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홍보성(?) 소식부터. 이들이 연합회 창립 1년을 넘기고 오는 10월 20일 제1회 학술대회를 연다고 한다. 1차의료, 인권, 공공성, 노동자 건강 등 여러 의료기관이 어떻게 사회적, 공공적 역할을 수행하는지 보이고 논의한다고 하니, 모임과 이들의 활동을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예상한다.
'연합회'라 하니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궁금한 것은 인지상정. 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2019년 8월 기준으로 병원 2곳, 의원 22곳, 한의원 12곳, 치과의원 8곳, 약국 5곳, 재가장기요양기관 3곳, 요양원 1곳, 요양보호사교육원 1곳 등 모두 54개 기관이 정회원이다.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은 속성상 이런 연합회에 가입하지 않을 터, 사정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제법 큰 규모의 조직이 아닌가 싶다. '민간'이 운영하는 의료기관이 사회적, 공공적 역할을 자임 또는 공식화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처음으로 방향을 정하고 공표했으니, 단순 숫자 이상의 역사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봐야 한다.
사회적 의료기관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하는지, 이제 모임의 '강령'을 살펴보자.(☞ 바로 가기 :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 페이스북)
- 의료 기관의 민주적 운영과 합리적 의사소통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의료 공공성 확대와 강화를 위한 의료 제도 개선 운동을 지지하며 이를 실천하겠습니다.
- 건강한 마을 만들기를 위해 지역 사회와 협력하고 연대하겠습니다.
- 의료, 돌봄, 복지, 재활의 통합적 관리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실천하겠습니다.
- 건강한 환경, 건강한 먹거리, 건강한 노동 환경을 위해 연대하겠습니다.
- 모든 종류의 성차별에 반대하며 평등을 추구합니다.
- 생명, 평화, 인권을 존중하는 의료 인력을 육성하겠습니다.
- 생명을 파괴하는 전쟁과 대량 살상무기, 핵무기를 반대하고 평화와 공존을 지향합니다.
- 핵발전이 환경과 생명을 파괴할 위험성을 인식하며 이를 폐쇄하기 위한 탈핵 운동을 지지하고 이에 연대하겠습니다.
언뜻 바람직한 방향을 두루 모아놓은 것처럼 볼 수도 있으나, 이것이 '강령'이면 그 정도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본래 강령이란 정당이나 단체가 자신의 기본 운동 방향과 방침을 밝히는 형식이 아닌가. 그저 듣기 좋은 선언이 아니라 매일 실천해야 하는 과제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어느 한 가지 만만하다 할 수 없는 사회적, 공적 역할들은 차라리 '과욕'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더구나 '민간'이라면 앞으로 닥칠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리라. 기관이 생존하고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이들이 사회적, 공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한다면 어느 정도나? 어떤 목표와 동력으로?
보건의료의 가장 중요한 과제 한 가지가 공공성 강화라는 점을 주장하고 옹호해 온 우리로서는 이들의 지향과 활동을 적극 지지하고 응원한다. 다양한 형태의 실험 또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용감한 시도에 따른 실패조차 다음 단계 발전을 위한 교훈이 되리라 확신한다.
희망과 기대도 크다. 벌써 활동하는 기관들은 다양한 실천과 실험을 통해 좋은 모범을 창출해주기 바라며, 많은 기관이 새로 참여하여 '세력'이 확장되는 일도 바라마지 않는다. 이미 있는 기관이 전환하는 것도 하나의 운동이지만, 희망을 보태자면 우후죽순처럼 여러 기관이 새로 생기는 사건도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떤 방향으로 더 나아가야 할까? 그 누구라도 하나의 기관이나 연합회라는 공식 조직 자체가 성장하고 튼튼해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한국 보건의료, 나아가 건강체제의 공공성을 키우는 것이 모든 관심 있는 당사자의 공통 목표라면, 진지한 뜻을 품고 실천하는 기관들의 방향성 또한 사회적 학습과 숙의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활동의 관심이자 우리의 관심, 나아가 우리 사회가 공유해야 할 논점 한 가지를 꺼내고자 한다. 비단 사회적 의료기관뿐 아니라 공공성을 생각하는 주체들이 익숙하게 알고 늘 모색하던 과제, 그것은 현재 체제에서 민간 기관의 공공성이 어떻게 가능한지 하는, 어렵고도 도전적인 질문이다.
특별한 관심은 공공성의 주체 문제로, 의료기관에 대해 '사람(주민·시민·인민) 중심'의 관점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과제를 제기하려 한다. 물론, 답은 이론과 사변만으로 찾을 수 없고 현장과 현실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 모두가 같이 모색하고 실험하는 중이니, 아직 불확실하되 열려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민간의 공공성은 대체로 에릭 올린 라이트가 <리얼 유토피아>(권화현 옮김, 들녘 펴냄)에서 설명한 것과 비슷하다. 한 마디로, 주체로서의 '사회권력'이 '경제권력'을 통제하지 못하면 공공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물론 긍정적 의미의 통제!). 참고로, 공공 주체의 공공성은 '국가권력'에 어떻게 개입하고 이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 하는 문제에 집중된다.
좋은 뜻을 가진 개인은 여전히 중요하고 결정적 계기지만, 그것만으로는 공공성이 지속하고 안정되는 구조를 보장하지 못한다. 공공성의 구조가 핵심이며 이는 거의 전적으로 '권력'의 구조적 균형에 대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회권력이 기관의 소유와 운영 주체로 성장, 발전, 안정되어야 이 구조가 작동한다. 그냥 '참여' 정도로는 모자란다.
한국의 보건의료체계에서 민간 의료기관은 경제권력과 사회권력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포함한다. 실질적인 소유와 운영이 '사회화'되어야 사회권력이 작동할 수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점에서 사회권력의 힘이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지는 기관, 예를 들어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공공성에 더 가까워 보이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민간에서 소유와 운영을 사회화하는 과제는 막 시작 단계, 아마도 아직 경험과 지식이 충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협동조합 또는 '공동조직'을 통한 기본 구조를 갖추는 것으로 소유와 운영에 사회권력이 주체 노릇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조합원, 공동조직 구성원, 또는 주민이나 환자가 실질적인 주체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경제권력(예: 일반 병원)을 사회권력(예: ???)으로 바꾸는 힘과 방법을 규명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과제다. 사의련과 협동조합을 비롯한 많은 실천과 활동이 이런 종류의 '정치적' 경험과 지식을 쌓는 데 중심 노릇을 해 주기를 희망한다.
참고로, 앞서 소개한 학술대회는 9월 20일부터 10월 13일까지 다음 링크로 참가신청을 받는다고 한다(☞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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