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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음습한 과거와 결별해야 산다"

오세훈의원 불출마선언, 한나라 중진 '큰 쇼크'

한나라당내 소장개혁파 모임인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미래연대)' 공동대표인 오세훈 의원(43)이 6일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 분당직전의 심각한 공천갈등을 겪고 있는 한나라당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변호사 출신인 오세훈 의원은 서울 강남을의 현역의원으로 이번 당무감사 결과에서도 '당선 유력'인 B등급을 받았을 정도로 재선이 확실시되던 의원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오의원은 그동안 '60대 용퇴론'을 선창하며 지구당 위원장 사퇴, 후원회 해체 주장 등 정치권 누구보다 개혁적 실천을 해온 대표적 개혁파였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받은 충격은 더 크다.

***"한나라당 음습한 과거 버리고 다시 태어나야"**

오 의원은 이날 오전 한나라당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불출마 선언이 서로 '네탓'만 하는 작금의 한나라당 분란을 해소하고 '내탓이오'라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결단임을 밝혔다.

오 의원은 자신의 의정생활 4년을 회상하며 "지난 4년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부끄럽다"며 부끄러운 이유를 구체적으로 "먼저 정치 현실에 정통하지 못하면서 정치를 바꿔보겠다고 덤벼든 무모함이 부끄럽고, 잘못된 길을 가는 모습을 보고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묵인한 무력함이 부끄럽고, 묵인을 넘어서서 어느 사이 동화되어간 무감각함이 부끄럽고, 미숙한 자기 확신을 진리인 양 착각한 무지함이 부끄럽고, 세계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심 무시하고 배척한 편협함이 부끄러우며, 그리고 이렇게 부끄러운 자신의 입으로 역사에 공과 과가 있음을 애써 무시하고 선배들께 감히 용퇴를 요구한 그 용감함이 참으로 부끄럽다"고 적시했다.

오 의원은 특히 지난해 9월 연찬회때부터 자신이 '60대 용퇴론'을 펼쳤던 이유와 관련, "흔들리는 나라를 살리려면 정치를 바로 세워야 하고, 정치를 바꾸려면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바뀌어야 하고, 한나라당을 바꾸려면 사람을 바꾸어야 한다는 조급증 때문이었음을 이해하여 달라"고 선배 중진의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오 의원은 “정치생활을 하며 현실과 이상 사이의 힘겨운 갈등에 가슴아파했다”며 “이것은 정치개혁과 깨끗한 정치의 실현을 위해 참여한 내게 견디기 힘든 자기모순이었으며 커다란 고통이었다”라고 말했다.

오 의원은 이어 “정치개혁의 실현을 목표로 삼았던 시대에 오히려 ‘개혁의 상실’을 경험했으며, 그 현실에 대해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정치 개혁의 한계를 인식하고 정계은퇴 선언을 했다.

오 의원은 이번 정계은퇴 선언과 함께 정치권과 한나라당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오 의원은 “이러한 결정이 지난 번 용퇴론 제기했던 것과 똑같은 맥락”이라며 “많은 선배들이 스스로의 거취를 돌아보는 하나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선배들의 자진 불출마를 압박했다.

오 의원은 “조그마한 기득권이라도 이를 버리는 데에서 정치개혁이 시작된다고 주장했던 대로 이제 실행하려 한다”며 “이번 선언이 정치권의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 의원은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공천 내홍은 불가피한 과정”이라며 “한나라당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는 국민들이 연상하는 음습했던 과거는 이제 떠나보내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오 의원은 “이번 나의 불출마가 그러한 미래지향적인 정당을 만드는 조그마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나아가 정치권 전반에 ‘내 탓이오’ 정서가 만들어지는 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 의원은 다른 소장파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은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오 의원은 향간에 떠도는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해서도 “시장 선거가 2년이나 남았는데 벌써 그만두는 사람 있냐”며 일축했고, 열린우리당 등의 입당설에 대해서도 “그런 질문 좀 하지 마라”며 다소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오 의원은 “1년간 공부를 하고 본업인 변호사로 돌아가려 한다”며 “환경단체에 소속됐었던 만큼 그 쪽에서 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발적 총선 불출마 이어질듯**

