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자보에서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죽을 때까지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나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대기업 하청 업체가 된 대학을 거부한다"고 외쳤습니다.
김예슬 씨는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서울의 한 사립대학교 학생입니다. 높은 등록금과 취업난 때문에 방황하고 실의에 빠져있는 세대의 솔직한 심정을 적은 그 대자보의 내용은 많은 울림을 줍니다. 그의 용기에 큰 격려와 감사를 보냅니다.
바쁜 외출 시간에 쫓기면서 이렇게 다시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개인적인 사정도 한 몫 합니다. 이 '자퇴 대자보'를 읽어보니, 구구절절 내가 둘째 아이와 벌인 논쟁들이 거의 담겨져 있더군요.
▲ "대학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나는 대기업이 요구하는 알만 낳는 닭이 아니다. 나는 알 낳은 닭이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다." ⓒ프레시안 |
둘째 아이가 지난 여름, 세 번째 자퇴를 선언했습니다. 중학교 때 한 번, 고등학교 때 한 번을 거쳐 세 번째입니다. 그 애도 김예슬 씨처럼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학교에 다녔지만, 그것이 그 아이의 자퇴를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주장은 "대학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나는 대기업이 요구하는 알만 낳는 닭이 아니다. 나는 알 낳은 닭이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저변에 깔린 가장 큰 이유는 '경쟁에 대한 환멸'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대학 등록금을 비롯한 대학 교육 과정, 대학 운영 방식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됐습니다. 무엇보다 '경쟁하기 싫다'는 그 때 그 아이의 주장을 들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부모이기 때문에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대학 졸업장만 따라"며 아이를 설득했습니다. 하다못해 그 애의 20대 친구들까지도 그랬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이란,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편한 길 중에 하나임을 부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겁니다.
부모인 나는 둘째 아이의 자퇴 선언에 대해 어느 정도 각오는 했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으로는 내 아이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세상을 살기를 바란 것이 사실입니다. 그 애가 처음으로 자퇴를 선언한 15살부터, 지난 10년의 시간은 서로에게 많은 고통과 갈등,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의 외로움이 뒤범벅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는 세 번의 자퇴 선언을 통해 나름의 주체성과 창의력, 열정과 문화적 감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인생은 공평한지라 그에 따르는 어려운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결국 부모의 요구를 애처롭게 여긴 둘째 아이는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이번에 자퇴 선언이 나온 그 대학교에 적을 두게 되었습니다. 3월 2일 새 학기를 시작해 이제 두 번째 주를 맞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김예슬 씨는 대자보에서 이 선택으로 "길을 잃고 상처받을 것"이며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해도 탑은 끄떡없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인간의 길을 '선택'하겠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용기 있는 고백입니다. 모두들 닭장에 갇힌 '닭'이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그 모든 사람의 의지와 용기는 한국 사회에 샘물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자퇴 대자보에 많은 학생이 관심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 카메라를 들고 등교한 둘째 아이도 아마 그 대자보가 붙은 장소에 들를 것 같습니다. 부모로서 둘째 아이의 자퇴 선언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한 제 한계를 새삼 깨닫습니다.
그리고 김예슬 씨를 포함해 이를 받아들인 그의 부모님, 대학 자퇴를 꿈꾸는 또 다른 아이들, 자퇴를 둘러싸고 부모와 갈등을 겪는 우리 아이들의 앞날에 행운과 평화가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자퇴가 '개인의 심각한 선택'이 아닌,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될 날을 앞당기기 위한 노력을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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