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죽은 자리에서 거듭 죽고 넘어진 그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면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변하지 못하는 것인가 답답한 생각을 하고 왔습니다. 우리가 김용균의 빛을 공유함으로써 한 발자국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 발자국을 나간다면 열 발자국, 백 발자국을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발자국을 나갈 수 없다면 영원히 아무 곳도 가지 못할 것입니다."
고 김용균 백서 <김용균이라는 빛> 발간 북 콘서트의 서두에 김훈 소설가는 직접 써온 글을 읽은 뒤, 위와 같이 말했다. 매해 2000여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안타깝다는 이야기다. (기사 아래 김훈 글 전문 게재)
지난 겨울 이런 현실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가 있었다. 2018년 12월 11일 고 김용균 사망 사고 이후 장례를 치르기까지 62일간 이어진 유가족과 비정규직 노동자, 시민들의 싸움이다.
김용균재단 준비위원회가 이를 정리해 백서 <김용균이라는 빛>을 발간하고, 24일 청년문화공간 JU동교동에서 북 콘서트를 열었다. 북 콘서트에 참석한 활동가와 고 김용균의 동료는 고 김용균 투쟁과 고 김용균에 대한 기억을 나눴다.
유족과 비정규직 노동자, 시민이 만들어낸 고 김용균 투쟁
활동가들은 투쟁 과정에서 유족의 힘과 비정규직 노동자, 시민의 연대가 결정적인 동력이었다고 회상했다.
62일의 투쟁 기간 중 59일간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와 일정을 함께 하며 수행비서 역할을 한 백승호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선전국장은 김미숙 씨에 대해 "한 마디로 그냥 엄마, 금쪽같은 아들을 둔 엄마"라며 "제 차 운행 기록을 보니 62일간 11000km를 몰았는데 그런 일정을 소화할 수 있게 한 것은 한 마디로 엄마의 힘이었다"고 말했다.
백 국장은 고 김용균 씨 이모의 역할도 컸다고 했다. 백 국장은 "경황이 없는 중에 명확한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거기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김용균 씨의 이모였던 것 같다"며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아주 냉정한 판단을 잘하시는 분이고, 어머니가 그분과 함께 다니신 것이 정말 큰 힘이 되셨던 것 같다"고 전했다.
고 김용균 투쟁과 관련한 광화문 집회를 조직했던 이사라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집행위원은 "사고 이틀만인 13일 첫 집회를 가졌고, 조직적으로 준비하는 집회가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와 시민사회단체가 모여서 하는 집회라 사람이 많이 오리라는 기대는 안 했었다"며 "그런데도 첫 집회에 300명 가까운 사람이 모이는 걸 보면서 놀랐고, 이후에도 시민의 참여가 높았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2018년 12월 23일 고 김용균 1차 범국민 추모제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김미숙 씨가 만나던 장면을 꼽았다. 이 위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1박 2일 노숙 농성을 하고 광화문으로 걸어 들어오는데 김미숙 어머님과 김용균 씨 이모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다리다 들어오는 비정규직 노동자 한 명 한 명을 다 안아줬었다"며 "노동자들도 울고 어머니도 울던 그때가 너무너무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말수가 적었던, 순한 사람 용균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고 김용균과 함께 일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날 김용균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공유했다.
장근만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는 "용균이는 말수가 많지 않은 묵묵한 친구였다"며 "용균이가 자전거를 탄 사진을 제가 찍었는데 자전거만 보면 용균이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장 씨는 "발전소에서는 이야기할 기회가 많이 없어서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며 "같이 피시방에 간 적이 있는데 게임을 잘 한다고 했는데 못 해서 놀렸더니 용균이가 화를 내서 달래주고 하면서 서로 마음을 열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이인구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는 "제가 아이가 둘인데 셋째가 있다면 용균이 나이였을 것인데 지금도 용균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오고 너무 분하다"며 "천주교 신자인데 성지에 있는 십자가를 보면 용균이의 모습으로 바뀌어 눈물로 기도드리곤 한다"고 말했다.
김용균재단,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하는 사회를 위한 한 발자국
백서를 발간한 김용균재단 준비위는 김훈 작가가 북 콘서트의 서두에서 말한 "한 발자국"을 내딛으려 하고 있다. 10월 26일 출범하는 김용균재단이 그 시작이다. 김용균재단은 고 김용균 추모 사업, 위험의 외주화 근절 투쟁, 산재 피해자 및 유가족 지원 활동 등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북 콘서트 말미에 단상에 오른 김미숙 씨는 "기업의 탐욕과 정부와 국회의 무책임 속에 죽음의 일터로 가는 수많은 김용균을 살리기 위해 연대해 준 여러분 덕에 진상을 풀 수 있었다"며 "김용균재단에 많은 사람의 힘과 마음이 모여 비정규직 없는 세상,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산재 피해 가족이 웃을 수 있는 때가 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용균재단은 앞으로도 충청권, 전주, 부산 등에서 북 콘서트를 연다. 백서 <김용균이라는 빛>은 북 콘서트 참석자 중 후원금을 낸 사람을 중심으로 배부할 계획이다.
