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는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하동 ‘대한독립선언서’를 국가문화재로 등록해 줄 것을 문화재청에 요청했다고 1일 밝혔다.
이와 함께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2명 중 그동안 행적을 알 수 없었던 이성우(1894∼1958·횡천면), 이보순(1897∼1976·하동읍), 박종원(1898∼1974·횡천면) 선생 등 6명의 행적을 100년 만에 발굴하고 미포상자 9명에 대해 국가보훈처에 서훈을 신청했다.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문화재 등록을 요청한 하동 ‘대한독립선언서’는 1919년 3월 18일 하동군 적량면장으로 있던 박치화를 비롯한 12인이 작성하고 서명한 후 하동장날 장터에서 낭독하고 배포한 지방 자체의 유일한 독립선언서다.
이때 영·호남 주민 1500여명이 시위에 가담해 만세 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서명인 12명 중 9명에 대해 그동안 신원을 파악하지 못하다가 3·1운동 100년 만에 6명의 행적을 찾았다. 따라서 하동독립선언서를 국가문화재로 등록하는데 청신호로 볼 수 있다.
하동독립선언서는 가로 30센치미터 세로 21센치미터이다. 서명인을 포함한 총 329자로 간결하게 표현됐다. 내용 중에는 다른 선언서와 달리 ‘대한독립’을 첫 글자로 명기하고 연호도 ‘단군개국’을 사용한 점 등 민족주의 사상을 보다 강조했다.
그리고 세계평화회의의 ‘민족자결’ 여론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특히 독자적인 독립 쟁취에 대한 의지를 강조한 점은 하동 ‘대한독립선언서’만 가지는 특이한 점이라 할 수 있다.
‘최후의 1인과 최후의 일각까지 폭동과 난거는 행치 말고 인도와 정의로 독립문으로 전진 합시다’라며 비폭력과 정의로운 만세운동도 표방했다.
하동독립선언서는 2015년 국가지정 기록물 제12호로 지정됐으나 아직 국가문화재 등록은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현재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다.
반면 최남선이 기초한 ‘기미독립선언서’는 2016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따라서 지방 자체의 유일의 독립선언서인 하동 ‘대한독립선언서’도 반드시 재평가해 품격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이 독립선언서를 계기로 하동지역에서 만세시위가 총 17회가 일어났으며 이는 영남에서 가장 많은 횟수의 만세 열기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자료로 광양출신 임태일(1899∼1959·대통령표창) 선생 판결문을 제시했다.
내용 중에는 “임태일은 1919년 4월 14일 그가 거주하는 진월면 송금리 한문서당에서 여러 학생들에게 하동군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는 것을 견학하기 위해 함께 가야한다. 하동군에서는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외침에도 불구하고 우리 광양군 내에서는 만세 부르는 자가없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임태일은 이후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또 하동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정낙영, 이범호, 정희근 선생은 1919년 3월 20일 남해군 남해읍 장날에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독립선언서를 다량 등사하는 등 시위준비를 갖춘 후 장터에 모인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등 시위를 주도했다”는 내용이 국가보훈처가 발행한 정낙영, 이범호 선생의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담겨있다.
한편 하동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2인 중 박치화(건국훈장), 정낙영(대통령표창), 이범호(대통령표창) 3인은 정부서훈이 추서됐으나 행적을 파악하지 못한 9명은 미포상 상태다.
하지만 이번에 6명의 행적을 확인하고 미 확인자 3명을 포함해 9명을 서훈 신청했다.
서훈 신청 인사는 이성우(李聲雨·1894∼1958·횡천면 횡천리 271), 박종원(朴宗源· 1898∼1974·횡천면 월평리 516), 이병홍(李炳鴻·1896∼1919·양보면 박달리 611), 정희근(鄭禧根·1888∼?·금남면 대치리 139), 이보순(李輔淳·1897∼1976·하동읍 두곡리 994), 김두순(金斗淳·1897∼1938·하동읍 읍내동 897), 정인영(鄭寅永), 김응탁(金應鐸), 황학성(黃學成) 선생이다.
이와 함께 지난 2월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100년 만에 발굴해 세상에 공개한 하동독립선언서 서명자 이병홍(1896∼1919) 선생의 묘소와 묘비도 문화재 등록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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