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삼성 해고 노동자의 25m 높이 강남역 철탑 고공농성이 100일을 맞았다.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다 해고된 김 씨는 자동차 매연이 연탄재처럼 내려앉는, 한 평도 안 되는 철탑 위에서 삼성의 사과와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17일 저녁 삼성해고노동자김용희고공농성공대위는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길거리 강연과 기도회를 진행했다. 철탑 위에서 핸드폰의 카메라 플래시로 안부를 전하던 김 씨는 강연회에 앞서 전화를 통해 청중들에게 고공농성 100일이 된 심정을 밝혔다.
김 씨는 "철탑 위에 있는 사람이나 밑에서 철탑 수발하고, 연대, 응원하고 밤이면 밤마다 철탑을 가슴으로 그리는 분들이나 100일 동안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어떻게 하면 빨리 내려가 아래 계신 분들의 수고를 덜어드릴까 생각도 해보지만 삼성이 옴짝달싹하지 않으니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추워져가는 날씨와 건강을 염려하는 청중의 질문에 김 씨는 "3년 전 평창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앞에서 영하 15도 날씨에서도 외국인 기자에게 유인물을 돌리고 비닐 한 장 덮고 잔 적이 있는데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걱정하지 마십쇼. 건강합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김 씨는 "저는 삼성과 싸우라면 얼마든지 싸울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저처럼 불행한 노동자가 두 번 다시 없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철탑 아래에서 동조 농성을 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중공업 해고자도 고공농성 100일을 맞는 심정을 밝혔다. 이 씨는 "김용희 씨는 지금 '나는 건강하다, 괜찮다, 지낼 만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철탑 위가 정말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며 "그런데도 꿈쩍도 하지 않는 삼성을 향해 복직되는 그 날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만들다 해고 당해 20여년 째 복직 요구, 답 없는 삼성
김용희 씨는 삼성항공(삼성테크원)에서 노조를 만들다 1991년 해고됐다. 김 씨는 당시 삼성이 30대 초반의 건장한 청년 5명을 동원해 각목테러를 가했고, 과장에게 납치되어 15일 간 대구의 한 호텔방에 감금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김 씨는 부모님에 대한 회유와 협박, 경찰을 통한 아내 성폭행 시도 등 가족에 대한 압박도 심했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1994년 해고무효소송 대법원 결심 공판을 앞두고 삼성과 김용희 씨는 복직에 합의했다. 그러나 삼성은 김 씨를 원직이 아닌 삼성건설 러시아 스몰렌스키 지부에 배치했다. 김 씨에 따르면, 복직 후에도 삼성은 지속적으로 노조포기 각서를 요구했다. 김 씨가 이를 거부하자 1995년 6월 해고통보도 없이 출근을 가로막았다.
김 씨는 당시 삼성이 3년 대기발령 후 삼성시계로 복직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1998년 삼성시계가 없어지며 약속은 무효가 됐다. 이후 김 씨는 삼성에 복직을 요구하는 20여 년에 걸친 싸움을 시작했다. 선전, 농성, 단식 등 안 해본 것이 없었다.
법상 정년퇴임일인 60살 생일을 한 달하고 5일 앞둔 6월 5일 김 씨는 마지막으로 한 번 제대로 싸워보겠다는 마음으로 삼성본사 앞 25m 높이 철탑에 올랐다. 이후 55일 간 단식을 하기도 했다. 현재 김 씨는 "건강상태를 알아봐야 오히려 더 고민스러울 것 같다"며 의사 진료마저 거부하고 있다.
고공농성 공대위는 고공농성 한달째인 7월 5일 삼성에 문제 해결을 위한 면담 요구 공문을 보냈다. 삼성은 이에 답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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