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프랑스 의회는 소셜미디어나 검색 엔진 혐오 발언, 테러선동 콘텐츠를 24시간 이내에 삭제하지 않으면 최대 14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관련 기사 : <뉴시스> 7월 6일 자 '프랑스 의회, 구글·페이스북 등 혐오발언에 벌금 부과') 여기에는 테러리즘을 선동하거나 미화하는 경우, 폭력, 인종 차별, 종교적 모욕과 학대에 해당하는 내용, 혐오 발언이 포함된다. 일본의 일부 지자체들도 2016년부터 재일 한국인 등 외국인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을 제한하는 ‘헤이트 스피치 억제법’을 시행하고 있다.(☞ 관련 기사 : <매일경제> 3월 30일 자 '도쿄도 "혐한시위 등 헤이트 스피치 금지"…조례 내달 시행') 이는 혐오 발언의 심각성을 반영하는 조치들이다. 국내에서도 사회적 약자들과 여성, 난민, 이주 노동자, 심지어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에게까지 온라인 혐오 발언이 넘쳐나지만 이를 규제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은 아직까지 제정되지 않고 있다.(☞ 관련 기사 : 6월 18일 자 <한겨레>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 500명, 무슬림 혐오에 내몰리다', <노컷뉴스> 8월 10일 자 ''벌레가 된 사람들'…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하는 이유')
혐오 발언 또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는 특정 집단을 향한 폭력이나 살인 같은 직접적 위해를 선동하고, 구조적 배제와 차별을 강화한다. 이는 단순한 ‘말싸움’도 친근한 ‘놀림’도 결코 아니다. 이런 혐오 발언에 대해서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는 이들도 있지만, 근대 이후 수많은 이들이 피 흘려 쟁취한 표현의 자유는 이런 것이 아니다. 혐오 발언은 엄연한 범죄 행위이다.(☞ 관련 기사 : <오마이뉴스> 4월 23일 자 '표현의 자유에 '혐오'는 포함되지 않는다')
혐오 발언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누가 주로 혐오 발언을 하는지, 사람들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며, 이것이 어떻게 확산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늘어나고 있다. 독일의 에푸르트 대학 연구팀은 여성의 소셜미디어 활동이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혐오 발언의 대상이던 여성이 온라인에서도 동일한 표적이 되고 있음에 주목했다. 이들이 최근 국제학술지 <성 역할(Sex Role)>에 발표한 논문은 소셜미디어 사용자 개인의 도덕적 특성이나 젠더에 따라 여성,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혐오 발언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아보는 실험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바로 가기 : '온라인 토론에서의 젠더화된 도덕성과 백래쉬 효과 : 온라인 이용자들이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한 실험연구') 실험대상으로 삼은 반응은 플래깅(flagging)이었다. 플래깅이란, 온라인상에서 혐오 발언을 목격한 이용자가 플랫폼 제공자나 운영자에게 그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알리려는 의도나 행동을 말한다.
연구팀은 혐오 발언에 대한 반응이 개인의 내적 신념체계, 즉 어디까지를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일탈로 볼 것인가의 판단에 기초한다고 전제하며, 도덕 토대론을 이용한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도덕 토대론에 따르면, 개인의 도덕성은 △ 자유주의, △ 개별화(individualization)와 보수주의, △ 일체화(binding)로 구분할 수 있다. 개별화 지향을 가진 사람은 여성과 성소수자에 더 공감하고 그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 연구팀은 개별화 특징이 높은 개인일수록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더 많이 플래깅 할 것이며(가설1), 일체화 특징이 높을수록 플래깅 의도가 낮을 것이라고(가설2) 가설을 세웠다. 또한 보수주의자들은 현존하는 권력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크다. 우익권위주의는 성차별주의적 태도를 가지기 때문에, 이러한 성향의 사람은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더 적게 플래깅할 것으로 예상했다(가설3). 또한 우익권위주의 성향의 사람들은 남성에 의한 혐오 발언에는 관용적이지만, 여성에 의한 혐오 발언에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가설7).
