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말 반대로 해야 돈을 번다."
요즘 강남을 비롯한 곳곳에서, 심지어는 최근 TV 뉴스 시간에서조차 들을 수 있었던 민심이다.
"내 말이 틀리는지, 아파트값을 보라"는 게 이같은 얘기에 뒤이어 나오는 얘기다. 정부가 지난해 중반이래 무려 14차례 '강도 높은' 부동산투기 대책이라는 것을 쏟아냈지만 1~2주후에는 도리어 폭등하지 않았냐는 주장이다. 할 말 없는 '맞는 얘기'다.
이는 한마디로 말해 정부 주장과 정반대로 가는 '청개구리 투자'를 해야만 떼돈을 만질 수 있다는 얘기다. 오래 전부터 농민들 사이에 파다한 "정부 지시와 정반대로 농작물을 심어야 돈이 된다"는 이야기의 '도시판 리바이벌'인 셈이다.
지독한 '정책 불신'이자, 위태로운 '민심 이탈'이다.
***아파트값이 폭등하는 데 3% 성장이 무슨 의미**
김진표 경제부총리는 올해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3% 성장'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지난 27일 문제의 긴급경제장관간담회에서 시대착오적 '현금카드 경기 부양책'을 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연초 5% 성장을 호언했다가 그후 4%, 3%로 잇따라 두차례나 목표성장치를 낮추었고 지금 와서는 국내외 모든 경제전문기관들이 한결같이 '2%대 성장'을 전망하고 있는 상황이니, 경제 최고수장인 경제부총리로서는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3% 성장'을 달성하고 싶어 초조해 하는 것도 이해 안가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껏 내놓는 대책이라는 게 '아파트 거품'이고 '플라스틱 거품(카드 거품)'이라면, 이는 대단히 심각한 상황 인식이자 정책 방향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단언컨대 '2% 성장'이냐 '3% 성장'이냐가 중요치 않은 시점이다. 불과 지난 일주일 새에 강남 등 서울의 핵심 아파트단지는 물론, 전국의 주요 대도시 아파트값이 '3%대 폭등'을 하는 기막힌 상황에서 연간 2% 성장이냐 3% 성장이냐를 따진다는 것은 애당초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보다 아파트값이 수십배 폭등하는 세기말적 상황은 정작 외면하며, 연간 3% 성장만 고집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 묻더라도 결코 경제수장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그가 '경제인'이 아니라, 내년 총선 출마를 희망하는 '정치인'이라면 모르지만 말이다.
***'진념 경제팀'의 전철을 밟는 '김진표 경제팀'**
"도대체 요즘 왜들 이러느냐"고 물으면, 아는 경제관료들 가운데 열에 아홉은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다음과 같이 비교적 솔직히 답한다.
"가뜩이나 내수경기가 침체돼 경제가 어려운 판에 아파트값마저 내리면 경제가 망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파트 경기마저 죽였다면 올해 성장률은 마이너스가 됐을 것이다."
"신용카드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카드 사용을 엄히 억제하니 3백40만명의 신용불량자가 생겨 자살자가 속출하는 등 심각한 사회-정치불안이 야기되고 카드사들이 연쇄도산한 위기에 처하며 내수와 금융시장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일단 경제부터 살려놓고 볼 일 아니냐."
얼핏 논리적으론 그리 틀리지 않아 보이는 주장들이다. 하지만 조금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러기에 세간에서 '하루살이 공화국'이란 혹평을 듣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작금의 내수경기 침체는 과거 2~3년간 경제관료들이 애용한 '내수 부양책'의 필연적 반작용이다. DJ정권 후반부 '진념 경제팀'이 아파트값 폭등과 신용카드 남발을 눈감아줘 거품을 양산하다가, 일차적으로 카드 거품이 터진 데 따른 필연적 귀결이다.
'김진표 경제팀'은 그러나 이같은 '진념 경제팀'의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아 근원적 해법을 찾으려 하기는커녕, 자신의 재임기간중 '눈앞 성장률'에 급급하며 도리어 전임 경제팀의 실수를 되풀이하려 하고 있다. 김진표 경제팀은 이같은 주장을 노무현 대통령등 청와대에도 부단히 주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경제 재앙'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서울만 싸늘하다"**
"요즘 뉴욕이나 도쿄, 타이완 등 세계 거의 모든 금융시장에서는 곧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들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단 한곳, 서울만은 그렇지가 않다. 싸늘한 냉기만 흐를 뿐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냉기가 짙어지는 느낌이다."