오세훈 의원의 전격적인 총선 불출마선언은 당무감사결과 유출로 분당직전의 극한대립을 해온 한나라당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며, 향후 공천갈등 전개과정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오 의원의 결단은 현재의 극한대립상태로 가다가는 총선전 분당사태가 불가피하며 그결과 한나라당의 궤멸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60대 용퇴론' 등 문제 중진의원들의 사퇴를 앞장서 주장해온 자신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공천갈등을 생산적 방향으로 전개하기 위한 고뇌의 산물이라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따라서 오 의원의 총선 불출마로 한나라당내 공천개혁의 목소리가 한층 힘을 얻는 동시에, 그동안 내심 총선 불출마를 고민해온 상당수 중진의원들의 자발적 총선 불출마 선언을 유도해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오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한나라당에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은 강삼재 김종하 김찬우 박헌기 윤영탁 김용환 양정규 주진우 한승수 의원 등 10명으로 늘어났으며, 한나라당 출신으로 국회의장이 되면서 탈당한 박관용 국회의장을 포함할 경우 11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이밖에 한나라당내 10여명의 중진급 의원들이 총선 불출마를 고심중인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의원 숫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다음은 오 의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문과, 오 의원이 지난해 9월이래 자신의 홈페이지에 실었던 '60대 용퇴론' 등 정치개혁 관련 4편의 글의 전문이다.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2004.1.6)**

저는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새로운 한 세기를 여는 길목에서 치러진 2000년 총선은 우리 정치의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그 동안의 '그들만의 낡은 정치'를 버리고, '국민과 함께 하는 우리의 정치'로 거듭나야한다는 과제가 주어졌던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과제를 실현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현실정치에 발을 디뎠고, 한나라당을 통해서 우리 정치의 누적된 잘못을 고쳐보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분적이나마 국회운영의 합리화와 제왕적 총재제 폐지라는 작은 결실을 만들어 내는 데 일조했음에 위안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많은 좌절과 실패가 있었습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힘겨운 갈등에 가슴아파했고, 이것은 정치개혁과 깨끗한 정치의 실현을 위해 참여한 제게 참으로 견디기 힘든 자기모순이었으며 커다란 고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정치개혁의 실현을 목표로 삼았던 시대에 오히려 '개혁의 상실'을 경험했으며, 그 현실에 대해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4년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먼저 정치 현실에 정통하지 못하면서 정치를 바꿔보겠다고 덤벼든 무모함이 부끄럽고, 잘못된 길을 가는 모습을 보고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묵인한 무력함이 부끄럽고, 묵인을 넘어서서 어느 사이 동화되어간 무감각함이 부끄럽고, 미숙한 자기 확신을 진리인 양 착각한 무지함이 부끄럽고, 세계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심 무시하고 배척한 편협함이 부끄러우며, 그리고 이렇게 부끄러운 자신의 입으로 역사에 공과 과가 있음을 애써 무시하고 선배들께 감히 용퇴를 요구한 그 용감함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흔들리는 나라를 살리려면 정치를 바로 세워야 하고, 정치를 바꾸려면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바뀌어야 하고, 한나라당을 바꾸려면 사람을 바꾸어야 한다는 조급증 때문이었음을 이해하여 주십시오.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제 자신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조그마한 기득권이라도 이를 버리는 데에서 정치개혁이 시작된다고 주장했던 대로 이제 실행하려 합니다. 그러한 고민의 산물이 지난번 지구당위원장직 사퇴에 이은 이번 불출마이며, 이것이 정치권의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지금 한나라당은 공천과 관련한 내홍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나라당이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는 국민들이 연상하는 음습했던 과거는 이제 떠나보내야 합니다. 그것이 미래의 희망을 담아낼 수 있는 당으로 재탄생하는 길이라 믿으며, 이번 저의 불출마가 그러한 미래지향적인 정당을 만드는 조그마한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나아가 정치권 전반에 '내 탓이오' 정서가 만들어지는 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를 드리고, 아쉬움과 실망을 남기게 된 점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나 국회만이 국민을 위하는 유일한 장소는 아닙니다. 어디에서든 정치개혁의 완성을 위하여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아울러 성숙한 정치문화를 만드는 데에도 노력할 것입니다.

