 해외사업장이 없는 중소기업의 경우, 인권경영과는 상관없다는 인식이 생겨날 수 있다. 인권이 강조하는 핵심은 존엄성뿐 아니라, 평등과 비차별, 참여와 권능화를 핵심으로 한다. 이런 원리들이 충분히 강조되고 인권이라는 가치와 관행이 기업 내에 부드럽게 도입되고 정착될 때, 비로소 인권경영의 시대는 열릴 것이다.
*구정우 교수는 성균관대 인권과 개발센터 소장입니다.
한국인권학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한 <휴먼 라이츠 브리핑>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인권과 관련 있는 여러 학문의 최신 동향과 연구자들의 성찰을 독자들과 나누려 합니다. 그것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인권담론이 풍부해지고, 인권현안을 깊은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는 시각이 늘어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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