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해’를 맞이한 미국에선 선거열풍이 서서히 일고 있다. 공화당은 물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가도가 기정사실이라 당내 경쟁은 없지만 민주당은 9명의 후보자가 오는 1월 19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예비선거를 앞두고 칼날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사람들이 각 당 관계자들만은 아니다. 온라인단체들도 친소성향에 따라 각 당을 비난하는 TV 광고를 내보내고 대립 성향의 온라인 사이트를 만드는 등 대리전을 통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한국의 ‘정치의 계절’ 만큼이나 첨예한 대립 양상이다.
***친공화계 ‘성장을 위한 클럽’, 하워드 딘 비난 TV 광고 시작**
TV 정치 광고가 가장 첨예한 곳은 아무래도 민주당의 본격적인 첫 예비선거가 열리는 아이오와이다. LA 타임스가 7일(현지시간)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의 세금 감면과 기타 다른 보수적 정책을 옹호하는 친공화당계 단체인 '성장을 위한 클럽'(The Club for Growth)이 7일부터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를 비난하는 광고를 시작했다.
이 광고는 한 쌍의 부부를 출연시켜 “당신들에게 1년에 1천9백 달러의 세금을 더 부과하려는 하워드 딘의 제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이들 부부가 답변하는 형식이다. 물론 이들 부부는 하워드 딘의 정책을 비난하는 답변을 함으로써 민주당 유력 주자를 비꼬고 있다.
이 광고를 기획한 성장을 위한 클럽의 스티브 무어 회장은 “이 광고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딘은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미국 중산층의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문화 엘리트들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가 광고를 내보내기는 이번이 두 번째로 무어 회장은 또 “이번 광고에 7만5천달러를 썼지만 이는 일회성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를 알 수 있도록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내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딘 진영은 물론 강력 반발하고 있다. 딘 측은 “이 광고는 공화당 지지자들을 선동하기 위한 음모”라고 일축하고 “부시 대통령의 세금 감면 정책을 폐기함으로써 연방 재정을 줄이고 중산층에게 보다 유익한 프로그램에 재정을 지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친공화계, 무브온 유사 사이트 ‘무브라이트’ 개설**
한편 친공화계의 민주당 공격은 광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친공화당계인 성장을 위한 클럽은 무브온닷오르그의 온라인 사이트에 대항하기 위해 '무브라이트'(MoveRight.org)라는 '유사 사이트'를 만든 것.
이 사이트의 첫 화면은 “변변치 못한 그룹”이라는 말로 장식돼 있다. 이 발언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어머니인 바버라 부시 여사가 지난 10월 NBC 방송의 ‘투데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모두 변변치 못한 그룹”이라고 한 데서 연유한 것. 무브라이트는 “민주당 대선 후보들을 비유하는데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친민주계 무브온닷오르그, 4개주에서 부시 대통령 비난 TV 광고 **
한편 친 공화당계 단체의 정치공세 광고 이전에 친 민주당계인 자유주의 성향의 무브온닷오르그는 이미 지난 6일부터 부시 대통령의 메디케어 법안을 비난하는 광고를 4개 주에서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 광고에서 무브온닷오르그는 “부시 대통령은 제약 회사로부터 상당한 기부금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AP 통신에 따르면 이 광고를 우선적으로 내보내는 지역은 플로리다, 오하이오, 웨스트 버지니아, 네바다 등지이며 그 비용으로만 1백20만 달러를 쓸 것으로 예상된다.
친소 여부에 따라 이들 단체가 광고를 내보내는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미국내 선거법 변화와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 제정된 미국 연방 선거법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정당에 대한 무제한 정치, 선거 자금 기부행위인 소프트 머니가 금지됨에 따라 유권자 교육과 투표권고활동 명목으로 무제한 자금 모집이 가능한 이들 정치단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게다가 이들 단체의 광고는 소프트머니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정치자금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선거가 시작되기 한 달 전에는 광고에서 후보자의 이름을 거론하지 못하도록 하는 연방 선거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무브온, 반 부시 TV 광고 경연대회 열어**
한편 무브닷오르그는 지난 6월 민주당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투표를 한 데 이어 최근에는 30초동안 반(反) 부시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하는 광고를 뽑는 TV 광고 경연대회를 열기도 했다. 무브온닷오르그는 사이트에서 이번 경연대회를 연 이유로 “부시 대통령 정책의 진실을 말해주는 광고를 제작하기 위한 가장 창의적이고 분명하고 기억에 남는 아이디어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1천5백편의 출품작 가운데 현재 15편이 최종결선에 올라있으며 입상작은 오는 12일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에 맞추어 내보낼 예정이라고 무브온(bushin30seconds.org)측은 밝혔다.
15편의 최종작 가운데는 "이라크전을 시작한 부시 대통령이 미국에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거짓말이 바로 실질적인 대량살상무기'라는 뜻을 형상화한 작품도 있다.
이 단체가 밝힌 대회 심사위원들도 쟁쟁한 사람들이라 눈길을 끈다. 다큐멘터리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마이클 무어와 ‘굿 윌 헌팅’을 만든 영화감독 거스 반 산트 등 문화, 예술계 저명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무어 감독은 지난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수상연설을 통해 부시 대통령의 대이라크 정책을 직설적으로 비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출품작 가운데 부시를 히틀러에 비유하는 작품도 **
한편 이번 출품작 가운데 부시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 두 편도 포함돼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이 6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한 편은 히틀러와 나치 군사주의 이미지를 취임선서를 하는 부시 대통령과 합성하기도 하고 부시 외교정책을 1945년 독일 전쟁범죄와 동일시했다.
다른 한 편은 히틀러와 부시 대통령이 모두 “신의 이름으로 적군을 무너뜨리기 위해 행동을 취했다”는 말을 했다고 인용하고 있다.
이 두 작품은 물론 경연대회 최종작품 15편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후 유대계 미국인들과 공화당원들의 거센 비난을 받자 무브온도 “이들 두 작품은 수준에서 떨어지며 공개되서 유감이다”며 “차기에는 좀더 효율적인 필터링 체제를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사이트에서 해당 작품을 삭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의 데일리텔레그래프에 따르면 공화당이 두 편의 광고에 대한 반감을 정치적 지지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 자체 웹사이트에 이 광고를 올리기까지 하자 무브온은 “공화당이 무브온을 공격하기 위해 더러운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이들 작품들은 모두 무브온의 광고가 아니라 평범한 미국인들이 만든 것”이라고 공세를 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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