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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5세 청소년, 경찰서 다녀온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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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5세 청소년, 경찰서 다녀온 '썰'

[청소년의 목소리에 권리를] 참정권 박탈도 모자라 선거운동도 금지된 청소년

내가 경찰 출석이라니

2018년 7월의 어느 날이었다. 같은 반 친구들과 버스 정류장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 내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온 한 마디.

"연수경찰서입니다. OOO 학생 맞죠?"

정말 1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인천광역시 선거관리위원회에게 본인의 #선거법_위반을_자수합니다'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 본인이 쓴 거 맞죠?"
"네, 그런데요."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지금 OO중학교 재학 중이고, 미성년자인 거죠?"
"그건 어떻게 아셨죠?"
"부모님께 (경찰)서로 전화달라고 하세요."
"왜요?"
"법적 대리인이기 때문에 전화를 주셔야 합니다. 학생이 직접 부모님께 말하지 않으면, 저희가 직접 번호 찾아서 연락하겠습니다. 어떤 쪽이 더 나을까요?"

이날 통화의 클라이맥스였다. '이 과정이 무언가 법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나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내가 직접 부모님께 알리는 쪽을 택했다. 이날의 살벌한 전화는 내가 경찰서를 방문할 수 있는 날짜를 조정하는 등의 대화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나는 완전히 '멘탈 붕괴' 상태에 빠졌다.

#선거법_위반을_자수합니다


내가 작성했던 '#선거법_위반을_자수합니다'라는 글이 사건의 중심이었다. 만 19세 미만 청소년은 선거에서 투표만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현행 공직선거법과 정당법은 청소년이 정당에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도, 선거 때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어떤 종류의 선거운동을 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선거에서 투표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억울한데, 현실은 정책에 대한 평가나 지지, 반대 의견도 내지 못한다.

선거는 현재 대의민주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고 있는 청소년들은 시민으로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선거에 대해서 어떠한 권리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현행 공직선거법과 정당법은 청소년을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마치 비시민과도 같이 취급하는 것이다.

'#선거법_위반을_자수합니다'는 청소년 정치 참여의 장벽인 현행 공직선거법에 정면으로 대항하려는 시도였다. 당시 해시태그 운동은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하지만 지워진 존재인 청소년 당사자가 참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대신 자신의 지지 후보에게 힘을 실어달라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에게 했다는 것을 선관위에 '자수'하는 형식의 글이었다. 청소년에게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 현행법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선거운동에 더욱 참여했으니 선거법 위반이기에 체포할 수 있다면 체포하라'는 꽤나 도발적인 움직임이었다. 이 해시태그가 페이스북에 돌기 시작하자, 각 지역의 선관위에서는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여기까지는 반쯤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선관위까지 이 해시태그에 집중했다는 것은, 청소년 참정권이라는 의제를 이슈화하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말로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경찰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바로 내 글과 나 자신이었다.

내가 작성한 글로 인해, 그저 단순히 참정권을 요구하는 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 상황을 두 눈으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나 답답했다. 기존의 법과 질서에 문제의식을 던지고 '반항하는' 것조차도 용납되지 못하는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결국 감히 만 15세의 청소년이 정치에 참여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경찰서로 소환되었다.

뫼비우스의 취조실


나는 사이버수사팀으로 향했다.

"'인천광역시 선거관리위원회에게 본인의 #선거법_위반을_자수합니다'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을 작성한 사람이 본인 맞습니까?"
조사는 이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조사는 반나절 조금 넘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 대략적인 흐름은 이랬다.
"글을 본인이 작성했나요?"
"네."
"정의당 예비당원협의체 '허들' 소속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 글을 쓰라고 누가 지시했나요?"
"지시한 사람은 없습니다. 해시태그 릴레이 형식의 글인데, 일종의 캠페인입니다."
"글을 자발적으로 작성했나요?"
"제가 썼다니까요."

