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對)한국 수출제한 조치로 반일 감정이 극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대변인이 일부 언론사의 일본어판 보도를 실명으로 언급하며 "이게 진정 국민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냐"고 비판하고 나섰다. 정부·여당 내의 반일 강경론 기류가 투영된 것으로 분석됐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17일 오전 현안 브리핑에서 "<조선일보>는 7월 4일자 '일본의 한국 투자 1년새 마이너스 40%' 기사를 (일본어판에)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에 투자를 기대하나'로, 7월 5일자 '외교를 도덕화하면 아무것도 해결 못해' 기사를 '도덕성과 선악의 이분법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로, 7월 15일자 '국채보상, 동학운동. 1세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청와대'를 '해결책 제시 않고 국민 반일감정에 불붙인 청와대'로 원제목을 바꿔 일어판 기사로 제공했다"고 말했다.
고 대변인은 이어 "뿐만 아니라 <조선>은 5월 7일자 '우리는 얼마나 옹졸한가'라는 한국어 제목 기사를 '한국인은 얼마나 편협한가'로 바꿔 (일어판에) 게재했다"며 "현재도 (일본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 국제뉴스 면에는 <중앙일보> 칼럼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른다', <조선>의 '수출규제, 외교의 장에 나와라', '문 대통령 발언 다음날 외교 사라진 한국' 등의 기사가 2~3위에 랭크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중앙>은 '닥치고 반일이라는 우민화 정책'이라는 칼럼을, <조선>은 '우리는 얼마나 옹졸한가'라는 칼럼을 일어로 일본 인터넷에 게재하고 있다"며 "이것이 정말 우리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전날 조국 민정수석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같은 사안을 언급하며 "혐한 일본인의 조회를 유인하고 일본 내 혐한 감정의 고조를 부추기는 이런 매국적 제목을 뽑은 사람은 누구인가? 한국 본사 소속 사람인가? 아니면 일본 온라인 공급업체 사람인가?"라고 비난했다. 그는 "민정수석 이전에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강력한 항의의 뜻을 표명한다. 그리고 두 신문의 책임있는 답변을 희망한다"고도 했다.
다만 조 수석이 개인 자격으로 SNS에 올린 글과 청와대 대변인의 공식·공개 브리핑은 무게감이 다르다. 청와대가 사실관계 다툼이 아닌 이유로 특정 언론사의 보도에 공식 입장을 내고 비판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브리핑 배경에 대해 "많은 일본 국민이 일본어 번역 기사를 통해 한국 여론을 이해하고 있다"며 "일본에도 한국 여론이 정확히 전달되기 바라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그 기사들을 통해 '한국민이 이런 여론을 갖고 있구나'라고 판단할 것"이라며 "우리도 일본 언론을 통해 '일본 국민이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고 간접 해석하지 않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10일, 15일 3차례에 걸쳐 직접 대일 메시지를 발표했고, 12일에는국가안보실 1차장이 NSC 사무처장 자격으로, 16일에는 국가안보실장이 당청협의에서 직접 강력한 경고를 내놓는 등 청와대는 이번 사안에 총력 대응을 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우리 국민은 '정부는 정공법으로 나가라. 싸움은 우리가 한다'며 일제 상품 불매운동을 하고 있다. 국민을 믿고 정부는 단호히 대처할 것을 주문한다"(16일, 이인영 원내대표)라고 하는 등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이 과거사 문제와 통상정책을 연계시킨 일본 아베 정권의 부당한 조치에 있다는 점은 명백하고, 일부 언론이 일본어판을 통해 마치 일본 정부의 조처를 옹호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보도를 하고 있는 것은 언론비평의 영역에서 지적될 수 있는 문제다. 문화방송(MBC)과 기독교방송(CBS) 등도 이미 비판적 보도를 통해 이를 지적한 바 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도 지난 10일 교통방송(tbs) 인터뷰에서 "일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는 것은 <조선> 일본판이다. 그러니까 <조선> 내용이 한국 여론의 50% 이상이라고 일본인들은 생각하고 있다"며 "그러니까 일본인들도 '아, 현 정권에 대한 반대가 아주 심하구나'(라고 생각한다). <조선> 등의 매체가 그쪽(아베 정권)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우려 섞인 지적을 했다.
하지만 두 언론사 보도의 영향력과 가치 판단을 떠나, 잘못된 사실관계를 교정하는 것 이상으로 청와대가 직접 나서 언론의 보도 방향을 문제삼는 일은 언론 자율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고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신중한 한발 한발을 내딛고 있다. 기업은 정부와 소통을 통해 어떤 여파가 있을지 단기적·근본적 대책 논의를 거듭하고 있고, 국민은 각자 자리에서 각자 방법으로 이 사안을 우려깊은 눈으로 보고 있다"며 "한국 기업이 어려움에 처한 이 상황에서 모두 각자 자리에서 지혜를 모으려고 하는 이 때에, 무엇이 한국과 우리 국민을 위한 길인지 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청와대 관계자도 "한국민의 여론이 뭔지, 우리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안이 필요한지 힘을 모아야 하는 때이고 거기에서 언론의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며 "지금 상황을 좀더 객관적 시각으로, 국익의 시각으로 바라봐주기 바라는 당부의 말씀"이라고 브리핑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가 언론의 사명을 '국익에 복무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의미이지만, 많은 언론사들은 사내 윤리강령이나 보도준칙 등을 통해 '긴급·명백한 사유가 전제되지 않는 한 국익을 이유로 보도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하고 있다. 특정한 기준에 맞춘 국익 절대주의는 사실에 대한 은폐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자유지수가 급감했던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정부는 한미 FTA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추진, 사드 배치 등 많은 사안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국익'을 앞세워 피해가려 했고 이는 그대로 다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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