그동안 지켜봐 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고언을 드립니다. '박수를 받으면서 떠나십시오'(2003.9.2)**

선배님. 불면의 며칠을 보내고서야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실상 당을 쇄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감과, 누군가는 나라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한나라당의 환골탈태라는 시대적 요구에 불을 지펴야 한다는 초조감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연찬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기 시작하면 감정이 이성을 앞서 자칫 예를 지키지 못할 것만 같아 이렇게 글을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나라를 안정되게 이끌고, 국민 대다수가 정부를 신뢰한다면 오히려 우리의 이런 고민이 조금 줄어들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쩌겠습니까? 대학을 졸업하고도 갈곳 몰라 방황하는 우리의 20대 젊은이들, 희망을 잃고 국외 탈출을 꿈꾸는 3,40대 가장들, 한창 일할 연세에 직장에서 내 몰려 울분속에 나날을 보내야 하는 경륜의 50대들, 그리고 힘들게 가꾸어온 이 소중한 나라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6,70대 어르신들. 이 분들께 나라의 장래에 대하여 최소한의 기대라도 갖게 하려면, 그래서 우리 국민을 다시 일으켜 세워 '한강의 기적'이 엎 그레이드 버전으로 이 나라에 재현되도록 하려면, 나라의 안정적 발전을 지향하는 우리 당이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당으로 거듭 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발언당사자의 '미필적 고의' 내지는 '인식있는 과실'과 언론의 '선정적 단순화'가 함께 어우러져 진의가 와전된 채 인구에 회자되긴 하였지만, 이번 '60세 용퇴론'은 실망과 기대 상실로 잊혀져 가던 거대 야당 한나라당의 활로에 대해 논의의 물꼬를 튼 의미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번 발언이 있기 며칠 전 몇몇 젊은 의원들이 함께 모여 고민했던 핵심 내용이 결과적으로 와전되어 버린 점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몇몇 선배님들의 정치적 대응 발언 덕분에 본질은 사라지고 점차 희화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많은 울분과 고민의 날들을 침묵속에서 참아야 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그리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선배님! 이탈리아를 통일했던 가리발디는 통일 과업 완수 후 낙향했습니다. 많은 지지자들이 통일 이후의 나라를 책임져 달라고 간청했을 때 그는 고향으로 은거하며 이런 취지의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내 역할은 통일까지입니다. 통일과정에서 많은 피를 본 나 자신의 존재 자체가 화합과 발전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후배가 '용퇴'를 이야기하는 순간 선배님들로부터 '아름다운 퇴장'의 기회와 권리를 빼앗는 셈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이 이야기를 꺼내기로 한 것은 상황이 그리 여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대선 패배 후 마음을 비우시고 후진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용퇴하시겠다던 선배님들의 용단과 의지가 노정권의 실정과 더불어 점차 퇴색되어 가는 분위기를 보며 우리는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개혁이 없는 보수,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하지 않는 보수는 현상유지 세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번 대선이 우리에게 준 뼈아픈 교훈입니다. 프랑시스 윌슨(Francis G. Wilson)은 '변화를 통한 연속성의 유지'가 진정한 의미의 보수라고 했습니다. 이제 예를 접고 고언합니다.
"용퇴해 주십시오."
선배님들에게 용퇴를 말씀드리는 것은 고도성장에 대한 국민들의 기억이 남아 있을 때, 그리고 그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있을 때, 새로운 사람에게 그 길을 양보해 주시라는 것입니다.
'미련을 가지는 벼슬자리를 버리고 물러가는 것은, 급류를 건넘과 같은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급류용퇴(急流勇退)란 말도 있듯이, 안정된 위치를 버리는 일은 어떤 경우이든 쉬운 선택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적당한 때를 알고 행동에 옮기는 데에는 큰 용기와 희생이 필요합니다.

