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뭄바이에서 1월16일부터 열리는 제4회 세계사회포럼에 독일 에버트재단(FES)의 초청으로 참가한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윤효원씨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동사회> 편집부장 이명규씨가 세계사회포럼 스케치를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윤효원씨와 이명규씨는 19일 열리는 독일 에버트재단이 주최하는 세계 노동계와 NGO가 참여하는 세미나를 비롯한 세계사회포럼의 다양한 고민들을 프레시안에 기고할 예정이다. 편집자.
***"가장 많이 보고 듣는 구호는 '정의'와 '평화'"**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이 1월16일 저녁 인도 뭄바이에서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는 슬로건을 내걸고 6일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이번 포럼의 개막식에서 가장 많이 보고 듣는 구호는 '정의'와 '평화'다. 본행사 시작 전부터 인도 전역과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각양각색의 참가자들은 국적과 인종, 계급과 종교, 나이와 성을 뛰어넘어 어깨에 어깨를 걸고 사회 불평등과 빈곤을 만연시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정의를, 인류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가는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평화를 소리 높여 외쳤다.
포럼이 열리는 이곳 뭄바이 고레가온의 네스코 대공원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큰 공장이 있던 곳으로 크고 작은 나무들이 낡고 조잡한 부대시설과 어우러져 우리네 육칠십년대 시골장터를 연상케 하지만, 7만명이 넘는 참가자가 내뿜는 열기와 형형색색의 깃발, 모자, 티셔츠, 벽보, 전단, 플래카드로 뒤덮여 행사장의 분위기는 한낮의 무더위와 더불어 뜨겁게 달아올랐다.
공식 행사 전이지만, 주행사장인 네스코 대공원에 자리잡은 뭄바이전시관(Mumbai Exhibition Center) 주변은 각종 단체가 벌이는 행사와 공연으로 시끌벅적했다.
행사장 외곽 담벼락에는 인도 공산당원들이 붉은 스프레이로 '자본주의․제국주의 세계화에 저항하자, 제국주의는 개혁될 수 없다'고 쓰고 있었다.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과 권리 보호'를 주장하는 전단지를 받아들고 나니, '카스트 제도 철폐'라고 쓰인 머리띠를 두른 사람이 한바탕 연설을 하고 있다. 머리 위로 '제3세계 부채탕감'이라 적힌 대형 깃발이 펄럭이고, 그 뒤로 '세계화의 충격'을 주제로 한 영화제를 안내하는 걸개그림이 붙어 있다.
근처 나무 아래에는 열대의 햇빛을 피해 빈곤에 찌든 인도 청년이 '소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낮잠을 자고, 가족으로 보이는 노파와 아이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띤 채 지나는 사람들을 원숭이 구경하듯 보고 있었다.
개막식을 위해 설치던 대형스피커가 만들어 놓은 그늘 쪽으로 동네 아줌마들과 아이들이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웠고, 행사장 구석에 마련된 70년대 우리나라 시골 초등학교에 있었던 것과 별 차이 없는 화장실을 향해 맨발의 노인이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 위로 독수리만큼 큰 새가 붉은 흙먼지로 뒤덮인 하늘을 자유롭게 활공하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주장과 요구**
개막식이 가까워지면서 행사장으로 몰려오는 수백수천 개의 깃발 속에서 "아래로부터 세계화(Globalise from Below)"와 "반전ㄱ반·신자유주의"라고 쓰인 한글 구호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옆으로 인도에 거주하는 티벳인들과 라마교 승려단이 '티벳을 평화지역으로'라고 적힌 오색 깃발을 흔들며 지나갔다. 뒤이어 인도 어린이들이 올망 조망한 두 눈을 깜박이며 "아이들을 사랑하고 어린이를 보호하라"고 뒤따랐다.
개막식 행사장 나무 그늘 밑에는 '하나님은 평화와 공의의 하나님이다'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예수회 소속 신부들이 (주최측이 준비한 제대로 닦지 않아 때로 얼룩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 있었고, 그 위로 까만 대형 헝겊에 전구로 '또 다른 세계를 건설하자'고 박아놓은 주최측 플래카드가 바람에 펄럭였다.
어둠이 조금씩 깔리기 시작하면서 한낮의 열기는 식어갔지만, 행사장의 열기는 한층 더 달아올랐다.
녹색 모자를 쓰고 전통의상을 걸친 수십 명의 인도 여성들이 '성차별 반대, 남녀평등'을 외치며 행사장을 휘저었고, 그 뒤로 한국, 미국, 브라질, 칠레에서 온 반전시위대들이 '전쟁 반대, 부시 반대'를 환호하며 무대 맞은편 행사장 가운데로 진입했다. 그 뒤를 '사회주의는 가능하다', '한국군 이라크 파병 반대' 구호가 적힌 피켓을 흔들며 아시아와 한국의 청년들이 뒤따랐고, 주변에서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농민들이 'WTO는 농민을 죽이고 있다'고 적힌 전단지를 나눠주었다.
***엿새 동안 1천2백여 세미나 열려 **
개막식에서 V. P. 싱 세계사회포럼 뭄바이 조직위원장은 현재의 세계화가 "인간보다 이윤을 앞세우고 평화보다 폭력을 앞세운 자본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이에 맞서 대안을 개발하고 연대의 틀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이번 포럼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싱 조직위원장의 개막 선언에 이어 등단한 연사들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비난하면서 세계 시민들이 정의와 평화의 염원을 한데 모아 제국주의와 국제금융기구 같은 국제적 기득권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설이 이어지면서 어둠이 완전히 내렸고, 무대 좌우로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또 다른 세계를 건설하자"는 구호를 새긴 전등 플래카드가 빛을 발했다.
16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에는 후안 소마비아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월든 벨로 필리핀대 교수, 이마뉴엘 월러스타인 뉴욕주립대 교수, 세계적으로 저명한 정치경제학자 사미르 아민 등이 연사로 참가하며, '땅, 물, 식량주권', '세계화와 국민국가', 'WTO체제 논쟁', '군국주의, 전쟁, 평화', '미디어, 문화, 지식', '정당과 사회운동', '여성과 전쟁', '세계화와 사회보장', '세계화와 그 대안', '배제와 억압-인종주의와 카스트제도', '노동과 세계', '신자유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 '종교, 민족, 언어적 배제와 억압' 등의 공식 주제와 1천2백개에 달하는 세미나가 열린다.
***"또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단병호 민주노총 전임 위원장은 윌리 마디샤 남아프리카노총(COSATU) 위원장과 함께 독일의 에버트재단(FES)이 19일 오전 개최하는 '칸쿤, 누구의 승리인가' 세미나에 연사로 나서 한국 노동자들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 사례를 발표한다. 이 세미나에는 국제 노동계와 NGO 활동가 1천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닷새 동안 이곳 뭄바이에서는 전세계에서 모인 "또 다른 세계"를 꿈꾸는 평화, 생태, 환경, 노동, 여성, 인권, 문화, 예술,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부문의 내로라 하는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보다 공평하고 평화로운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둘러싸고 격론을 벌이는 국적과 인종, 계급과 종교, 나이와 성을 초월한 '비판과 토론의 한마당'이 펼쳐질 것이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몫이라고 했던가. 일년 내내 태양의 열기로 가득한 이곳 인도 뭄바이에서는 "현재의 세계는 바뀌어야 한다"고 믿으며 "또 다른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두사라 두니야 삼바우 헤(힌두어로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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