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군 핵폐기물처리장 유치 찬성측인 부안 주민 1천5백여명의 서명중 상당수는 부안군이 소속 공무원과 가족들에게 청원서 서명을 강요해 받아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내용의 진정서를 접수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사실을 포함해 부안군의 공무원들에 대한 인권 침해와 부안 주민들의 '자체 주민투표'에 대한 부안군의 조직적 방해 활동에 대한 주민들의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현직 공무원 3인의 양심선언 녹취록 공개**
주민투표 관리위원회의 하승수 사무처장(변호사)는 2일 오전 인권위원회에 '부안군 공무원들에 대한 인권침해와 공무원들을 이용한 주민투표 방해 행위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관리위는 진정서에서 부안군 현직 공무원 3인의 제보로 이루어진 녹취록을 공개하고, "부안군이 불법적으로 공무원과 그 가족들에게 청원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하고, 양심에 반하는 내용의 '주민투표 반대 홍보'를 지시하는 등 공무원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관리위는 또 "부안군의 주민투표 방해 행위로 합법적이고 평화로운 주민투표가 방해받고 있어서 주민들의 표현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이 침해되고 있다"면서 "부안군의 방해 행위가 더 극렬해질 것이 우려되는 만큼 인권위가 더 이상 부안군수가 이런 행위를 자행하지 못하도록 긴급구제조치"를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찬성측 주민 1천5백여명 서명, 상당수는 공무원과 가족들 것**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부안군은 2004년 1월 13일~14일에 부안군청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청원서 양식에 서명할 것을 강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익명을 요구한 부안군 소속 공무원들의 증언 녹취록에 따르면, 일부 과장들이 직원들을 한 사람씩 불러서 청원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하고, 가족들에게도 서명을 받아 올 것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서명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공무원들의 명단을 간부회의 때 공개하겠다'는 압력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제보 공무원은 "찬성측에서 서명을 받다가 크게 부족하고 주민들의 호응이 없으니까 공무원하고 공무원의 가족들에게 서명을 요구했고, 일부 협박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제보 공무원은 또 "찬성측이 받은 주민 서명 1천5백명 가운데 상당수는 공무원과 그 가족, 군청의 일용직이나 공공근로 대상자들 또 공익근무요원들"이라고 지적했다.
***주민 홍보활동으로 읍·면 동사무소 업무 사실상 마비**
매일 4백여명의 공무원들이 '주민투표 방해 홍보활동'에 동원되면서 읍·면사무소 업무는 물론 본청의 과 업무도 사실상 마비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부안군은 2월14일 주민투표 당일 새벽에 공무원들을 비상소집에 해가 질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핵심 공무원들을 시켜 각 투표구에 배치에 공무원 본인이나 가족들이 투표하는 것을 감시하도록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 공무원은 "보통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홍보를 하기 때문에, 업무가 1백% 정지했다"면서 "읍·면사무소는 물론 본청의 본연의 업무도 거의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같은 상황에서 방해 활동에 동원되는 공무원들도 매우 심적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보 공무원은 "지금 부안군청의 공무원들의 심정은 '이 시기에 내가 공무원이 돼 가지고 이런 고통을 당해가면서 주민들의 상처난 부위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를 해야하는가'라는 심각한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동네 가서 아는 선후배들 얼굴 보면 '과연 공무원으로서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주민들과의 충돌로 공무원들을 내모는 처사"**
주민투표 관리위원회의 하승수 사무처장은 "이렇게 부안군이 주민들을 자극하는 유인물을 들려서 공무원들을 주민들에게 내모는 것을 보면, 일부러 공무원들과 주민들의 충돌을 유도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면서 "아직 공무원과 주민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은 없지만, 2월에 공무원들 중 일부가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할 경우에는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현재 부안군 공무원들이 들고 다니는 유인물은 찬성측에서 배포한 유인물과 '일방적인 주민투표를 거부해야 하는 열 가지 이유'는 군청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작성 명의가 불분명한 유인물이다. 그 유인물에는 "실정법 위반", "반민주적", "무정부상태에서 초국가적 위치에 군림", "일방적 반대논리에 세뇌된 주민들"과 같은 자극적 표현들로 가득 차 있어, 주민들을 자극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하승수 변호사는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가 사실상 방관하고 있는 상황에서, 2월이 되면 부안군의 공무원들을 이용한 주민투표 방해 행위가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부당한 지시를 따라야 하는 공무원들과 방해 행위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생각하면 인권위가 긴급구제조치를 내려 주민들 편에 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 금명간 긴급구제 여부 최종결정**
국가인권위원회법 제48조에는 "진정을 접수한 후 조사대상 인권침해 행위가 계속중에 있다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고, 이를 방치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 발생의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진정에 대한 결정 이전에 진정인이나 피해자의 신청에 의하여 또는 직권으로 피진정인, 그 소속기관 등의 장에게 긴급구제조치를 권고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 인권위의 대응이 주목된다.
인권위는 인권침해 등 긴급구제조치가 필요할 때에는 위원장과 상임위원 3명이 참여하는 상임위원회를 열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번에 주민투표 관리위원회가 낸 진정에 대한 긴급구제조치 실시 여부는 금명간 결정이 내려질 전망이다.
상임위원회에서 긴급구제조치 진정이 받아들여지면, 조사국에서 현지 조사를 포함한 조사에 착수하고 11명의 위원이 참여하는 인권침해조사 제2소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을 하게 된다.
인권위의 긴급구제조치는 권고 수준일 뿐 강제력은 없으나, 지금까지는 인권위의 긴급구제조치에 따른 권고를 해당 기관은 수긍해 오는 것이 관례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