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증막. 요즘 밖에서 길을 걷다보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땀에, 끈적하고 후끈한 공기에 심신이 지친다. 그나마 저녁에는 숨통이 트인다. 이 한증막 날씨가 지나면, 뜨거운 햇살이 도시의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구어 댈 것이다. 실내에서는 에어컨을 더 세게 틀 것이고, 밖에서는 뜨거운 햇살에 더해진 뜨거운 바람이 훅훅 불어댈 것이다. 열대야도 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작년 7월 25일, 이 뜨거운 날씨에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수당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재 플랫폼 노동 영역에서 상징적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의 주장이었다. 이 운동은 세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방향은 두 가지다.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 환경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관심이 없었는지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한편으로는 만약 보상을 한다면 플랫폼 노동에서는 누가 폭염수당을 줘야 하는가를 질문하는 것이었다.
패스트푸드 기업의 라이더처럼 어딘가에 고용된 노동자라면 모를까 오로지 핸드폰이 일감을 주는 전국의 수많은 라이더들에겐 누가 저 폭염 수당을 줘야 할까. 여러모로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킨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피할 도리가 없다
2019년 올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폭염에 노출되는 옥외작업 노동자를 위해 사업주는 물, 그늘, 휴식 등 세 가지 열사병 예방 대책을 시행한다고 한다. 최근 5년간 온열질환 피해를 보는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고, 특히 옥외작업 빈도가 높은 직종에서 열사병이 발생하고 있다는 통계를 바탕으로 한다. 물론 산재보험을 신청하고 승인받은 노동자의 통계이니, 산재보험을 제대로 신청하지 못하는 사각지대 노동자들을 따진다면 그 피해자수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예방 대책은 간단하다. '물, 그늘, 휴식 제공에 사업주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사업주 온정이나 관심에 기대는 이러한 정책은 현장에서 어떤 식으로 활용될까? 내가 일하는 노동건강연대 회원 중 건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 물어보니, 회사에서도 말은 그렇게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노동자는 자신의 현장에 노동조합이 있어서 그런 답변이라도 들을 수 있었다. 쪼개질 대로 쪼개져 있는 건설업 고용 구조에서는 그 구조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오로지 노동자 스스로 견디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전국의 옥외 노동자는 160만 명~180만 명으로 추산된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 많은 노동자들이 폭염에 일을 잠시 멈추거나 피할 선택권이란 없다. 그곳이 노동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지쳐 쓰러지거나, 그만두거나 둘 중 하나다. 예방이란 그림의 떡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에서 나온 대책은 단순한 ‘사업주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권고일 뿐이다.
IT의 성장과 함께한 노동자의 과로를 방치한 정부, 이번에는 다를까?
한 가지 질문이 있다. 사업주가 명확지 않은 노동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스스로 쉬어야 하는가? 보상을 더 주어야 하는가? 질문을 계속하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을 휩쓴 벤처 열풍이 떠올랐다.
한국 사회의 IT 벤처 붐 당시, 강남의 테헤란로는 부와 도전의 상징이었다. 많은 혁신가의 아이디어가 쏟아졌고, 돈이 모였고, 새로운 기업이 생기고 망하기를 반복하면서 대박을 터트리고 자리를 잡은 회사들이 늘어갔다. 2000년대 대학생들에겐 컴퓨터공학, 멀티미디어공학 등 코딩, 웹 디자인 전공 인기가 하늘을 치솟았다.
그렇게 한국사회의 중요한 사업으로 자리매김한 그 산업들은 이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핵심이 되어버렸다. 밤새 코딩을 하고, 온라인 서비스를 만들고 유지하는 IT노동자들의 일상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갈아넣는다'는 표현이 생겼지만 정부나 국회에선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2016년 국내 1위의 핸드폰 게임 개발 회사 넷마블에서 젊은 노동자가 과로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때 노동건강연대는 넷마블 전현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고 이를 통해, 장시간 노동,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다. 벤처가 거대한 기업이 되고, 산업이 되어 사람들을 쪼개고 골병들게 한 지난 20년 동안, 제도는 그들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마치, 신산업은 노동자들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니 사업주 마음대로 하라는 것처럼.
2019년 현재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사업주가 누군지 불확실한 노동이 늘어가는 것이다. 그동안에도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노동자들이 존재했다. 택배, 골프장 캐디, 정수기 코디, 카드 배달 노동자, 화물차 운전기사 등이 그들이다. 이제는 배달을 중심으로 사업주 없는 노동이 증가한다. 위의 특수고용노동자도 플랫폼노동으로 확장되어 더 고용관계가 불분명해질 확률이 높다. 앞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노동들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고용관계가 중요하긴 한 건가?
고용관계를 제도로 만들고 최저기준을 설정해 노동자를 보호하는 이유는 인간이 무한경쟁에 내몰리게 하지 않기 위함이다. 적정한 노동을 하더라도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살아갈 수 있게 제도를 만들어 이 사회가 인간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 취지가 깨지고 있는 요즘, 정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제도가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헌법 제 32조 3항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 정신을 살려, 기술이 인간을 무한경쟁으로만 내모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보호하는 법안이 통과 과정을 거치고 있다. 한 상원의원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노동법상의 보호를 노동자들로부터 빼앗으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비용을 캘리포니아 납세자에게 떠넘기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2018년 라이더유니온의 폭염수당 문제제기는 노동과 고용의 패러다임 변화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앞으로 플랫폼 노동이 새로운 노동관계를 만들지, 기존의 노동관계로 편입될지는 어쩌면 우리의 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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