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반도담당 특사가 이례적으로 유엔 주재 북한대사를 직접 찾아가 만나 차기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하고, 북한은 미국에 '핵포기' 의사를 담은 문서를 보내는 등 북-미협상이 급진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 미국도 차기 6자회담 개최를 위한 조율을 시작한 데 이어 한국의 위성락 외교통상부 북미국장도 미국에 도착해 미국측과 협의를 시작할 것으로 알려지고, 북한과 일본도 납치 일본인 문제와 관련 당국자간 접촉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차기 6자회담 개최를 위한 접촉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미 한반도 담당 특사, 북한 유엔주재 대사 만나**
미 국무부의 애덤 어럴리 부대변인은 13일(현지시간) 국무부에서 “조지프 디트라니 미국 국무부 한반도담당 특사가 지난 8일 뉴욕에서 북한의 박길연 유엔주재 대사를 방문해 만났다”고 밝혔다.
어럴리 부대변인은 “이번 만남은 간략한 인사차 만남”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으나, AFP 통신은 "미국이 이례적으로 차기 6자회담 재개를 북한에 직접적으로 요청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최근 한반도 담당 특사에 임명된 디트라니 특사의 박 대사 방문 이유를 “책무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어럴리 부대변인은 “디트라니 특사가 이번 만남에서 6자회담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어럴리 부대변인은 하지만 “이번 만남이 미국이 북한과 핵문제 해결을 위한 양자 회담에 동의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이번 만남을 북핵 문제를 다루는 다자간 회담의 대안이라거나 다른 방법이라는 인상을 받아선 안 된다”며 양자회담 수용의사로 내비치는 것을 강하게 경계했다.
***북한, 미국에 핵포기 의사 밝힌 문서 전달**
그러나 이같은 부인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최근 미국이 동시 일괄타결안을 전면 접수한다면 미국의 요구대로 핵 완전철폐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문서를 미국에 보낸 것으로 알려져, 북-미 협상의 급진전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민간 정책연구기관인 국가정책센터(CNP)는 13일(현지시간) 북한 외무성의 리근 미주국 부국장이 지난해 12월 CNP로 보낸 `핵문제 해결의 제반요소들'이라는 제목의 북한 입장 설명서를 공개했다.
CNP의 모린 스타인브루너 부소장은 "우리는 지난해 10월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에서 열린 북핵 관련 세미나에서 리 부국장에게 북한의 입장을 서면으로 정리해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면서 "북한측은 지난해 12월16일 입장을 문서로 정리해 보내왔다"고 말했다.
리근 부국장 명의로 된 이 설명서는 미국이 대북한 적대시 정책을 포기했다는 판단은 미국이 ▲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불가침 담보를 북한이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제공하고 ▲ 북-미간에 외교관계가 수립돼야 하며 ▲ 북한이 한국, 일본 등 다른 나라들과 하는 경제거래를 방해하지 말아야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리 부국장은 그러면서도 미국에 대해 "미국은 동시타결안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으며 본질상 선(先) 핵포기 입장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 뒤 "시간을 끄는 것은 우리에게 결코 나쁜 것만이 아니다. 미국의 지연전술로 우리는 핵 억제력을 더욱 강화하는 길로 나갈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된다"고 주장했다.
리 부국장은 동시행동 순서는 첫번째 단계로 미국이 중유제공을 재개하고 인도주의적 식량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동시에 북한은 핵계획 포기 의사를 선포하며, 두번째 단계로 미국이 불가침을 서면 보장하고 전력 손실을 보장하는 시점에서 북한은 핵시설과 핵물질 동결 및 감시 사찰을 허용하고, 세번째 단계로 북미, 북일 외교관계가 수립되는 동시에 북한은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며, 마지막으로 경수로가 완공되는 시점에 북한은 핵시설을 해체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 부국장은 이어 북한은 다음 6자회담에서 첫단계의 행동조치만 합의해도 좋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즉 북한이 핵활동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하고 대북 정치, 경제, 군사적 제재와 봉쇄를 철회하는 한편 주변국들이 북한에 에너지 지원같은 대응조치를 취한다면 회담이 계속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는 셈이라고 것이다.
스타인브루너 부소장은 이 문서를 국무부와 백악관 등을 비롯한 정부기관들은 물론 민간 연구기관 및 전문가들에게 보냈다고 밝혔다.
***중 푸잉 국장, 미 정부 당국자 만나 6자회담 의견 조율**
미국은 대북 접촉과 함께 중국과도 차기 6자회담 관련 조율을 시작했다.
중국의 푸잉(傅瑩) 외교부 아주국장과 닝쿠푸이(寧賦魁) 북핵담당 대사 등은 13일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과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와 만나 차기 6자회담과 관련한 북한측 입장을 전달하고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방안을 미국측과 협의했다.
푸잉 국장은 아미티지 부장관과 만난 이후 ‘차기 회담을 열기 위한 진전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다”고 분명하게 답변하면서도, 보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함구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어렐리 부대변인도 이와 관련 “양국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입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해체하기 위해서 가장 이른 시일에 6자회담을 재개하자는 데 계속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모든 당사국들과 협의를 계속할 것”이라며 “우리는 그 목적에 어떻게 하면 달성할 수 있을지 그리고 차기 6자회담에 모든 당사국들이 모두 참여하게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관해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차기 회담 개최 전망에 대해서는 “미국은 회담에 개최될 수 있는 데 대해 희망적”이라며 “이번 중국과 협상은 진지하고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밖에 우리나라의 위성락 외교통상부 북미국장도 13일부터 15일까지 워싱턴에서 켈리 국무부 차관보를 비롯해 백악관과 국무부 당국자들과 만나 차기 6자회담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어서 논의 결과가 주목된다.
***일본 외무성 당국자 1년 3개월만에 북한 방문 **
일본 외무성 당국자 4명도 북한에 마약 밀수 혐의로 지난해 10월이후 구속돼 있는 일본인 남성을 면담하기 위해 13일 북한을 극비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차기 6자회담의 또 다른 걸림돌인 일본인 납치 문제도 진전을 보이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본 교도(共同) 통신은 14일 북-일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 "이들 당국자들은 북한에서 납치 피해자 가족의 귀국 문제 등도 협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을 방문한 당국자들은 외무성의 한반도 실무 담당자와 중국 베이징의 일본 대사관 직원으로 오는 17일까지 머무를 예정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일본 당국자가 북한을 방문한 것은 지난 2002년 10월 납치 피해자 5명의 일본행을 위해 방문한 이래 약 1년 3개월 만이다.
이와 관련, 북한이 작년 12월 조건부로 납치 피해자 가족의 귀국을 타진한 이후 일본 정부가 지난주 북한에 납치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정부간 협상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결과가 주목된다.
일본 아사히 신문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북한이 현재 일본에 머물고 있는 납치피해자들이 평양으로 마중을 오면 가족들을 돌려보내겠다고 밝히는 등 납치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제안한 것이다.
이같은 북한의 의사 표명은 지난 6일자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서도 엿보인 바 있다. 북한이 이날자 신문에 ‘대결에 종지부를 찍고 관계 정상화의 활로를’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게재해 대일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