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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정부, 불도저 앞 삽질 그만두라"

박용성, 김진표 강연 맹성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30일 아침 서울 하얏트 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김진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의 강연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 최근의 정부의 화해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양자간 간극이 여전히 커다람을 느끼게 했다.

한국능률협회가 주최한 이날 최고경영자 조찬회에서는 김진표 경제부총리의 '2004년 정부의 경제정책 운영방향'이라는 강연과,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 한국경제 활성화를 위한 CEO와 기업의 과제'라는 강연이 잇따라 이어졌다.

그러나 김진표 부총리가 강연을 마치고 곧바로 자리를 뜨자마자, 강연을 시작한 박용성 회장은 "정부의 말은 그럴듯하지만 재계가 느끼는 상황은 판이하다"며 곧바로 반격을 가했다. 이 자리에는 각계 기업 대표들 3백여명이 강연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김 부총리, "투자 여건이 좋은 상황이 됐다"**

김 부총리는 이날 강연에서 "정부의 경제정책 최대 화두는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면서 이를 위한 정부의 대책과 노력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김 부총리는 "정부는 경제회복을 위해 재정 정책을 확대운영하는 노력을 해왔으며 향후 5~10년 동안 우리를 먹여살릴 새 성장동력을 찾아왔으며 서민경제 안정을 위해 부동산시장, 교육대책을 마련했다"면서 "이제 정부는 투자전략 우선 순위를 정하는 로드맵을 마련해 주력하고 있다"며 기업들이 투자에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김 부총리는 이어"투자 여건이 좋은 상황이 됐다"며, 그 근거로 내년부터 법인세가 2%포인트 인하되기 때문에 사실상 올해 투자분부터 인하 혜택을 보게 됐다는 점을 들었다.

김 부총리는 그러면서 재계의 불만을 의식한듯 "투자에 있어서 (재계 지적대로) 노사관계 안정이 중요하다"면서 "지난해 3만개의 일자리가 줄어든 것에 대해 노사 모두가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는만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정 대협약이 잘 진행되고 있어 2월12일까지는 기초안이 나올 것이며 올해 노사 분규를 작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장담했다.

김 부총리는 또 "노사문제나 환율 등은 자율에 맡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각 경제분야별로 조기경보체제를 구축해 대처에 실기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뒤 "재경부와 산업자원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기업신문고'를 설치해 기업인들의 건의사항을 적극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 부총리는 규제 철폐를 위한 정부의 노력을 소개하면서 특히 토지 관련 규제와 관련,"국토계획법 체제속에서 토지 규제가 단일하게 이뤄지도록 해 가용토지를 늘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어제 지방균형발전 선포식에서 밝혔듯 지역혁신 클러스트를 조성하는 전략이 성과를 보이고 있다"면서 "수도권 입지 규제가 제일 어려운 과제지만 수도권 투자가 불가피한 분야에 대해서는 상반기 중 규제를 완화하도록 할 것"이라면서 강조했다.

***박 회장, "3류 정치, 시대착오적 관료가 경제 발목 잡아"**

그러나 박용성 회장은 김 부총리가 강연 직후 자리를 뜨자 "피상적인 지원책일 뿐 재계가 정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면서 김 부총리의 강연을 일축했다.

'독설가'로 유명한 박 회장은 "기업들이 투자할 마음이 안나는 근본적 이유는 '반기업 정서'가 세계 금메달감인 현실과 경제의 발목을 잡는 3류 정치, 고비용 정치구조, 심각한 소비 위축, 몸통을 규제하고 깃털만 풀어주는 실속없는 규제완화, '불도저 앞에서 삽질하는 격'인 정부의 개발연대식 간섭"이라고 쏘아붙였다.

박 회장은 또 "정부와 학계 관계자들을 만나 얘기해보면 신성장동력 산업을 찾는다며 IT,BT, NT를 말하는데, 이런 것들은 기술이지 산업이 아니다"면서 "제조업에 이러한 신기술을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지가 중요하다"며 정부와 학계의 무지함을 통박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강연을 시작하면서 "95년에 1만달러였던 국민소득에서 여지껏 '게걸음'을 걸어온 지난 시기를 '잃어버린 8년'"이라고 규정한 뒤 "미국식으로 성장을 할지 아르헨티나 식으로 전락할지 한국호가 기로에 서있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세계적 컨설팅기업 매킨지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기업의 기를 살리는 정책으로 W 커브를 그리며 상승하고 있는 반면, 부정부패와 평등주의가 득세한 아르헨티나는 M 커브로 몰락하고 있다"면서 "과거 1만 달러 소득을 자랑했던 아르헨티나는 지금 2천7백달러 소득의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

***"반기업 정서, 교과서에서 조장"**

박 회장은 투자 의욕을 상실하게 하는 요인으로 우선 반기업 정서가 극심한 사회 분위기를 거론했다.

