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톨게이트 캐노피와 지상 사이에는 평소에 없었던 네 가닥의 줄이 연결되어 있다. 두 줄에서는 물이 오간다. 또 한 줄에서는 전기가 오간다. 나머지 한 줄에는 식료품 등 물품을 주고받는 바구니가 걸려 있다. 이 네 가닥의 줄에 위태롭게 기대어 한국도로공사 해고자들이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 위에서 천막을 치고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그리고 캐노피로 올라가는 계단의 문은 굳게 잠겨 있다.
지난 17일 기자가 농성장을 찾은 날 물품을 주고받는 바구니가 달린 줄을 두고 해고자들과 경찰 사이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고공농성 중인 어머니를 생각해 딸이 가져온 비타500 한 박스가 화근이었다.
"다 마시고 병은 내려보내면 될 거 아니야. 이런 거 가지고 정말 이렇게까지 할거야?"
경찰은 유리로 된 물품을 올려보낼 수 없다며 비타500 반입을 막았다. 그 한 박스를 사이에 두고 얼마나 옥신각신 했을까. 실랑이를 보다 못한 딸은 울면서 이내 돌아가 버렸다. 하늘로 비타500을 올려주지 못한 또다른 해고자들도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해 눈물을 흘렸다. 해고자들의 손에 들려 있던 비타500은 결국 아스팔트 바닥으로 내던져졌다. 캐노피 위에서도 악에 받친 목소리가 경찰을 향해 터져 나왔다.
"차라리 (물품을 옮기는 바구니가 달린) 선을 잘라버려. 이놈들아!"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 입사 제안을 거부한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43명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6월 30일 서울 톨게이트에 오른 지 이날로 18일째였다. 43명 모두 여성이다. 7월 1일 한국도로공사는 자회사 입사를 거부한 요금수납원 1500여 명에게 용역회사와의 계약 해지를 통한 해고를 단행했다. 이들이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 위에서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이유다.
한여름에도 감기가 드는 고공농성장의 삶
"저는 바이킹도 못 타거든요. 처음엔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이 무서워 아래를 내려다보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곧잘 내려다봐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캐노피 위 고공농성 참가자 김승화 고덕영업소 전 요금수납원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 김승화 씨는 톨게이트 캐노피에 올라간 첫날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처음에는 천막도 없이 침낭만 들고 올라갔다. 자고 일어나니 침낭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자는 중에 비가 온 줄 알았다. 나중에 알았다. 밤사이 이슬이 내려앉은 것이었다. 지금도 이슬을 피할 대책을 찾고 있다.
한여름 더위에도 제대로 씻지 못해 생기는 피부병, 바닥에서 반사되는 햇볕도 김 씨를 괴롭힌다. 하지만 김 씨를 가장 괴롭히는 건 밤의 추위다. 밤에는 침낭에서 잠을 청하지만 추위가 만만치 않다. 하늘 위에서는 바람이 강하게 분다. 게다가 따뜻한 물이 없어 찬물로 씻느라 감기 몸살기를 느끼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차량 통행이 많은 곳인 만큼 소음과 진동은 물론 매연도 발생한다. 청소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캐노피 위인지라 곳곳에는 새까만 먼지들이 가라앉아 있다. 늘 목이 매캐한 김 씨다. 매연 탓에 손톱 사이로 내려앉은 시커먼 때는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위험과 고생을 무릅쓰고도 김승화씨가 고공농성을 지속하는 이유는 한국도로공사 요금 수납원들의 직접고용은 물론 한국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김승화씨는 "그때는 몰랐는데 인생을 돌아보니 20대부터 40대까지 계속 비정규직 인생을 살아왔더라"며 "20년 동안 (비정규직 문제가) 그대로였다는 이야기인데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 때문에 힘든 건 괜찮았지만 고용불안은 견디기 어려웠어요"
캐노피 아래에도 해고자들이 농성장을 차리고 있었다.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이민자 충주영업소 전 요금수납원은 "(고공농성자들을) 멀리서 얼굴을 보긴 보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난다"며 "그들이 아직까지는 버틸 수 있고 앞으로도 버틸 수 있다고 해주니까 그게 제일 힘이 된다"고 말했다.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오전 6시 40분을 시작으로 3교대 근무를 한다. 이민자 씨는 "3교대 근무에서 야간 근무가 문제였다"며 "남들 쉴 때 일하고 낮에 남들 잘 때 직장 나가는 게 처음에는 몸에 익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구나 3교대 근무를 하다보니 주말에도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었다. 이 씨는 그게 가장 속상했다.
