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10.29 부동산대책이 나온 직후 본지에 여러 차례 현장에서 느끼는 정부대책의 문제점들을 기고했던 공인중개사 이태용씨가 전화를 해왔다. 현장전문가로서 이번 대책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어보았다.
***"10.29대책은 아파트투기 대책이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 정부에게는 폭등한 아파트값을 내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현수준에서 묶자는 것이 정부 생각이 아닌가 싶다.
양도세를 대폭 올리면 내놓는 물건들이 사라지면서 거래가 뚝 끊어질 것이다. 아파트를 안 팔면 양도세를 안내도 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다소 거래가 안되면서 가격이 내리는 것을 기대할 수는 있겠으나 거품이 크게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투기수요자들이 과다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들을 시장에 내놓게 만들어 아파트 거품을 제거하려면 보유세부터 대폭 현실화해야 하고, 양도세는 1~2년후 어떤 식으로 중과세하겠다는 식으로 순서가 잡혀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 보유세를 거의 손대지 않음으로써 이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유감스러운 선택이다."
현장 전문가다운 날카로운 분석이다. 그의 지적대로 정부의 이번 대책은 '아파트투기 대책'이라고 부르기보다는 '현상유지 대책'이라 부르는 게 더 정확할 성 싶다.
한 경제부처 관료는 솔직히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가뜩이나 경기가 나쁜 판에 아파트값마저 폭락하면 일본 꼴이 난다. 아무리 아파트값을 잡는 게 중요하다 할지라도 아파트값이 폭락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경착륙이 아닌 연착륙을 시켜야 한다."
90년대초 전국적인 부동산투기 붐을 제압했던 김종인 전 경제수석은 며칠 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경기도 계속 부양하면서 아파트값도 잡으려는 식으로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다 보니, 두마리 토끼 모두를 놓치는 우를 범하고 있다"며 "한마리 토끼라도 제대로 잡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청와대 최초로 개입했으나**
지난주 청와대에서 미묘한 움직임이 있었다. 청와대가 노무현 정부 출범후 최초로 아파트투기 대책에 대한 여론 수렴작업을 벌인 것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아파트값 문제는 경제문제로 인식, 경제파트에게 전권을 주었었다"며 "그러나 이제는 아파트값 문제가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회-정치문제가 됐다고 판단,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경제팀에 대한 불만이 대단했다.
"경제팀은 툭 하면 아파트 공급이 부족해 폭등하고 있다고 말하곤 한다. 주택보급률이 2012년에 1백17%가 돼야 근원적으로 아파트 투기를 막을 수 있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비경제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도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요즘처럼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부가 한쪽으로 쏠리면 아무리 아파트를 많이 지어 공급해봤자, 돈없는 서민들이 어떻게 제 집을 장만할 수 있겠나. 아파트값에 낀 거품을 크게 거둬내야만 서민들도 집 장만을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는 또 보유세를 최소한 미국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의 보유세율을 조사해보니 연 1.57%였다"며 "현재 자동차세보다 낮은 0.1%의 세율을 2주택이상 보유자에게 미국수준으로 15배 정도 확 올리면 아파트 투기를 막을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재경부 등에서는 조세저항 등을 우려해 올려도 3~5배만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나 반드시 이를 관철시킬 생각"이라고 굳은 결의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개입에도 불구하고 그후 나온 10.29 대책은 더없이 실망스러운 내용이었다. 결국 노대통령에게 경제팀의 주장이 먹혀든 셈이다.
***"아파트값 문제는 정치-사회 문제다"**
정부는 그동안 각종 국책연구기관을 동원해 "강남 아파트에 최소한 40%의 거품이 끼어 있다"고 주장해왔다. 경제부총리, 건교부장관, 한은총재 등도 그동안 아파트 거품을 경고하며 '강남 불패'를 깨겠다고 공언해왔다. 대통령은 초법적 토지공개념까지 언급했다.
하지만 이러던 정부가 막상 내놓은 10.29 대책은 "건설경기를 죽이거나 아파트값 폭락을 초래해 일본처럼 돼서는 안된다"는 인식에 기초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같은 인식은 10.29 대책 곳곳에서 확인된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강북 등을 중심으로 12~13개의 신규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건설업체들에게 지속적 일거리를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또한 건설업계의 민원을 받아들여 현장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이 요구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거부했다. 이 또한 80년대 아파트 투기 시대이래 최대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건설업체의 편에 선 결정이다.
아파트 거품은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분명 가까운 시일안에 깨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가만히 손 놓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지금 다수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는 아파트 거품의 절반은 노무현정부 출범이래 생겨난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게는 출범이래 생성된 거품을 빼야 할 정치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노무현 지지층의 상당수가 이반한 데에는 청와대 분석대로 아파트값 폭등에 따른 '상대적 빈곤의 확대'와 이에 따른 실망감과 무관치 않다. 아파트값 문제를 아직도 경제문제로만 여긴다면 앞으로 이탈한 지지층의 되찾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아파트값 문제는 이미 정치-사회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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