특히 5,6공화국의 탄생과 인권신장에 역행하는 역사적 과오에 핵심적으로 관여된 선배님들에게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과오와 함께 20여년 여러 자리를 거치시며 나라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하신 점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 경륜을 사장시키는 것이 비효율적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 건전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보수와 진보가 함께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내려면, 먼저 5,6공 군부 독재의 이미지로 덧칠되어 있는 당에서 어둡고 음습한 부분을 털어내야만 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나가라고 하느냐고 묻지 마시고, 어떻게 하는 것이 위기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하는 길인가 고민해 주십시오. 심판은 너희 젊은 의원들이 아니라 국민이, 지역구민이 하는 것이라고 강변하지 마시고, 진심으로 선배님의 마지막 모습을 걱정하는 가족과 지인들의 권고에 귀 기울여 주십시요.
저희도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
경멸받고 조소당하는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조속한 시일내에 지구당 위원장직을 사퇴하겠습니다. 물론 공정 경선을 위해서 입니다. 이 글이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면 당직도 내놓겠습니다. 유능한 선배님들이 나서서 일해 주십시요. 나라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의원직도 내놓겠습니다. 저희들이 먼저 물러나는 것이 순서라고 권유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참으로 외람된 말씀을 드렸습니다. 많은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동료의원 중에는 저를 '미스터 마일드'로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논의 과정에서 습관적으로 합리적 근거를 찾고, 절차와 균형을 따지고, 때때로 수위조절, 속도조절론을 들고 나오는 바람에 얻은 자랑스런(?) 별명입니다. 그러나, 이번만은 스스로 과격과 무례를 자청하겠습니다. 그 만큼 절박한 일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무례한 고언을 끝까지 읽어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연찬회장이 가슴을 터놓고 토론하는 자리가 되어,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선배님들의 결단을 기다리며- 얻기 어려운 것은 시기요, 놓치기 쉬운 것이 기회입니다(2003.9.7)**

'현명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고, 어리석은 사람은 모든 것을 타인들 속에서 찾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 비춰 본다면,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애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변화에는 처절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선배님들이 원하시는 것처럼, 질서를 유지하는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면 더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자기희생을 통해 변화의 동력을 계속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저는 이번 연찬회 후, 의외로 많은 선배·동료의원께서 같은 고민을 해 오셨다는 사실과 저의 문제제기에 대해 원론적으로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100년을 지나온 소나무의 잎은 100년전의 그 잎이 아니고, 10년전의 그 잎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잎들이 소나무와 완전히 분리되는 것도 아닙니다. 떨어진 그 잎은 소나무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자양분이 되어, 소나무가 항상 그 모습으로 서 있을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사람의 진퇴에는 제각기 그 시기가 있다는 '추사유시(趨舍有時)라는 말도 있지만, 현명한 사람은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그 시기를 얻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쉽다고도 합니다. 선배님들께서 한나라당이 보다 더 튼튼하고 건전하게 뻗어 나갈 수 있는 밑거름으로 거듭나는 현명한 선택을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간절한 심정으로 씨앗을 뿌렸으니, 이제 기도하는 심정으로 싹이 돋아나길 기다리렵니다.

***지구당 위원장직을 사퇴하며(2003.11.1)**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대선자금에 관한 한 한나라당의 국회의원과 지구당위원장들이 모두 죄인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 드립니다.

정치권에서는 지금 정치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부패하고 음습한 정치자금 수수의 관행을 모두 밝히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이 제도화되지 않을 경우,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불법한 정치자금의 관행을 밝히는 것과 제도화는 반드시 동시에 추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1차적인 책임과 의무는 원내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몫입니다. 이 기회에 정치권의 고질적인 병폐인 정치자금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 미래는 없다는 결연한 각오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공청회 등에서 몇 차례 말씀드린 바가 있지만, 1회 100만원 이상 또는 연간 500만원 이상을 기부한 자의 인적사항과 그 내역이 국민 앞에 그대로 공개되어야 합니다. 또 모든 정치자금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된 회계책임자와 하나의 예금계좌를 통해서만 수입·지출되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법인세 1% 정치자금 기부 및 국민 소득세 1만원 이하 정치자금 기부(Check-off 제도 도입)를 통해, 투명하고 자발적인 정치자금이 모금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선거관리위원회에 당해연도 법인세의 1%이상을 정치자금으로 기탁한 법인에 대하여는 누구든지 일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요구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불법정치자금의 수수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정치자금법에 의하지 아니한 정치자금 기부행위 등 주요 정치자금범죄로 인하여 징역형의 선고를 받은 자는 10년간, 100만원이상의 벌금형의 선고를 받은 자는 5년간 공직선거의 피선거권 ·공무담임권을 제한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투명한 정치자금의 조달을 위한 제도적인 방안 몇 가지를 말씀드렸지만, 정치자금 사용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당과 정치인들은 평상시에도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중앙당과 지구당 때문입니다. 선거 시에 사용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는 방대한 중앙당과 위원장의 득표 동원을 위한 사조직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지구당은 '돈 먹는 하마'라는 말까지 듣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치인으로 하여금 많은 정치자금을 필요하게 만들어 정치부패를 낳는 원인으로 작용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의 중앙당과 지구당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정치자금문제는 또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구조인 것입니다.