운전자들로부터 욕설을 듣는 경우도 꽤 있었다.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톨게이트 요금 수납소 앞에 차가 몇 대 줄 지어 서면, 빵빵거리면서 욕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하이패스가 도입된 초기에는 요금 미납 차량의 경우, 요금 수납원이 직접 안전봉을 들고 차를 차도에 세워야 했다. 요금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럴 때도 안전봉을 든 이 씨에게 "왜 세우냐"며 욕설을 쏟아내는 운전자들이 있었다.
사실 이런 욕설을 듣는 건, 일 때문이니 괜찮았다. 고용불안이 견디기 어려운 문제였다. 한국도로공사가 인원감축을 발표하면 몇 명은 반드시 해고됐다. 이민자 씨는 "1년마다 재계약을 했는데 재계약 시기가 될 때마다 불안했다"며 "재계약 기준이 없어 계약해지되는 사람이 누가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 와중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추진한다고 했다. 이민자 씨는 환호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여전히 이민자 씨, 그리고 이 씨 동료는 비정규직이다. 아니, 이제는 해고자다.
도로공사 "자회사 고용 혹은 조무 업무" vs 노조 "직접고용과 수납 업무"
한국도로공사 요금 수납원들은 '용역업체가 아닌 한국도로공사의 직원임을 인정해달라'며 2013년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냈다. 그리고 2015년 1심과 2017년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법원은 '한국도로공사가 용역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었으나 실제로는 파견 노동자처럼 일을 시켰고 요금 징수는 파견법이 허용하지 않은 업무'라며 불법파견 판결을 내렸다.
판결에 따르면 요금 수납원들은 직접고용이 되어야 한다. 이제 대법원 확정판결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직접고용이 가로막혔다. 한국도로공사는 자회사 고용 방안을 포함하고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요금 수납원들에게 새로 만든 공사 자회사에 들어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수납업무를 담당하는 자회사가 354개 영업소 전부를 운영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직접고용의 길은 없다”면서 고용 불안 관련해서는 "자회사가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완벽한 신분보장이 된다"고 주장했다.
해고자들은 자회사에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도명환 민주일반연맹 부위원장은 “(한국도로공사) 자회사는 간접고용이라는 면에서 용역업체와 다를 게 없다"며 "그간 용역업체에서 근무해온 요금 수납원들은 그곳의 고용이 불안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해고자들은 기타 공공기관 지정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도명환 부위원장은 "기타 공공기관 지정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지정이 된다고 해도 법률상의 심사 결과에 따라 해제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1월 한국기술자격검정원, (주)인천항보안공사 등 6개 기관이 기타 공공기관에서 지정 해제됐다.
또다른 쟁점은 직접고용 시 수납 업무의 지속 여부다. 이강래 사장은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확정판결이 나면 도로공사 직원 신분을 인정받을 수 있지만, 어떤 업무를 부여할지는 경영진의 재량이다"라며 "수납 업무는 자회사로 이관됐기 때문에 확정판결이 나도 수납 업무를 도로공사가 직접 하지는 않을 것이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도로공사는 현재 스마트 톨링 시스템 도입을 준비 중이다. 스마트 톨링은 차량인식 영상 장비가 고속주행하는 자동차의 번호판을 앞뒤로 읽어 들여 고속도로 이용 요금을 후불 청구하는 방식을 말한다. 스마트 톨링이 도입되면 요금수납원 일자리 감소는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8일, 노동조합 측은 고용노동부 관계자와의 협의 자리에서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한국도로공사, 노동조합이 참여해 사태 해결을 논의할 수 있는 교섭 틀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교섭 관련, 아직 이렇다할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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