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배나 뻥튀기된 산업폐기물 매립 계획
문제의 산폐장은 서산 오토밸리산업폐기물 매립장으로 민간업체인 서산EST가 오토밸리 산업단지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처리하겠다며 서산시 지곡면 일대 5만9714제곱미터 부지에 매립시설을 추진해왔다. 이곳에 총 132만4000세제곱미터의 산업폐기물을 매립하겠다는 계획인데 지하 40미터를 파서 폐기물을 묻고도 그 위로도 5미터 높이의 폐기물 산이 생기는 규모다.
주민들은 업체가 폐기물 발생량을 허위로 과대 산정해 매립장을 추진했다고 주장하며 산폐장 건설을 반대했다. 1997년 서산EST가 충청남도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는 매립폐기물 양이 31만2200세제곱미터였다. 하지만 2014년 업체는 매립폐기물 양을 132만4000세제곱미터로 변경해 실시계획 변경 승인을 신청한다. 폐기물 매립용량을 무려 4배 이상 늘려 변경 신청한 것이다. 당시 충청남도와 서산시도 업계가 산정한 폐기물 발생량이 과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서산 오토밸리산업단지에 57퍼센트 정도 업체가 입주해 있었는데 이들의 실제 폐기물 배출량은 일일 26.55톤이었다. 하지만 서산EST는 오토밸리 산업단지 입주 예정 업체들의 폐기물 배출량을 일일 1684.7톤으로 추정했다. 입주 예정 업체는 기존에 입주해 있는 업체와 동일한 업종의 업체들로 폐기물 종류나 발생량이 비슷한 데다 이미 반 이상 입주한 업체들보다도 입주 예정업체들이 배출하는 폐기물이 65배나 더 많으리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한 것이다. 업체는 산정방식의 차이 때문이라면서 별도의 근거나 자료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충청남도는 서산EST의 변경신청을 승인해줬다. 폐기물이 과다 산정된 것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대신 충청남도는 '서산 오토밸리 산업단지 내에서 발생하는 폐기물만 매립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고 서산EST도 이를 약속했다. 충청남도로부터 사업승인을 받은 업체는 금강유역환경청에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하고, 2016년 금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지정폐기물처리 사업계획 적합 통보를 받았다.
더군다나 주민들은 산폐장 주변에 2000세대가 입주해 있는 아파트 단지가 있었지만 서산시나 업체가 산폐장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주민들의 의견조차 구하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업체의 공사가 시작되고 비로소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은 서산태안환경연합 등 지역 시민단체와 연대해 '환경파괴시설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는 서산시민사회연대'(이하 서산시민사회연대)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반대 활동에 돌입했다.
"산단 내 폐기물만 처리" 약속하더니 허가받자 돌변
서산시는 산단의 폐기물처리시설은 의무설치시설이라고 주민들에게 설명했다.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하 폐촉법) 시행령에 따라 산업단지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양이 연간 2만 톤 이상일 때 의무적으로 폐기물 처리시설을 설치해야 하는데 오토밸리산업단지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이 연간 5만 톤 이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서산시민사회연대는 5만 톤이라는 수치는 서산EST가 제공한 자료라 믿을 수 없다며 공사를 중단하고 폐기물 발생량에 대한 정확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실제로 서산시민사회연대가 시의회를 통해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오토밸리산업단지 입주율이 80퍼센트였는데 이때 오토밸리산업단지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1만3000톤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서산시민사회연대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업체는 오히려 공사 속도를 높였다. 그러던 중 업체의 서류조작과 계약 위반 사항이 드러났다. 서산EST가 충청남도로부터 승인받은 사업계획서와 금강유역환경청에 제출한 사업계획서 내용이 달랐다. 분명 충청남도에는 오토밸리 산단 내 폐기물만 처리한다는 조건으로 승인을 받아놓고는 금강유역환경청에 제출한 계획서에는 영업 구역을 서산 오토밸리 및 인근 지역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즉, 서산 오토밸리 산단에서 발생한 폐기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산업폐기물도 매립하겠다고 사업내용을 변경해 제출한 것이다. 외부 폐기물 반입 금지는 충청남도뿐만 아니라 서산시와 맺은 입주 계약에도 명시된 내용이었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충청남도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는 일반폐기물과 지정폐기물의 비율이 4.4대 1이었다. 헌데, 환경청에는 일반폐기물과 지정폐기물의 비율을 1대 1로 바꿔 제출했다. 지정폐기물은 사업장폐기물 중 주변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거나 오염성 폐기물 등 인체에 위해를 줄 수 있는 유해한 폐기물로 폐유나 폐산, 폐알칼리, 중금속이나 유기용제를 용출시키는 폐기물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 때문에 지정폐기물은 별도의 처리와 관리, 감시 등이 필요하다.
