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한 궁중음악이 울려 퍼진다. 임금 앞에서 궁중연례를 치를 때 연주하는 정악합주곡이다. 평소에 듣기 어려운 곡인지라 현장에서 듣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가 하면 두 번째 연주는 둥근 박통에 24개의 죽관을 꽂은 생황이 들숨과 날숨으로 화음을 들려준다. 서양악기로 비유한다면 하모니카의 음색을 닮았다고나 할까.
이처럼 모든 것이 새롭다. 이어서 나빌레라의 창작무용 ‘아리랑을 노래하다’와 태평소를 더욱 파워풀하게 개량한 장새납 협주곡 ‘용강기나리, 열풍’에 이르러서는 관중들의 흥겨움과 어깨 들썩임이 곳곳에서 보인다. 박수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우리 음악이었다.
서양음악에만 매몰되지 않고 이곳에서 우리 음악의 아름다움을 절로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무지구의 광주공연마루에서 매일 오후 5시면 우리의 국악한마당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182석의 객석은 1시간여 동안 ‘얼씨구’ ‘좋다’ ‘어히’ 등 추임새, 연호를 하며 중간박수를 치는 등 즐거움이 묻어났다.
20일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이 ‘열풍’이라는 주제로 펼친 이날 공연은 5호 태풍 다나스가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바람과 비가 흠뻑 몰아치는 궂은 날씨였지만 관중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곳을 찾았다. “오늘, 누가 얼마나 올까?”라는 필자의 생각은 괜한 기우였다.
사회를 맡고 있던 김산옥은 관객들을 휘어잡을 만큼 매끄러운 솜씨를 보였다. 그러더니 이번에 자신이 한 곡조 뽑겠단다. 그제서야 안내책자를 들여봤더니 노래곡 ‘쑥대머리’와 ‘제비노정기’를 부르겠다고 한다. 우리 광주의 국창 임방울 선생의 귀에 익은 대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오른 손이 펼쳐질 때는 ‘얼씨구’, 왼 손이 드리워질 때는 ‘좋다’라는 관객과의 약속을 즉석에서 가졌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두 손이 이렇게 저렇게 펼쳐질 때마다 사람들은 박수와 함께 추임새를 한껏 추어올렸다. 노래가 끝나자 ‘앵콜’이 쏟아졌다.
우리 음악을 들으면서 가슴에는 기쁨이 가득 찼다. 관객들의 박수는 상당히 길게 쳐댔다.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리라. 이 자리는 방탄소년단도 울고 갈만한 자리였다.
어느덧 마지막 공연이었다. 시립관현악단의 연주자들이 모두 힘껏 연주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관현악곡 ‘신푸리’는 상당히 빠른 속도감이 있어 연주자들이 연습하느라 고생깨나 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양한 악기들마다 저마다의 가락이 있었다.
기본 가락은 ‘별달거리’ 장단이라 하여 사물놀이에서 매우 빠르게 연주되는 장단이다. 이는 별과 달이 나오는 덕담의 반주로 쓰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휘모리장단으로 연주를 하더니 꽹과리 연주자 두 명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태평소 능게가락이 높은 음을 내며 오르내리는 듯 신명을 힘껏 풀어냈다.
관객들은 쉬지 않고 박자에 맞춰 함께 박수를 쳤다. 마치 관객들은 박수 소리로 연주에 참여하는 듯 했다. 이런 흥겨움 속에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된다는 감정을 경험을 했을 것 같다. 다시 앵콜 연호에 연주자들도 신이 나는 듯 광주공연마루는 빛이 났다.
이날 남녀노소 가족 단위로 관람하는 이들이 많았다. 우리 음악을 좋아하는 모임에서 무리지어 들어오기도 했다. 이곳을 찾으려면 공연 전날까지 사전예약을 해야 할만큼 인기가 높다. 지정좌석제를 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정기적으로 국악공연을 해왔다. 지난 7월 12일부터는 세계수영대회 기간동안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오후 5시에 열리고 있다.
이번에 진행되는 광주공연마루 공연이 세계수영대회 참가선수단에게 광주의 문화와 우리 전통음악을 알리겠다는 취지도 담고 있다. 그렇다면 대회측과 연계하여 선수단이 매일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겠다. 아직도 그게 미흡한 듯 이날 공연 때는 수영선수단이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관객들이 좋은 장면을 사진을 찍으려는 데 스텝이 다가와 “저작권 때문에 사진 촬영금지”라고 말한다. 공연 시간 내내 이곳저곳에서 제지하는 모습이었다. 사진 및 영상 촬영 금지라는 안내문을 공연장 입구에 알리거나 공연시작 전 무대 화면이나 안내방송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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