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산업성(경산성)은 7일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시행령인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관보를 통해 공포하면서, 구체적인 규제대상 품목을 지정하는 후속 시행세칙인 '포괄허가 취급 요령' 개정안도 경산성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개정안은 7일 공포 기준으로부터 21일이 지난 28일부터 적용된다.
주목되는 것은 기존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 외에 한국만을 대상으로 '개벌 허가'를 강제하는 수출품목이 '포괄허가 취급 요령' 개정안에 추가 지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1194개 전략물자 가운데 개별허가로 돌릴 품목을 구체적으로 추가 지정할 경우, 일본 정부가 우리 경제의 약점 가운데 어디를 노리고 있는지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관심이 집중됐으나, 일본 정부가 추가 도발을 일단 보류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6일(현지시간) '일본은 싸울 준비가 되지 않은 전쟁을 시작했다'는 분석 기사(☞원문보기)를 통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외교 갈등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동원한 결정이 역풍을 맞고 있다고 지적해 소개한다.
"일본, 한국의 대응에 갈팡질팡"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일제 강점기의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 문제가 있으며, 이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간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해 무기를 꺼내든 것이다. 아베가 고심 끝에 꺼내든 무기가 바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예기치 않은 상황전개에 대한 대비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채 전쟁을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일본 정부는 일사분란한 전열을 갖추기는커녕, 한국인들의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등 우선순위로 예상될 만한 상황조차 대비를 못한 채 모순되는 성명들을 발표하고, 한국 정부에 대한 불쾌감만 드러내는 일본관료들의 발언만 속출했다는 것이다.
매체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삼성처럼 핵심산업을 위협해올 때 어느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면서, "일본 정부는 이런 역풍에 대해 대비하지도 못했다"고 비판했다.
매체는 "한국의 대응에 직면해 일본 정부는 갈팡질팡해 왔다"면서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이 수출 규제는 오직 국가 안보를 위한 기술적인 측면의 조치에 불과하다고 애써 강조할 때, 그의 상관들은 외교 문제에 따른 보복조치라는 의심을 부추겨 왔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수출 규제가 '국가안보적 이유'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끝내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만족할 만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양국의 신뢰관계는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아베 총리 역시 "강제징용 문제를 대하는 한국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냈다"면서 "이런 나라는 전략 물자에 대한 수출 통제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포린폴리시>는 "아베 총리와 스가 장관은 경제적 파장이 어느 정도나 될 것인지 예상했는지 분명치 않다"면서 일본 제품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매운동 사례들을 소개했다.
매체에 따르면, 한국에 180개가 넘는 매장을 가진 의류업체 유니클로의 매출은 30% 가까이 감소했으며, 수입산 맥주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던 아사히 맥주 등 일본산 맥주들도 한국의 매장들이 진열까지 거부할 정도의 불매운동에 매출이 급감했다. 일본으로 가는 한국 여행객들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 지난해만 일본을 찾은 750만 명의 한국인 방문객들은 일본의 외국인 방문객 중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일본 지역 도시에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또한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일본에게 무역 흑자를 안겨주는 나라로 지난해에만 일본은 한국과의 교역에서 200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일본 정부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리자, 곧바로 일본과 경제전쟁이 벌어졌다고 규정하면서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일본기업들은 장기적으로 삼성 등 한국의 기업들이 일본산 소재 공급 차질을 우려해 보다 '신뢰할 만한' 공급선으로 바꿔나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산 소재와 부품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 64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포린폴리시>는 "아직 아베 총리가 협상에 나설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한일 갈등이 심해지자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선 이후 상황 변화 가능성을 전망했다. 미국은 특히 한일 갈등으로, 미국이 주도해 맺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연장을 거부하는 결정을 한국 정부가 강행할 지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체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최근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확보하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대북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한국의 협조가 필요한 입장이다. 또한 최근 중국과 러시아 전투기들이 독도 상공을 침범한 사건에도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게 됐다.
일본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지만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센카쿠 열도에 대해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포린폴리시>는 "힘을 앞세운 정치는 매우 다루기 까다로울 수 있다"면서 "아베 총리는 겸손함과 '정치는 사업에 좋지 않다'는 옛 격언의 가치를 깨닫게 될 지 모른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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