따라서 중앙당의 최소화, 다시 말해 원내정당화가 지금 당장 이루어져야 합니다. 중앙당이 홍보와 정책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슬림화'되어야 만이 이를 유지하는 비용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중앙당이 홍보와 정책만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변한다면, 조직관리를 위한 지구당과 시·도지부가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지구당과 시·도지부도 폐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제가 먼저 지구당 위원장직을 사퇴하겠습니다. 저의 이러한 결심은 정치자금에서 자유롭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책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또한 사죄의 뜻도 담겨 있습니다.

'눈이 녹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패자이며, 눈을 밟아 길을 여는 사람이 승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불법적인 정치자금의 관행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이 뼈를 깎는 고통 속에 기득권 포기의 모습을 보일 때,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후원회, 이대로 좋은가?(2003.11.5)**

정치자금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 있다. 하나는 '정치자금은 정치의 모유'(mother's milk of politics)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다'는 말이다.

전자가 개인이 살아가는데 생활비가 필요하듯이 정치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긍정적인 측면의 의미라면, 후자는 정치자금이 정치부패로 흐를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경고하는 의미가 될 것이다.

최근 벌어진 정치자금과 관련한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지금까지 정치권에서는 정치자금의 부정적인 측면과 관련한 문제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에 비례하여 높아졌던 국민들의 정치불신은 이제 정점에 달했다는 느낌이다. 이 시점에서 정치자금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전환이 있지 않고서는, 국민들로부터 영원히 외면 받을 수도 있는 심각한 국면에 처한 것이다.

사실 지난 수십년동안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온 보스정치나 지역패권정치도 따지고 보면, 그것을 관리할 수 있는 자금을 매개로 이루어졌다. 정치자금은 정치개혁을 위해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시 단일한 계좌 사용, 수표나 카드 사용 의무화, 기부자 공개 등의 방안은 정치자금의 투명화를 위한 제도적인 고민의 산물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상한액을 넘는 자금이 선거에 사용되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고, 후원금에 대해 정치자금이냐, 대가성 자금이냐는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치자금의 문제는 수입지출의 투명성 확보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후원회 폐지는 정치자금의 부정적인 측면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다. 그것은 적법한 절차에 의해 후원되어진 금액이라 하더라도 거액의 후원금을 받았을 때, 그 후원자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지 않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문제는 현행 제도 하에서 수입지출의 투명성만을 강조하는 쪽으로 진행된다면, 자금 동원 능력이 정치인의 성장 가능성의 척도가 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도 대통령 선거에서 최종적으로 남은 사람은 자금동원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

우리의 경우도 지금까지 자금동원 능력은 곧 정치적 영향력과 연결이 되었다. 결국 정치자금과 부정부패가 연결고리로 이어지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 현실에서 서구식의 투명화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차제에 후원회를 폐지하고 '정치자금의 공영화'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활동은 통상적으로 의정활동과 지역구활동, 당(직)과 관련한 활동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활동은 지역구의원·비례대표의원·지구당위원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영역별로 구분하여 지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소요되는 재원은 법인세 1% 정치자금 기부 및 국민 소득세 1만원 이하 정치자금 기부(Check-off 제도 도입)를 통해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국가(선관위)가 자금의 분배와 관리를 맡고 있기 때문에, 사용에 대한 책임감과 투명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또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원은 국민들에게만 책임을 진다'는 당연한 명제를 구현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정치권이 지금까지의 정치자금 관행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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