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지들이 앞다퉈 2면 특집으로 시험 결과를 분석해대고, 방송에서도 톱 뉴스가 되다보니, 일반 학부모들도 내 지역의 성적은 과연 몇 점인지,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과연 몇 등인지 많이 궁금하실 겁니다.
우선 일제고사 성적 공개에 대한 일간지들의 기사 표제와 부제를 몇 개 뽑아보겠습니다.
"중·고등학생 100명 중 7명 기초학력 못 미쳐"
"전국 193만 명 시험 일괄 채점"
"'밤 9시까지 자율 학습' 강원 양구 초6 미달자 1명"
"'사교육 빅3' 학력 월등… 교과부 "관련 적다" 빈말로"
"내년부터 '학교별 공개'땐 경쟁 격화 우려"
(<경향신문>)
"일제고사 결국 '사교육 전쟁'-강남 중3, 국·영·수 '보통학력 이상' 비율 전국 1위"
"지역별 학력 격차 여전…수준 차 해소 정책 실패"
"옥천·양구, 쥐어짠 '전국 1등-모의고사 문제풀이 반복·보충수업 결과"
(<한겨레>)
"비리는 1등, 학력은 꼴등(고1 학생 기준)…서울시 교육 '처참한 성적표"
"서울의 추락"
"강남 불패"
"충북의 반란"
"꺼지지 않는 빛고을 신화, 제주의 약진"
(<조선일보>)
이들이 대략 주장하는 것은 일제고사의 문제점은 이미 지나간 언설이고, 일단 "서울은 성적이 바닥권이다. 강남 학력이 최정상급이다. 지역별 격차가 크다" 등 입니다. 그동안 교육 운동가로서 이 문제를 지켜보고, 발언한 사람으로서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몇 가지 사실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여건에 따라 지역별 격차가 크다는 점, 학원이 편중된 곳의 학력이 높다는 점, 일제고사 전수 평가가 역시 서열화의 우려와 직결된다는 점, 내년부터 학교 성적이 공개되면 한국 교육의 파행은 더욱 심각해져 '쓰나미 급' 사태가 발생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 지난해 10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학업성취도 평가 시험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
서울 시민이 억울하다는 평가도 나올 것입니다. 국제중까지 무리하게 도입하며 학력 신장을 외친 결과가, 2년 연속 '꼴찌'라면 무엇으로 설명이 될까요? 다음 교육감 후보가 학력 신장을 다시 공약으로 내세울지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국제중 학생들은 공부 스트레스가 심해, 전학 가는 비율도 늘어난다고 하던데…. 이 모두 학력 제일주의의 이면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일제고사 성적을 분석하며 학부모에게 은연중으로 사교육의 힘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학교들은 미궁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강남 학력이 높은 것은 강남에만 학원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값비싼 학원을 보낼 수 있는 부모의 경제력과 배경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를 자꾸 사교육 덕, 학원 덕이라고 분석한다면 한국 교육은 미궁에 빠지는 것이지요.
이를 근거로 학교에 사교육을 유입시키고, 학교 방과 후 프로그램이라 포장해 초등학생 까지도 밤 10시까지 주입식 교육으로 잡아둔 결과를 공개한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과정, 빗나간 목표입니다. 흔히들 '헛발질'이라고 하죠.
지난 1년 동안 지방에 방문할 기회가 있으셨던 분들은 이미 느끼셨겠지만, 학교마다 평가 1위 학교라는 둥, 다양한 펼침막이 펄럭였습니다. 지난 1년 전국의 학교가 저마다 학력 신장을 외치며 한바탕 요동쳤는데, 그 결과가 순위 변동도 적고 '서울 연속 최하위'라면 분명 다른 문제들이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요? 강남을 끼고 있는데도 연속 학력 최하위에 인사 비리까지 얼룩진 서울시교육청이 대표적인 사례이겠지요. 두 번 연속 꼴찌를 면하지 못한 180여 개 학교에 대한 보도도 있더군요.