연구팀은 또한 캐롤 길리건의 도덕지향론과 사회역할 이론을 접목시켰다.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할 때 여성은 돌봄, 남성은 정의라는 도덕적 지향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으며, 남녀 역할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다르기 때문에, 혐오 발언에 대한 플래깅 행위에서도 남녀 차이가 있을 것으로 가정했다. 즉 여성은 돌봄이라는 도덕적 지향을 갖기 때문에 (이타적 행위인) 플래깅을 더 많이 할 것이라는 가설이다(가설5).
또한 사회인지 이론과 백래쉬 이론에 따르면, 성별에 따라 규범 위반에 대한 제재가 달라진다. 공격성은 전형적으로 남성과 소년의 특성이기 때문에 여성과 소녀의 공격성은 더 심한 처벌과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게 된다. 여성의 혐오 발언은 타인에 대한 공격일 뿐만 아니라, 젠더 역할을 위반하는 이중 일탈 행위라는 점에서, 남성의 혐오 발언보다 더 플래깅 되기 쉽다고 예상했다(가설6). 연구팀은 혐오 발언을 플래깅 하는 것뿐 아니라, 그에 대한 반박 발언이 남성과 여성의 발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비교했다.
실험에는 정치적 이익집단과 독일뉴스매거진 페이스북에서 모집한 457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의 평균연령은 37.15세였고, 여성이 51%(236명),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48%(230명)였다. 성별에 따른 연령이나 교육 수준의 차이는 없었다. 발언(혐오 발언 vs. 반박 발언)과 젠더(남 vs. 여)로 구성된 '2×2 집단 간 - 집단 내 비교디자인' 방법으로 분석했다. 무작위로 혐오 발언과 반박 발언에 배당된 참여자들은 8개의 짝으로 된 발언을 보고 자신의 플래깅 의도 수준을 점수로 평가했다. 처음 6개 항은 난민 정책에 관한 것이었고, 뒤의 2개 항은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발언이었다. 연구의 초점인 이 두 개 항목에 대해서는 발언자를 남녀 각각 한명 씩으로 하면서 발언자의 성별을 알 수 있도록 그림 문자와 전형적인 독일식 남녀 이름으로 표기했다.
그리고 참여자들의 도덕적 지향(개별화와 일체화), 도덕적 정체성(내면화와 상징화) 성향, 우익권위주의 정도, 혐오 발언과 반박 발언에 플래깅한 숫자, 사회인구학적 정보와 백래쉬 여부를 같이 분석했다.
분석 결과 여러 개의 가설 중 첫 번째 가설 즉, 개별화 특징이 높을수록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더 많이 플래깅 한다는 것만 입증되었다. 보수적인 신념이나 우익권위주의가 플래깅을 낮춘다는 근거는 없었다. 또한 여성의 내면화된 도덕적 정체성은 개별화 지향과 관련되어 플래깅 의도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발언자의 성별이 플래깅 의도에 영향을 미쳤는데, 혐오 발언이나 반박 발언에서 거친 언어를 사용하는 여성에 대한 플래깅 수준이 높았다. 이러한 백래쉬 효과는 이를 문제 삼는 사람의 사회인구학적 특성, 도덕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통제한 후에도 지속되었다.
이 연구 결과는 온라인상의 토론과 의견표명 과정에 뿌리 깊은 성별고정관념이 작동함을 보여준다. 익명의 온라인 공간 또한 성 평등한 발언의 장은 아닌 셈이다. 오프라인 세상이 불평등과 차별로 점철되어 있는데, 온라인 공간에서만 평등과 존중이 넘칠 리 없다.
개인들이 가진 도덕 지향과 성별 고정 관념을 짧은 시간 내에 바꾸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저절로 바뀌기만 기다릴 수는 없다.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은 최소한의 문제적 행동을 ‘규제’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다.
* 서지정보
Claudia Wilhelm & Sven Joeckel, Gendered Morality and Backlash Effects in Online Discussions: An Experimental Study on How Users Respond to Hate Speech Comments Against Women and Sexual Minorities, Sex Roles (2019) 80:38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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