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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코세이지의 밥 딜런 이야기 <롤링 선더 레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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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코세이지의 밥 딜런 이야기 <롤링 선더 레뷰>

[넷플릭스 세계여행] '자유'와 '서사'를 향한 새로운 여정

내 옆에는 아주 두꺼운 책이 놓여 있다. 무려 1568쪽이나 되는 하드커버인데, 베개를 하기에도 너무 두껍다.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밥 딜런 지음, 서대경 황유원 옮김, 문학동네 펴냄). 밥 딜런이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기념한 책으로, 1961년부터 2012년까지 밥 딜런이 직접 작사한 노래들이 순차적으로 실려 있다. 지난 6월 12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음악 다큐멘터리 <롤링 선더 레뷰(Rolling Thunder Revue): 마틴 스코세이지의 밥 딜런 이야기>를 보고 나서 바로 주문한 책인데, 그 두께가 주는 존재감이 한 달 가까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을 준 것은 합당한 일이었을까? 2016년 당시 뜨거웠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미국의 한 작가는 "뮤지션이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 그렇다고 내가 그래미상 수상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했다. 나는 당시에 아무런 견해를 갖고 있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거기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할 수 없다. 하지만 기껏해야 밥 딜런의 베스트 앨범에 실린 대표곡 정도를 알고 있던 나에게, 그리고 바로 그 정도로 밥 딜런이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던 나에게 이 다큐멘터리와 두꺼운 책이 주는 의미는 그리 가볍지 않았다. 밥 딜런은 수상 소식엔 감사를 표시했지만, 시상식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밥 딜런은 이 질문을 '바람만이 아는 대답'으로 남겨놓았다.

밥 딜런은 21살 때 우리에게 <바람만이 아는 대답>으로 더 많이 알려진 <불어오는 바람 속에(Blowin’ in the Wind)>를 만들었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 한 인간은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을까?(Before you call him a man?)"라는 그의 근원적 질문은 "대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네(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라는 감성적인 대구로 이어진다. 동료 가수 존 바에즈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던 젊은 날, 그의 노래와 행동은 그를 저항가수로 만들었다. 그는 실제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연설했던 '워싱턴 대행진'을 비롯한 수많은 민권운동 현장에서 노래를 부른다. 밥 딜런이 23살 때 만든 노래 <시대는 변하고 있다(The Times They Are A-Change)>는 혁명 전야의 긴박함을 표현한 곡이다. 스티브 잡스가 가장 큰 영감을 받은 노래라고 고백하면서 연설에 그의 가사를 인용한 사실은 꽤 알려져 있다. "지금의 패자는(For the loser now) / 훗날의 승자가 될 것이며(Will be later to win) / 시대가 변하고 있으므로(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라는 구절이다.

그러나 밥 딜런을 저항가수로만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실제로 1964년 발표한 그의 앨범 [밥 딜런의 또 다른 면(Another Side of Bob Dylan)]은 그가 옳고 그름의 이분법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나의 뒤 페이지들(My Back Pages)>이라는 곡에는 "삶이 흑과 백으로 나뉜다는 거짓말(Lies that life is black and white)"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앨범 [모두 가지고 돌아오다(Bringing It All Back Home)](1965), [다시 찾은 61번 고속도로(Highway 61 Revisited)](1965), [블론드 온 블론드(Blonde on Blonde)](1966)는 그가 자아를 되찾는 과정에서 나온 명반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대표곡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도 이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서 '저항'과 '자아'가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분절된 것은 아니다. 그가 통기타와 전자음악을 혼용했던 것처럼. 그가 전자음악을 할 때 관객석에서 얼마나 많은 야유가 쏟아졌는가. 평론가들이 간혹 밥 딜런의 베스트로 꼽는 대곡 <괜찮아요, 엄마(단지 피 흘리고 있을 뿐이니까요)(It’s Alright, Ma(I’m Only Bleeding))>에는 이런 혼돈의 질문들이 가득하다. "불안 속에서 당신에겐 어떤 질문이 떠오른다(A question in your nerves is lit) / 하지만 당신은 그에 들어맞는 대답이 어디에도 없음을 안다(Yet you know there is no answer fit to satisfy Insure you not to quit)" 그는 자신 속으로 투항한 것이 아니라 내면과 사회의 모순 사이에서 격렬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1975년 밥 딜런은 기획 순회공연을 떠난다. 이 투어 이름이 '롤링 선더 레뷰(Rolling Thunder Revue)'다. 이 투어에는 존 바에즈를 비롯한 많은 뮤지션들이 동행했다. 조니 미첼, 엘렌 긴즈버그, 자크 레비 등 30여 명이 동행한 대형 투어였다. 투어 지역의 뮤지션과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밥 딜런은 판을 깔았고, 뮤지션들은 자유롭게 연주하고 노래했다. 밥 딜런은 투어 과정에서 지역의 아픈 이야기를 소재로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영화 <롤링 선더 레뷰>는 당시의 촬영 영상을 토대로 현재의 밥 딜런, 존 바에즈 등의 인터뷰를 결합한 교차편집 형식의 다큐멘터리다.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는 이 작품을 통해 밥 딜런 음악의 자유와 서사를 조명한다. 밥 딜런은 자신이 존재하는 곳에서의 고뇌와 혼돈, 정체를 새로운 형식의 투어에 도전하면서 새롭게 재구성하려고 했다. 스폰서(후원자)들은 경악했다. 최소 2만석 이상을 모아야 수지타산이 맞는데 밥 딜런은 고작 3000명 이하의 공연을 고집했다.