일제고사가 비록 작지만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 소외 지역의 경우, 변화가 있기도 합니다.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비교적 저조하고, 학교 규모가 작아 수업이 취약하게 이뤄졌던 곳들입니다. 이런 지역에서 정부의 조치는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을 겁니다. 외딴 섬에 마치 '방목'된 것처럼 마음 편히 있던 아이들을 교사들이 '꽉 잡고' 가르친다면 분명 효과는 있습니다. 공부도 때론, 적절한 자극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요소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큽니다. 그렇게 학교에 밤 10시까지 잡힌 어린 아이들이 언제 몸과 마음을 성장시킬 수 있을까요?
얼마 전 게임 중독에 빠져 어린 아이를 방치해 굶겨 죽인 젊은 부부가 체포됐습니다. 학교와 학원 밖에 모르고, 문제풀이에만 매달린 아이들은 여가 시간이면 늘 컴퓨터 게임을 한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의 미래가 충격적으로 그려진다면, '당신이 오바한다'라고 여기시려나요?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는 것이 마냥 그 아이들 탓이던가요?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부모 잘못 만나서 내 자식이 고생이다"라는 말을 달고 삽니까? 같은 강남도 아파트 평수에 따라 학력 차이가 납니다. 같은 강남 지역이라도 아파트 평수에 따라 선호 학교, 비선호 학교가 갈리고 학력 수준 역시 다른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아이 학력은 아파트 평수에 비례한다"고 거칠게 말해왔습니다. 외면하고 싶지만, 대체로 사실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첫날 저녁, 한 모임에 나온 아버지가 집에 전화를 하는 소리를 듣게 됐습니다.
"오늘 첫날 어땠어? 담임 선생님은 어떤 분이야? 좋은 분이셔?"
아마 그날 저녁 일터에 있던 대다수의 엄마, 아빠들이 어린 자녀와 전화로 비슷한 대화를 나누었을 겁니다. 만일 그날이 자녀의 개학일, 입학일인지도 몰랐다면 학교를 믿는 '아주 바람직한 태도'거나, 먹고 살기에 바빠 자식 일에 신경 쓰기 어려운 부모들이었을 겁니다.
2010년 오늘, 현재 학부모의 무관심은 한국 교육 현실에서는 이미 '낙오'를 의미합니다. 아이 학력엔 아이의 성품과 의지, 노력 등이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부모의 관심과 경제력, 정보력, 문화 자본이 더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오로지 사교육과 학원 때문에 일제고사의 학력 차이가 났을까요? 과연 교사들이 열심히 가르치지 않아서 학력 차이가 난 것일까요? 일정 부분, 그런 이유도 있을 수 있지만, 제 아무리 밤늦게까지 학생들을 잡아둔다고 해도 그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내기엔 '기초 체력'이 부족한 경우도 많습니다. 경주를 앞둔 경주마인데, 채찍을 휘둘러도 말의 체력이 이미 게임이 되지 않을 정도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학력 차이를 줄인다는 것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을 30평대 강남 아파트에서 살게 하겠다는 공약만큼이나 허황된 것입니다. 현 정부가 온 나라 국민들을 잘 살게 해줄 수 있을까요? 온 국토는 파헤칠 수 있을지 몰라도, '747공약', '반값 등록금 공약'을 실현시켜 온 국민을 모두 평등하고 잘 살게 해줄 수는 없을 겁니다. 재기 발랄하고 기상천외한 공약으로 젊은이들의 표심을 사로잡은 허경영 후보도 그런 공약은 못합니다. 그럴 만큼 비현실적인 것입니다.
학력 격차는 사교육 탓만이 아닙니다. 부모의 학력이 높을수록,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살수록, 사교육비 지출이 많을수록, 수능 점수가 월등히 높다는 결과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인정하긴 싫지만, 현실을 제대로 분석해야 '헛발질'이 아닌 정확한 대책이 나오는 것입니다.
학력 격차는 '오로지 사교육' 때문만이 아니라 빈부 격차-교육 격차-사회 양극화의 결과입니다. 정부가 사교육 탓을 하며 학교를 학원으로 만들수록, 대한민국 학교들은 더 깊은 미궁과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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