세계적 컨설팅업체 액센추어와 대한상의가 공동조사한 바에 따르면 세계 주요국가 중 반기업 정서가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또한 대한상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업호감도가 38.2점에 불과했고 기업의 본분을 묻는 질문에 "부의 사회환원'을 꼽는 응답자가 47%나 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미쳤습니까. 사회환원하려고 돈 벌게?"라면서 "환원하려면 주주한테 해야죠"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왜 이런 응답들이 많은가 알아보니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해 강력하게 시정을 요구해 앞으로 많이 바뀔 것"이라고 최근 자신이 고교 교사들을 상대로 한 강의의 성과에 대해 기대를 나타내기도 했다.

***"기업의 정치자금 제공 금지하면 편법 제공으로 부담만 커져"**

이어 박 회장은 우리 나라 정치 수준을 개탄하며, 최근 정개특위 소위가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정치자금법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나타내 주목을 끌었다.

박 회장은 "대선 비자금 문제로 5년마다 주기적으로 경제가 마비되고 대외신인도가 크게 추락해 왔는데, 이제와서 기업으로부터 일절 돈을 받지 않겠다고?"라고 반문하면서 "일부에서는 기업들이 왜 정치인들에게 돈을 줘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지만 어느 정도는 기업들이 자금을 제공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로 박 회장은 "노동자들은 불만이 있으면 여의도에 몰려가 시위를 할 수 있지만 경영자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느냐"면서 "기업들은 시위 대신 정치자금으로 자신들이 바라는 의사 표시를 해온 것"이라고 정치자금이 일종의 로비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처럼 의원 1인당 선거비가 1천만원도 안드는 정치환경이라면 모르지만 기업들이 자금을 내지 않는다면 편법적인 방법이 동원돼 오히려 실제 부담이 커질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기업의 임원들이 개인적으로 돈을 내게 한다면 사실상 기업이 월급을 대폭 올리는 등 편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고 박 회장은 말했다.

박 회장은 따라서 "5천만원 등 한도를 정하고 이를 초과하면 엄격하게 처벌하는 등 지킬 수 있는 현실적 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 관료들 이제 '불도저 앞 삽질' 그만"**

박 회장은 정계에 대한 비판에 이어 관료들이 지난 70년대 개발연대 기업을 지도하던 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관료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박 회장은 "당시는 대한민국 자체를 박정희라는 대주주가 회장으로 있으면서 관료들이 CEO였고 기업인들은 하청업체들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면서 "최고 엘리트들이 기업인들에게 '너는 이것을 하면 된다'고 하면 여기에 따르면 모두 돈 벌고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지금은 경제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으며 민간 부분이 훨씬 앞서고 있는 상황인데도 정부 관료들이 '내가 아니면 누가 살피랴'는 생각으로 기업규제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회장은 "속된 말로 이제 정부가 간섭을 하면 '불도저 앞에서 삽질하는 셈'이 됐다"며 실질적 규제완화를 요구했다.

***"중국은 기업들 탈출구 못돼"**

박 회장은 정계와 정부가 기업을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한 탓에 기업의 엑소더스(탈출)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좁은 땅어리에 사는 우리 국민들이 이민가는 것은 좋은 일이나 기업이 이민을 가는 게 정말 큰 일"이라면서 "단순 노동집약형 산업이 해외이전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IT 등 첨단분야가 이전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경영자들 중에는 중국 진출을 해결책으로 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면서 "그러나 중국이 낮은 생산비, 풍부한 소비력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기대는 결국 낭패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삼성, LG, 포스코 등 막대한 투자를 선행할 수 있는 일부 대기업이나 차별적.독자적 기술을 적용한 제품으로 중국에 진출하는 경우는 성공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대개 실패를 했다는 것이다.

***"기업 투명경영은 필수나 집단소송제는 잘못"**

박 회장은 끝으로 기업 경영자들의 자성도 필요하다는 점을 덧붙였다.

그는 "집단소송제와 대표소송제가 현실로 다가온 상황에서 투명경영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게 됐다"면서 "CFO(최고재무책임자)를 통한 내부 통제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앞으로 자금 조달도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박 회장은 그러면서도 시민단체와 소액주주들이 요구해온 집중투표제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기도 해 앞뒤 모순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집중투표제는 기업규제의 전형으로 세계적으로도 칠레, 멕시코, 러시아, 미국 등 4 ~ 5개 국가만 적용하는 제도"라면서 "선진국으로 알려진 미국의 경우에도 기업활동이 거의 없는 노스다코타와 사우스다코타 등에서만 적용하는 제도" 라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집중투표제하에서는 5명의 이사를 선임하려고 할 경우 83% 이상의 지분율을 가져야 해 사실상 경영권을 위협하는 제도 "라고 말했다.

박 회장의 이날 강연은 최근 정부의 화해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재계의 대정부 불신이 얼마나 큰가를 새삼 보여주는 동시에, 정치개혁-집단소송제 도입 등 격변하는 현실에 대한 재계의 당혹감과 불안을 보여줬다는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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