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가 정규직이면 똥파리도 새다" "우리는 일하고 싶다" "직접고용 쟁취"
요금수납원의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 점거 12일 차인 20일, 농성장에서 만난 이미선(가명) 씨가 신은 하얀 실내화에는 요금수납원들의 바람을 담은 낙서가 가득했다. 현재 불법파견 1심에 계류 중인 이 씨는 농성 첫날부터 도로공사 본사에서 살고 있다.
이 씨에게 농성 생활의 힘든 점을 묻자 "아플 때가 가장 힘들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실제 농성장에 들어서면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도로공사는 물품과 사람이 오가는 것을 막는다며 1층 로비와 2층 로비의 창문을 전부 걸어 잠갔다. 농성장 전기가 끊기며 환기장치가 멈추는 일도 있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감기는 급속도로 퍼졌다. 250여 명의 요금수납원 중 180여 명이 감기에 걸렸다. 방한 장비는 바닥에 까는 매트 혹은 은박지 한 장이 다다.
요금수납원을 괴롭히는 병이 감기만은 아니다. 원인 모를 피부병에 시달리는 사람도 여럿이다. 이 씨는 고혈압으로 고생하고 있다. 농성 시작 후 이 씨의 고혈압 수치는 진단기준치인 140을 훌쩍 넘어 180까지 올랐다. 이 씨는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안 먹던 고혈압약도 챙겨 먹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낸다는 사실도 이 씨를 힘들게 한다. 얼마 전부터 이 씨의 남편은 전화 통화에서 "김천에 한 번 갈게"라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 씨는 남편을 말리고 있다. 가족이라 하더라도 농성장에 들어올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씨가 이런 어려움을 버티며 농성장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이유는 고용안정이라는 한 가지 바람 때문이다. 용역업체 소속으로 1년 단위 재계약을 하며 살아온 이 씨는 고용불안이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는지를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 씨가 요금수납원으로 일하는 동안 도로공사는 요금수납업무 외주화는 물론 스마트톨링과 자회사 전환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발표했다. "자회사로 가면 고용이 안정된다"는 도로공사의 말을 믿을 수 없는 이유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한 채 겪은 외주화와 이후의 고용불안
이 씨는 2007년 11월 도로공사에 요금수납원으로 입사했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따라 공공기관에 외주화 열풍이 불던 때였다. 입사 두 달여 만인 2007년 12월 31일 이 씨는 도로공사에서 해고됐다. 이 씨는 다음 해인 2008년 1월 1일 용역업체로 재입사했다. 같은 영업소에서 일하던 사람 중 절반 정도는 재계약이 되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도로공사의 일방적 결정으로 이 씨의 신분이 낮아진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이 씨가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에서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되었으며, 앞으로는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이 씨는 "하는 일은 그대로라 당시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단, 이 씨의 사장이 바뀌었다는 사실만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사장은 자신이 아는 사람을 영업소 책임자인 사무장으로 데려왔다. 이 씨 영업소의 사무장은 실무 책임자인 서무로 자신의 애인을 데려왔다. 서무는 요금수납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사무장에게 보고했다. 사무장은 다음날 이를 바탕으로 요금수납원들을 추궁했다.
사장은 고용지원금을 받기 위해 장애인 직원 비율을 높였다. 그러면서 비장애인 직원에게 "너희는 필요 없다"는 말을 하곤 했다. 장애인 직원에게는 "여기가 고아원이냐 복지원이냐" 같은 말을 던졌다. 사장들은 3년이 지나면 장애인 요금수납원을 서로 바꿨다. 경증 장애인의 고용지원금은 만 3년을 기준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단계적으로 낮아진다.
이 씨는 서무에 대해서도, 사장의 언행에 대해서도 별말을 하지 못했다. 1년 단위 재계약에서 배제될까 겁이 났다. 중년 여성인 자신이 다른 곳에서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자신도 없었다.
뉴스를 통해 알게 된 스마트 톨링, 일방적인 자회사 전환 결정
요금수납업무 외주화 때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톨링도 일방적으로 진행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스마트톨링은 차량인식 영상 장비가 고속 주행하는 자동차의 번호판을 입구와 출구에서 읽어 들여 고속도로 이용 요금을 후불 청구하는 방식을 말한다. 스마트톨링을 도입하면 현재와 같은 요금정산소는 상당수 사라진다. 이 씨는 뉴스를 통해 스마트톨링 도입 소식을 처음 접했다. 스마트톨링 도입 발표 이후 재계약 시기의 불안감은 더 커졌다.
실제 도로공사는 스마트톨링 도입 과정에서 요금수납원의 고용 대책을 공표하지 않았다. 2015년 9월 김경협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표한 도로공사 내부 자료를 보면, 도로공사는 당시 7233명의 요금수납원 중 4983명을 2020년까지 내보내야 한다고 봤다. 내부자료에는 요금수납원의 전환배치 등도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2016년 8월 스마트톨링을 공식 발표한 제1차 국가도로종합계획에 요금수납원 고용대책은 빠져 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도 도로공사는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상 정규직 전환 방식 결정은 근로자위원과 사측위원, 전문가위원의 협의를 통해 정하게 되어 있다. 도로공사는 2018년 9월 5일 노사전협의회를 통해 자회사로의 전환이 결정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당시 결정은 전문가위원 2명과 근로자위원 1명이 퇴장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전문가위원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자회사 전환은 불가하다는 이유에서 노사전협의회 중단을 선언했다.
2018년 국감에서도 윤영일 민주평화당 국회의원이 "도로공사가 가이드라인과 달리 이해당사자 대표를 뺀 상태에서 자회사 전환을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도로공사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윤 의원의 공개 질의에 "노사전협의회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정규직 전환방식을 결정할 수 없으며 이해당사자 간 합의가 원칙이다"고 답했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 같은 경험이 이 씨가 직접고용 요구와 농성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외주화를 진행할 때도, 스마트톨링을 발표할 때도, 자회사 전환을 결정할 때도 일방적이었어요. 자회사라는 게 큰 용역업체고,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한다고 하지만 해제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민간기업이 되는 거고. 자기들 필요에 따라 폐업하기도 쉽겠죠. 10년 넘게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일방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걸 봐왔는데, 자회사로 가도 구조조정은 없다는 말을 믿기는 어렵죠."
농성자들이 바라는 것, 직접고용 원칙을 바탕으로 한 교섭
8월 29일 대법원의 요금수납원 직접고용 판결 이후에도 도로공사는 노동조합과 교섭을 갖지 않았다. 이강래 사장은 해고자 1500여 명 중 대법원 판결이 난 인원 350여 명만 직접고용 할 것이고, 그마저도 수납업무를 하고 싶으면 자회사로 가야 한다는 입장을 9월 9일 기자들 앞에서 발표했다. 나머지 1200여 명도 똑같은 소송을 진행 중이며 같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다는 사실은 무시됐다.
이 씨와 같은 요금수납원들은 현재 1500명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교섭을 시작하고, 업무 내용 등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교섭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전에는 대법원 판결 받고 오라 그랬어요. 대법원 판결나니까 이번에는 기자회견 열고 그냥 가버렸어요. 저희 앞에는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어요. 교섭 자리에도 나타나지 않았고요. 낙하산 사장이라 정규직들 반대가 무서워 그러려니 싶다가도 정말 우리를 인간으로 생각한다면 이래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10여 년 동안 잘릴까 무서워 할 말을 참고 살아온 이 씨는 처음으로 하고 싶은 말을 꺼내들었다.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 2층 로비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미선 씨가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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