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26일째를 맞고 있는 삼성생명 해고자들의 투쟁이 삼성생명의 외면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단식 중이던 여성 노동자들이 실신해 응급실로 실려 가는 등 해고자들의 건강도 극도로 악화되고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반면 삼성생명은 대화 요구를 외면하면서, 회사 앞 기자 회견을 실력 저지하는 등 이들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데 주력하는 분위기다.
***삼성생명 해고자, "삼성생명은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삼성생명 해고자들을 지원하는 민주노동당, 사회당을 비롯한 2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7일 오전 삼성생명 본관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단식 26일째를 맞고 있는 삼성생명 해고자들의 절박한 처지에 대한 삼성생명의 성실한 답변을 촉구했다.
단체들은 성명서를 내고, "'일류 기업' 삼성은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졌다"면서 "강제 해고된 여성 해고 노동자의 분노와 한을 삼성생명과 이건희 삼성 회장은 알아야 할 것"이라 대화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해고 노동자들, 장기간 단식으로 건강 급속히 나빠져**
이날 기자 회견에 참석한 해고 노동자들은 장기간에 걸친 단식으로 건강이 급속히 나빠진 상태다.
지난 4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하고 단식 투쟁에 동참하던 2명의 노동자가 응급실로 실려 갔고, 이에 앞서 1일과 3일에도 서울역 농성장에서 단식 투쟁에 동참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응급실로 실려 갔다. 특히 3일에 응급실로 실려 간 노동자 중에는 산후 4개월 밖에 안 된 노동자도 있어서 주변을 더욱더 안타깝게 했다.
남은 사람들의 건강도 최악이다. 오랜 단식으로 혈당 수치와 맥박이 낮아 걸음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다. 7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기자 회견에 참가한 윤진열 위원장도 회견이 시작되기 전까지 땅바닥에 계속 주저앉아 있었다. 집회에 참가한 여성 노동자들도 힘겨운 표정이 역력했다.
***해고 노동자들,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면담**
해고 노동자들은 집회 후 점거 농성 중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오후에 면담할 예정이다.
이들은 "지난 1998년 삼성생명이 여성 노동자들 1천2백명을 포함한 1천7백23명을 뚜렷한 이유 없이 해고한 것은 '여성 차별'에 해당한다"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2003년 중점사업으로 추진하는 '성별에 의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실태 조사'에 삼성생명의 여성 차별 실태 조사를 포함할 것"을 요구할 예정이다.
또 삼성생명 앞이 '에너지 전략 및 환경보호 캠페인'으로 1년간 집회 신고가 되어 노동자의 정당한 집회 자유를 훼손한 것에 대해서도 조사를 촉구하기로 했다.
이밖에 삼성생명 해고 노동자들도 고통을 받고 있는 '손해배상 가압류' 제도에 대한 시정도 요구할 계획이다. 현재 해고 노동자들은 삼성생명으로부터 약 1억4천만원의 손해배상 금액이 재판 계류 중이다. 또 이미 약 1천여만원을 벌금으로 낸 상태다.
***삼성생명, 회사 앞 기자회견 실력 저지**
삼성생명은 이날 회사 앞 기자회견을 실력 저지했다.
삼성생명 앞은 '에너지 절약 및 환경 보호 캠페인'으로 1년 동안 집회 신고가 되어 있기 때문에 해고 노동자들은 집회 대신 기자회견 방식을 선택했다.
집회가 시작될 무렵, 삼성생명 건물에서 카메라를 든 정장 차림의 관계자들이 나와 해고 노동자를 비롯한 지원 단체 관계자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지난 10월 31일 서울 상공회의소 앞 해고 노동자들의 집회 근처에서, 신한은행 직원들에게 집회 중단을 요청할 것을 종용하던 신원미상의 남자도 끼어 있었다.
기자 회견을 위해 지원 단체 관계자들이 간이 탁자를 놓자마자 양측의 충돌이 시작되었다. 삼성생명 관계자들은 "사유지에 무슨 행패냐"면서 간이 탁자 철거를 요구하고, 탁자를 발로 차거나 손으로 때렸다. 이를 지원 단체 관계자들이 저지하면서 잠시 몸싸움이 벌어진 후, 결국 탁자는 치워졌다.
삼성생명의 기자 회견 방해는 계속되었다. 기자 회견을 위해 펼친 현수막 앞을 삼성생명 직원들이 둘러싸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우산까지 들어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했다. 결국 기자 회견은 약 10분여에 걸쳐서 그 상태로 진행되었다.
삼성생명 관계자들은 사진을 찍던 기자에게도 "누군데 마음대로 사진을 찍냐"면서 기자 신분 증명을 요구했다. 이들은 그 후에도 "기자면 마음대로 사진을 찍어도 되는 것이냐"면서 기자의 취재를 방해했다. 한 쪽에서는 여전히 삼성생명 관계자들이 계속 사진을 찍고 있는 상황이었다.
***보수 언론 아무도 안 나타나, 우리당도 "대책 논의해 보겠다" 말만**
해고 노동자들은 6일부터 효성, 태광 노동자들과 함께 열린우리당의 위원장실을 점거한 상태지만, 우리당은 "대책을 논의해 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한 노동자는 "우리는 우리당의 '우리' 안에 끼지 못하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냉소적인 평가를 던졌다.
보수 언론의 무관심도 여전해서 기자 회견이 열리는 삼성생명 본관 앞에는 기자들이 거의 없었다. 삼성생명 본관이 있는 태평로는 주요 보수 언론사들과 지척에 있는 거리다.
26일째 단식을 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해고 노동자들과 이들의 목소리를 억누르려고 15명가량의 직원들이 동원되어 실력 행사를 하는 한편으로 삼성생명 직원들을 비롯한 많은 근처 회사원들이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내내 내린 가을비처럼 스산한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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