아래는 김훈 소설가가 <김용균이라는 빛> 북 콘서트에서 발표한 글 전문.
젊은 노동자 김용균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를 점검하다가 벨트에 몸이 말려들어가서 죽었다. 향년 24세에, 결혼하지 않았다. 김용균은 하도급업체의 신입사원이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들어간 첫 직장이었다. 김용균은 신규채용자 기본교육 2일, 직무교육 3일, 모두 5일의 교육을 받고 현장작업에 투입되었다. 그날 김용균은 선임자 없이, 혼자서 작업했다.
김용균의 시신은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머리는 롤러 위에, 몸통은 벨트 아래 떨어져 있었다. 현장을 돌아본 김용균특조위는 "일터는 깜깜했습니다. 위원회의 심정도 깜깜했습니다"라고 보고서의 서두에 썼다. 발전은 빛을 얻자고 하는 사업인데 발전의 원료인 석탄은 캄캄했고, 그 석탄을 빛으로 바꾸는 과정의 노동현실은 더욱 캄캄했다.
김용균이 죽은 암흑 속에서 한줄기 빛이 살아나서 깜박거린다. 그 빛은 이윤과 제도가 인간의 생명을 압살하는 세상을 거부하는 노동의 빛이다. 김용균의 빛은 아직은 여리고 희미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그 암흑 속의 빛을 알아보고, 두렵고 귀하게 여겨서 빛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번져가고 있다.
오늘의 이 모임은 김용균특조위가 발간한 진상조사 결과 종합보고서의 의미를 여러 사람이 공유해서 김용균의 빛을 확산시키는 자리이다. 이 보고서는 석탄화력발전소의 노동현장을 주된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자본과 노동, 공공기관과 노동하는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제도적 문제는 모든 생산, 건설의 노동현장에 두루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해마다 2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재해로 목숨을 잃는다. 추락, 압착, 매몰, 붕괴, 폭발, 중독, 질식, 충돌, 익사처럼 재해의 원인은 매우 원시적이고 반복적이다. 김용균은 목과 머리가 분리되어서 죽었지만, 간과 뇌가 으깨져서 땅바닥에 뿌려지고 몸통이 터져서 흩어지고 팔다리가 꺾이고 부러져서, 노동자들은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가면서 일터에서 일하다가 일터에서 죽는다. 사고로 죽고 골병들어 죽는다. 동료가 죽은 자리에서 다시 일하다가 죽는다. 이것이 일터인가. 지구상에서 이러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무이하다. 반도체를 못 만들고 자동차를 못 만드는 나라들도 이처럼 야만적이지는 않다.
죽음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까 죽음은 무의미한 통계숫자처럼 일상화되어서 아무런 충격이나 반성의 자료가 되지 못하고 이 사회는 본래부터 저러해서, 저러한 것이 이 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죽음조차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나와 내 자식이 그 자리에서 죽지 않은 행운에 감사할 뿐, 인간은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감수성을 상실해간다. 세상과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상실하면 인간은 이념의 진영에 갇혀서 정의와 불의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지금 김용균의 빛은 비록 작지만, 인간이 잃어버린 감각들을 회복시켜주는 호롱불로 확산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노동자들의 죽음이 장구한 세월 동안 거듭되는 구조적 문제로 사기업이나 공기업의 무자비한 이윤 추구, 무한경쟁, 책임면탈을 지적하고 있다. 하도급업체가 노동자의 급여를 해마다 30% 이상씩 떼어먹었다는 보고도 충격적이다.
이윤의 추구는 기업의 본래 그러한 모습이고, 모든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된다고 하지만 인간은 비록 밥줄이 시장에 얽매여 있다 하더라도 시장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 산다. 경쟁과 이윤추구, 비용절감이 시장의 진리라고 들이대는 사람들도 있는데, 시장은 시장의 작동방식이 빚어내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해결하지 못하는 까닭은 시장은 그 문제를 시장의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인류를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경제사정이 어려울 때마다 경영자단체들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기업하기가 어려운 조건은 반기업 정서가 팽배해 있고, 법인세가 너무 많고, 안전 규제가 너무 무겁다는 것이다. 해마다 2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안전사고로 죽어나가도 그 책임은 모두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기업 오너나 고위 임원들이 일반 직원보다 백 배 이상의 급여를 가져가면서 법인세와 상속세를 깎아달라고 하면 반기업 정서는 저절로 일어선다. 반기업 정서는 기업이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 이렇게 해야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는가. 책임과 규범을 벗어던져야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는가. 김용균의 빛은 묻고 있다. 죽음의 일터를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기업가 정신은 왜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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