이 대화의 무한 반복이었다. 그야말로 뫼비우스의 취조실이었다. 조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 나는 또 한 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청소년은 자신이 쓴 글도 남이 쓰라고 썼다고 의심이나 받는 취급을 받을까. 나도 글 쓸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데 왜 청소년은 '미숙한 존재'라서 누군가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할까. 내 머릿속은 이 질문들로 가득 찼다. 경찰 조사에서도 나는 내가 쓴 글 때문에 조사를 받는다기보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시켜 이 글을 쓰게 한 것이 아닌지 의심받는 느낌이었다. 나는 형사에게 몇 번이고 말했다.

"그 글, 제가 썼습니다. 누군가 시킨 것은 아닙니다."

내가 경찰에 소환된 가장 큰 이유가 된 공직선거법의 청소년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조항은 청소년이 정치적으로 순수한 상태이고, 청소년이 정치적으로 순수한 상태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관념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취조를 당하며 '자발적으로 작성했는지' 여부를 끊임없이 확인받아야 했던 이유 또한, 청소년은 정치적으로 순수한 상태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은 누군가 시킨 사람이 있을 거라는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은 정치적으로 순수하다는 틀에 갇히게 해서는 아니 되는 존재이다. 이미 수많은 청소년은 자신만의 정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렇고, 수많은 청소년 단체의 청소년 활동가들이 그렇다. 내가 소속된 정의당 예비당원협의체 '허들'의 존재는 청소년의 정치 참여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허들'은 정의당 내의 예비당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모임이다. 정의당의 예비당원에게는 어떠한 권한도, 권리도, 의무도 없음에도 많은 예비당원들은 자신의 지지정당 내에서, 비청소년 당원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참여하기 위해 '허들'을 만들어 지금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허들'과 '#선거법_위반을_자수합니다' 캠페인 자체가 이러한 관념들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잘못된 것인지 보여준다.

지워진 존재를 다시 쓰자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정치 관계 법들은 반드시, 무조건 바뀌어야 한다. 시민의 권리는 국가가 시민에게 '베풀어 준'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하는 권리이다. 즉, 청소년의 참정권은 당연한 권리이나 법에 의해 빼앗긴 것이다.

이미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은 청소년들의 강력한 요구로 청소년 참정권을 인정하고 있다. 스스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자랑하는 한국만이,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가진 국가 가운데 한국만이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 머뭇거리고 있다.

내가 경찰서에 간 때는, 부패한 정권을 내쫓기 위해 곳곳의 시민들이 촛불을 든 게 채 2년도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그 촛불은 추운 겨울의 차가운 광장을 뜨겁고 환하게 밝혔고, 끝내 무능하고 억압적인 대통령을 몰아냈다. 그리고 촛불을 든 사람들 중에는 만 19세가 넘는 '투표권자' 뿐만 아니라, 만 18세 아래의 지워진 존재, 청소년도 있었다.

그럼에도 청소년은 정치적으로 순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나온 차별적 법률 조항이 지금까지도 무너지지 않는 장벽처럼 존재하는 상황은 정말이지 코미디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실제로 청소년들이 경찰서에 들락거려야 했다는 사실은 공포스럽기 짝이 없다.

이제는 코미디도, 공포물도 끝나야 한다. 청소년은 단순히 어리고 천진난만한 존재도, 미숙한 존재도 아니다. 청소년에게는 무엇이든 참여할 의지가 있고, 행동할 힘이 있다. 이제는 정치관계법 개정을 통해 청소년이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뒷받침해야 한다. 청소년에게는 투표권 뿐만 아니라 정당 참여권, 선거운동 참여권 등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그것은 청소년에게 권리를 하사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의 권리에 가해졌던 규제를 없애는 것일 뿐이다. 정치 관계 법을 개정하고 청소년 참정권을 인정하는 일, 그것이 청소년이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길이다. 청소년이라는 지워진 존재를 다시 쓰자.

'청소년의 목소리에 권리를'은 정치, 지역사회, 학교운영에서의 청소년의 참여할 권리를 이야기하기 위해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기획한 시리즈입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선거권 연령 하향과 청소년의 정당활동 권리 보장, 조례 주민발의권을 비롯해 지역사회 참여권과 학교운영에 대한 학생 참여권 보장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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