밥 딜런은 천재다. 그의 천재성은 더 큰 노력에 의해 빛났다. 다큐멘터리를 보며, 이 두꺼운 책을 보며, 나는 그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2000회 이상 라이브 공연을 했다. 그는 65세에도, 69세에도 새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거머쥐었다. 11번 이상 그래미상을 받았고, 퓰리처상도 받았으며 노벨문학상도 받았다. 그의 천재성은 또한 상대방의 마음과 처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감정을 이입하는 능력, 그것을 서사화하는 능력, 권위에 의지하지 않고 자유롭게 그것을 표현하는 능력이다. 그가 이웃에 대한, 특히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다. 영화 <롤링 선더 레뷰>는 밥 딜런의 이런 측면을 아주 잘 드러내 준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에 관한 뿌리 깊은 성찰에서 나온 것이며, 타인의 존엄을 소중히 여겨 자신의 작업에 투영해 온 위대한 여정이기도 하다. 단순한 코드에 서사를 부여한 그의 노래엔 실명이 자주 등장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을 전면에 등장시켜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 그는 모든 경계에서 새로운 꽃을 피워낸 드문 뮤지션이자 서사시인이다.

▲ 다큐멘터리 <롤링 선더 레뷰(Rolling Thunder Revue): 마틴 스코세이지의 밥 딜런 이야기>. ⓒ넷플릭스

<롤링 선더 레뷰>에는 <히티 캐롤의 외로운 죽음(The Lonesome Death of Hattie Carroll)>(1964)에 등장하는 '윌리엄 잰징어(William Zanzinger)'에 대해 존 바에즈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둘의 관계는 여전히 애틋하다.

존 바에즈 : 맞아 기억나. '윌리엄 잰징어.' 당신이 이제껏 쓴 최고의 노래 중 하나지.
밥 딜런 : 당신이 부른 최고의 노래 중 하나야.
존 바에즈 : 근데 왜 이제 당신이 불러?
(중략)
밥 딜런 : 당신이 결혼하러 가버려서 기분이 별로였어.
존 바에즈 : 네가 먼저 말없이 결혼했잖아.
밥 딜런 : 그렇지. 하지.
존 바에즈 : 나한테 말했어야지.
밥 딜런 : 하지만 난 사랑하는 여자랑 결혼했어.
존 바에즈 : 그건 사실이지. 그건 맞아. 난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남자랑 결혼했지.
밥 딜런 : 생각을 해서 그래. 생각을 하면 사람 인생 망해.
존 바에즈 : 네가 맞아. 동의해.
밥 딜런 : 가슴이야, 머리가 아니라.

'윌리엄 잰징어'는 지팡이로 하녀를 살해한 지주다. 평생 일만 하던 하녀 51세의 해티 캐롤은 단지 기분이 나쁜 윌리엄 잰징어에게 지팡이로 맞아 죽는다. 딜런은 이 노래에서 사법부의 모순을 신랄하게 폭로한다. 판사는 정의로운 척 온갖 폼을 다 잡았지만, 윌리엄 잰징어에게 고작 6개월 형을 선고한다는 내용이다. 이 투어 과정에서 자크 레비와 공동 작업한 밥 딜런의 장엄한 명곡 <허리케인(Hurricane)>(1976)은 미들급 챔피언이 될 수도 있었던 권투 선수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일급살인 혐의를 뒤집어쓰고, '부처처럼' 감옥에 갇히는 이야기("While Rubin sits like Buddha in a ten-foot cell")를 그린다. 노래 속에서 백인 살인자들은 코트를 입고 넥타이를 맨 채 자유롭게 마티니를 마시며 일출을 즐긴다. 밥 딜런은 실제로 권투 선수 루빈 카터 허리케인 구명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이 투어는 수익성 측면에서 적자였다. 하지만 이 투어 과정에서 만든 앨범 [욕망(Desire)](1976)은 빌보드 앨범차트 5주 1위라는 대성공을 거둔다. 그가 위대한 것은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아서가 아니다. 젊어서 안톤 체호프의 단편을 노래로 만들었던 그는 70살이 넘는 나이에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 <폭풍우(Tempest)>를 제목으로 한 앨범 [폭풍우(Tempest)](2012)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앨범 수록곡 <피의 대가(Pay in Blood)>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봐, 난 삶을 열심히 살아나가고 있어, 꾸준하고도 확실히(Well I'm grinding my life out, steady and sure)"

밥 딜런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자유'와 '서사'를 향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 위 글은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와 공동 게재합니다. (☞ 바로 가기 : <유레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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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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