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3월 5일에 창간된 조선일보는 '쇠는 나이’로 치면 올해로 꼭 100살이다. 같은 해 4월 1일에 첫 호를 펴낸 동아일보보다 27일이 앞섰으니 현존하는 인쇄매체 중에서는 '최고령'이다. 조선일보는 이런 역사는 물론이고 '현재 최고의 발행부수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 때문에 스스로 '1등 신문'이라고 부른다. 과연 그런가? 한국사회에서 '1등 신문'이라고 자랑하려면 민족 구성원들의 최대 염원인 통일에 이바지하고 민주사회를 건설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와 정반대 길로 치달아 왔다. 그러면서도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지, 정권의 운명까지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듯이 '안하무인' 격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최근 조선일보는 대한민국 주권자 대다수의 여론을 등지고 일본의 무분별한 '경제 보복'을 두둔하는 듯한 기사와 논설로 시민단체들과 전문가들의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일제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 피해자들(조선인)의 손을 들어준 일이다. "강제징용은 반인도적 불법행위이므로 1965년 한·일 정부 간 청구권협정이 있었더라도 개인별 위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의 과거 야만적 '식민 지배'에 대해 사과를 하기는커녕 신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는 총리 아베 신조는 그 판결이 '국제법 상식'에 어긋난다면서 피고인 미쓰비시중공업이 배상을 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에 대해 '경제 보복'을 가하기 시작했다. 특이한 사실은 한국의 극우정치세력과 수구언론이 그런 '논지'에 동조한 것이었다.
대표적 언론은 조선일보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13일자 사설('일 계산된 홀대 말려들지 말고 냉정하게 대처해야')에서 "모든 일을 사전에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본의 특성상 이번 홀대 행위도 의도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흥분하면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 일부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일으키려는 것도 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보다 앞서 지난 4일자 사설은 "이번 사태는 강제징용자 배상을 둘러싼 외교 갈등 때문에 빚어진 정부 발 폭탄"이라며 사태의 책임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씌웠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자유언론실천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등 16개 언론·시민단체들은 지난 16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의 어안을 더욱 벙벙하게 만드는 것은 이 사건에 대한 일부 언론들의 보도태도"라며 "특히, 조선일보는 부당한 일본의 경제보복을 극복하고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보호해야 할 국면에서 도대체 어느 나라 신문인지 우리 눈을 의심케 하는 보도들을 쏟아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에서는 이런 지적도 나왔다. "더 황당한 것은 이런 조선일보의 보도가 조선일보 일본어판을 통해서 일본에 소개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정부를 비판하고 일본 측을 두둔하는 댓글까지 일본어로 번역해 제공함으로써 일본인들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일본의 반한감정을 증폭시켜서 한·일 관계를 악화시킨 책임이 조선일보에 있는 것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와 '궁합'이 척척 들어맞는 듯한 자유한국당은 지난 2일 "일본 무역 보복 조치, 수출 7개월 연속 마이너스, '경제 폭망'은 문재인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고, 그 당 원내대표 나경원은 지난 4일 국회 연설에서 "감상적 민족주의, 닫힌 민족주의에만 젖어 감정 외교, 갈등 외교로 한·일 관계를 파탄 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토착 왜구'라는 소리까지 듣는 것 아닐까?
조선일보의 친일 행각은 역사가 오래고 뿌리가 깊다. 대표적인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1919년의 3·1혁명에 화들짝 놀란 일제 조선총독부가 사탕 발림처럼 발표한 '문화정책'에 따라 1920년에 창간된 조선일보의 중심은 대지주계급과 예속자본가들의 친일단체인 대정친목회와 유정회 등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조선일보는 1934년 11월 11일자 석간 1면 기사('대원수 폐하 대본영에 나가시다')에서 일본 왕의 움직임을 이렇게 보도했다. "천황 폐하께서는 11일부터 거행할 올해 육군특별대연습을 어통재(御統裁)하시기 위하여 10일 동경어발 일로 대본영에 나가시다." 일본 왕의 생일인 '천장절'(1939년 4월 29일)을 맞아 조선일보가 조간 1면 머리에 올린 사설('봉축 천장가절')은 과연 이것이 우리 민족의 한 사람이 쓴 것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광명이 동천에 충일하고 생생한 기력이 모토(牟土)에 편만하여 있다. (···) 춘풍이 신록에 빛나는 이 청상한 계절에 제하여 만민일체로 천장의 가절을 봉축하는 것은 해마다 경하의 염을 새롭게 하고 감격의 정을 깊이 하는 바 있다."(참고로 말하면, 동아일보도 조선일보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최근 조선일보의 친일 행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자 지난 17일 한 '커뮤니티'에 '조선일보 광고 불매운동'을 제창하는 글이 올랐다. 조선일보 보도가 일본 측 주장의 근거로 쓰이는 등 그 신문이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일본 극우 여론전에 이용되고 있는 가짜뉴스 근원지 조선일보 폐간 및 TV조선 설립허가 취소'라는 제안이 올랐다. 19일 현재 참여 인원은 5만1천명을 넘었다.
조선일보를 응징하거나 폐간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그 신문 사주와 종사자들은 오래 전에 이미 '안티조선 운동을 가볍게 이겨낸 바 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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