업체의 서류 조작과 계약 위반 사실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더 거세게 반발했다. 뒤늦게 사실을 확인한 금강유역환경청은 2018년 5월 서산EST에게 충청남도 산단계획 승인 조건과 일치시키라고 주문하며 적정통보 취소를 내렸다. 충청남도와 서산시 역시 외부 폐기물 반입은 허용할 수 없다며 서산EST의 영업 구역 확대 요청을 거부했다.
곳곳이 시한폭탄! 관련 법 손봐야
기나긴 싸움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기대와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서산EST가 산업폐기물매립업의 영업 범위를 제한할 수 없다는 '폐기물관리법 25조 7항'을 들어 환경청과 충청남도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감사원은 사업자의 영업권을 제한했다는 취지로 환경부와 충청남도, 금강유역환경청을 상대로 행정감사에 나섰다.
지난 5월 20일 서산시민사회연대는 감사원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서산 주민들과 관공서를 속이고 외지 유독성 폐기물까지 유입하여 막대한 이윤을 남기려 한 산폐장 업자에 대해 행정기관이 내린 행정처분은 당연한 것"이라며 "시민의 건강을 위해 일해야 할 국가기관인 감사원이 행정감사를 통해 오히려 악덕 사업주의 편을 들고 있다"며 감사 중단을 촉구했다. 권경숙 서산태안환경연합 사무국장은 "행정감사를 받는 담당 공무원들도 감사원 조사관들로부터 영업 범위를 제한할 수 없으니 시정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행정소송도 감사 때문에 지연됐다. 상위 기관의 외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비판했다.
서산시민사회연대는 산업폐기물의 영업 구역 제한을 금지한 '폐기물관리법 25조 7항'이 사업자에 의해 악용되고 있다며 관련법의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권경숙 사무국장은 "외부 폐기물 반입 금지를 승인 조건으로 내걸었을 때는 문제 삼지 않다가 허가를 받고 난 후 말을 바꾸고 있다"며 "처음부터 외부 폐기물을 반입해 수익을 낼 작정으로 폐기물 발생량도 허위로 부풀려 매립시설을 계획한 것이다. 법을 악용해 지자체와 주민들을 기만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폐촉법과 폐기물관리법이 혼재되어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토밸리 산폐장처럼 산단은 폐촉법에 따라 산단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한 폐기물처리시설을 직접 설치 운영하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설치 운영해야 한다. 오염 발생인자가 오염물질을 처리하라는 취지다. 의무시설이기 때문에 주민의견수렴 절차가 따로 없고 주민들의 반대도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폐촉법에 따라 설치된 산폐장이라도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영업 구역을 제한할 수 없다. 폐기물 발생지역과 폐기물처리 입지 지역 간의 균형이 맞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 간 이동을 금지시키면 폐기물 대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부 폐기물이 들어오는 순간 폐촉법의 취지는 퇴색되고 주민들 입장에서는 산단과는 별개의 새로운 폐기물매립장이 들어서는 셈이다. 실제로 음성군 금왕읍 금왕테크노밸리산단 폐기물 매립장 문제도 이와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다. 사업 초기 산단 내 폐기물만 처리한다고 해놓고 전국 폐기물 반입을 추진하고 있다며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그동안 환경부가 손을 놓고 있었다. 폐촉법을 손봐야 한다"고 홍 소장은 말했다.
거짓과 조작에 맞선 주민들의 싸움
서산시민사회연대는 산폐장을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산단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처리시설까지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폐기물 발생량을 허위로 부풀리고 주민과 지자체를 속이고 들어서는 산폐장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산폐장 반대 운동이 아닌 거짓과 조작에 맞선 주민들의 싸움인 것이다. 서산 오토밸리 산폐장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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