한 외국계 대형펀드의 매니저가 최근 기자에서 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앞으로의 한국경제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었다.
"미국경제가 좋아지고 세계경제가 좋아지면 가장 큰 반사이익을 볼 나라는 다름아닌 수출의존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한국이다. 올 들어 외국인 주식투자가 봇물 터진듯 밀려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나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투자해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해마다 8%이상 성장하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성장엔진'의 주변국가중에서 한국만큼 반사이익을 얻기에 유리한 고지에 있는 나라도 없기 때문이다. 홍콩이나 싱가폴, 그리고 대만까지도 중국이 필요로 하는 규모의 제조업 캐퍼(용량)와 노하우를 갖고 있질 못하다. 일본과 한국만이 중국 성장에 필요한 중간재와 제조업 노하우를 제공할 수 있는 국가인데, 중국이 일본을 적잖이 견제하고 있는 까닭에 특히 한국이 중간허브로서 중국성장의 최대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과연 한국이 이런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나라인가'라는 근본적 의문이 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관료들이 하는 것을 봐도 그렇고 청와대나 여야 정치권 돌아가는 모양새도 그렇고 모두가 경제는 관심없고 온통 정치에만 관심이 집중돼 있고, 경제주체들은 경쟁력을 키우는 일보다는 투기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탄식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경제와 관련, 줄기찬 '아파트값 폭등'을 크게 우려했다. 그는 "실물경제가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아파트 투기도 지속가능한 법"이라며 "나날이 실물경제의 기반이 무너져가고 있는 만큼 곧 아파트 거품도 폭발할 것"으로 단언했다. 한국이 일본과 같은 '장기복합불황'에 빠져들 위험성이 크다는 경고였다.
***아파트 거품 터지면 1천조대 손실 불가피**
일본정부가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12년간 부동산값이 곤두박질치면서 공중으로 사라진 돈이 1천조엔(우리돈 1경원)에 달한다.
일본경제 규모는 한국경제의 10배에 달하고, 그 결과 일본 돈의 가치도 한국 돈 가치보다 10배가 세다. 따라서 만약 일본과 동일한 장기복합불황에 빠져든다면, 한국경제가 입게될 타격은 1천조엔의 10분의 1에 달하는 1천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단순 수치계산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IMF사태때 우리경제가 입은 타격을 3백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공적자금 투입액 1백60조대에 주식투자 및 기업인수를 통해 외국계가 얻은 차익 1백50조원대 등을 더해 얼추 꿰어맞춘 액수다.
이와 비교해보면 부동산거품이 터지면서 입게 될 1천조원대 손실이란 재앙적 타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경제전문가들이 흔히들 "만약 일본식 장기복합불황에 빠져들면 한국경제가 입게될 타격은 IMF사태때보다 몇배나 심각할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또 말한다.
"일본은 12년간 1천조엔이 날라갔지만 세계최강의 제조업 경쟁력을 통한 무역흑자로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으나 한국의 경우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한국 제조업은 아직 일본 제조업 수준이 못되기 때문이다."
일본식 불황의 늪에 빠져들면 한국경제의 앞날은 없다는 경고이다.
***'관료들의 덫'에서 빠져 나와야**
노대통령은 29일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경제와 민생을 챙기겠다" "성공한 대통령으로서 지지자들에게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민심은 "정부 말 반대로 해야 돈을 번다"는 지독한 경제정책 불신이 지배하고 있다. 이같은 '정책 불신'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대통령이 '경제와 민생' '성공한 대통령'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일본의 경제개혁가 오마에 겐이치는 <관료망국론>이란 저서에서 관료를 '마지막 폭발 시점까지 부단히 자기 확대재생산을 하는 존재'로 규정하며, 일본의 장기복합불황의 핵심근원을 관료들의 복지부동, 무사안일, 집단이기주의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위기의 일본'을 구출하고 근원적으로 개조하기 위해선 위정자가 '관료들의 덫'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조언을 노대통령도 깊숙이 곱씹어볼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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