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두 정상이 한 걸음 더 큰 걸음을 옮겨주기를 바란다"며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촉구했다. 아울러 남북 간 평화 구축을 전제로 비무장지대에 국제기구들을 유치해 '국제적 평화지대'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4차 유엔총회에서 연설자로 나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이 한반도 상황을 극적으로 변화시킨 동력이 됐다"며 이 같이 밝혔다.
취임 후 3년 연속으로 유엔총회 단상에 선 문 대통령이 이날 국제무대에 던진 메시지는 앞선 연설 때와 마찬가지로 "한반도 평화"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지난 6월 판문점 회동과 관련해 "김정은 위원장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그 행동 자체로 새로운 평화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한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계기로 연내에 3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개최되기를 바란다는 공식 입장을 북미 정상에게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의 장은 여전히 건재하고 남과 북, 미국은 비핵화와 평화 뿐 아니라 그 이후의 경제협력까지 바라보고 있다"며 "평화가 경제협력으로 이어지고 경제협력이 다시 평화를 굳건하게 하는, 평화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 1년 반, 대화와 협상으로 한반도는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주었다"면서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은 권총 한 자루 없는 비무장 구역이 되었고, 남·북한은 함께 비무장지대 내 초소를 철거하여 대결의 상징 비무장지대를 실질적 평화지대로 만들고 있다"고 남북 관계 성과를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끊임없는 정전협정 위반이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때로는 전쟁의 위협을 고조시켰지만 지난해 9.19 군사합의 이후에는 단 한 건의 위반행위도 발생하지 않았다"면서 "특별히 알려드리고 싶은 일은 한국전쟁 당시 남과 북, 유엔군과 중국군의 최대 격전지였던 '화살머리고지'에서 지금까지 모두 166구의 유해를 발굴한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한 나의 원칙은 변함이 없다"며 전쟁 불용의 원칙, 상호 간 안전보장의 원칙, 공동번영의 원칙을 강조했다. 이는 지난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진척을 보지 못한 한국전쟁 종전선언과 북한 체제안전 보장 등 굵직한 북미 간 협상 이슈를 비롯해 남북 경제협력에 관한 논의가 조속히 진전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우선, 전쟁 불용 및 상호 간 안전 보장 원칙과 관련해 문 대통령은 "한국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 상태다.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의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이를 위해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긴 정전을 끝내고 완전한 종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상호 간 안전 보장을 위해 "한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다. 북한도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기를 원한다"며 "서로의 안전이 보장될 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빠르게 구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최근 이어진 단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 등 군사적 위협 행위 중단을 북한에 촉구하는 동시에 상응 조치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어 공동번영의 원칙을 강조하며 "평화는 단지 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 포용성을 강화하고 의존도를 높이고 공동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 진정한 평화"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남북 간에 평화가 구축되면 (비무장지대를) 북한과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것"이라고 했고, "판문점과 개성을 잇는 지역을 평화협력 지구로 지정해 남과 북, 국제사회가 함께 한반도 번영을 설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비무장지대 안에 남·북에 주재 중인 유엔기구와 평화, 생태, 문화와 관련한 기구 등이 자리 잡아 평화연구, 평화유지(PKO), 군비통제, 신뢰구축 활동의 중심지가 된다면 명실공히 국제적인 평화지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비무장지대에는 약 38만 발의 대인지뢰가 매설되어 있으며, 한국군 단독 제거 시에는 1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유엔지뢰행동조직' 등 국제사회와의 협력은 지뢰제거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비무장지대를 단숨에 국제적 협력지대로 만들어낼 것"이라며 국제사회 협력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북한이 진정성을 가지고 비핵화를 실천해 나간다면 국제사회도 이에 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국제 평화지대 구축은 북한의 안전을 제도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장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비무장지대가 평화지대로 바뀐다면,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며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교량국가로 발전할 것"이라며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 비전도 현실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악화일로에 놓인 한일 관계를 염두에 둔 듯, 동아시아 경제질서에 관한 언급도 내놨다. 문 대통령은 "과거에 대한 진지한 성찰 위에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의 가치를 굳게 지키며 협력할 때 우리는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이 일본의 과거사 불인정 때문에 촉발된 것이라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동아시아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침략과 식민지배의 아픔을 딛고 상호 긴밀히 교류하며 경제적인 분업과 협업을 통해 세계사에 유례없는 발전을 이뤄왔다"면서 "자유무역의 공정한 경쟁질서가 그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일본을 직접적으로 거명하지 않은 채, 원론적 차원에서 자유무역을 강조하는 발언으로 수위를 낮춘 것으로 풀이된다.
끝으로 문 대통령은 "한국은 국제사회와 연대하면서 평화, 인권, 지속가능 개발이라는 유엔의 목표를 실현하는데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유엔의 궁극적 이상인 '국제 평화와 안보'가 한반도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연설 직후 문 대통령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접견,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긴밀해진 한국과 IOC의 협력 관계를 확인하고 내년 도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및 개막식 공동입장 등을 논의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