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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삶, 함께 배우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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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삶, 함께 배우는 교육

<창간기념 르포> 도시형 대안학교 '이우학교'

이달 초 개교한 이우학교의 '이우(以友)'는 '벗과 더불어'란 뜻이다.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가 지어준 이름이다. '이우'라는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상에 던져진 아이들이 이우학교에서 과연 어떤 삶을 만들어갈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문을 연 이우학교를 찾아가면서 기자는 딱 한 가지 기대만 가졌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더불어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이 말 그대로 '이우학교'일 것이라는.

***이우학교 찾아가는 길**

이우학교를 찾아가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분당 미금역에서 한참 동안 택시의 승차거부를 감내한 뒤에야, 겨우 이우학교로 가는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툴툴거리는 기자에게 아저씨는 "먼 거리는 아니지만, 길도 좁고 여기저기 공사 중이어서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은 곳"이라고 택시 기사들의 승차거부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아저씨 말대로 이우학교로 가는 길 곳곳은 공사 중이었고, 덕분에 좁은 길은 오고가는 차로 꽉 막혀 있었다. 한 30분쯤 후에야 예쁜 이우학교 로고가 찍힌 팻말을 볼 수 있었다. 도로 옆 야산 기슭으로 붉은색 톤의 이우학교 건물도 살짝 보였다. 학교 앞으로 택시를 몰고 가면서 이번에는 아저씨가 퉁명스럽게 한 마디 내뱉었다. "이렇게 외진 곳에다 학교를 지어놓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다니라고. 정신없는 사람들이구먼. 건물 하나는 좋네."

아무 대꾸를 안 했지만, 내심 그런 걱정이 들었다. 분당 근처에서 통학을 한다고 해도 결코 쉽게 등하교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한두 시간 만원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시달린 후 녹초가 되어 학교로 힘없이 걸어 들어오는 아이들 모습이 아직 공사 중인 이우학교 진입로와 오버랩되었다.

다시 시내로 나갈 것을 걱정하면서 웃돈을 요구하는 아저씨를 돌려보낸 후, 이우학교로 들어섰다.

<이우학교1>

***책걸상 바꾸는 것도 대안교육이다**

나지막한 3층 건물 세 채가 야산을 따라 비스듬히 서 있고, 건물 곳곳은 왁자지껄한 아이들 소리로 가득했다. 점심시간인 모양이다. 좁은 운동장에는 꽤 뜨거운 초가을 햇살을 맞으며 남자 아이들 대여섯 명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여느 학교와 똑같은 모습이다.

잠시 후, 이우학교 기획을 책임지면서 국어도 맡고 있는 이광호 선생님을 만났다. 먼저 프레시안 독자들이 여러 차례 물어온 것들부터 묻기 시작했다. 우선 등하교 문제를 지적했다. "아침에는 보통 미금역에서 학교로 오는 마을 버스를 이용해요. 학교 입구에서 내려서 한 15분 정도 걸어야죠. 오후에는 두 차례에 걸쳐서 하교 스쿨버스가 운행됩니다. 통학거리요? 보통 1시간은 걸리는 것 같습니다. 수원에서 2시간 걸려서 오는 친구가 있다고 하더군요. 통학하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크게 부각되지 않는 걸 보면 다른 장점들이 많다는 것 아닐까요?"

<과학실>

그렇다. 이우학교는 통학거리를 상쇄시킬 만한 다른 장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도시형 대안학교'를 내세우는 이 학교를 새로운 '영재학교'나 '귀족 학교'라고 보는 곱지 않은 시각 역시 존재한다.

일단 등록금 얘기부터 꺼냈다. "등록금 비쌉니다. 연 2백40만원이나 해요"라고 이 선생님은 운을 뗐다. 다른 사립학교들처럼 교육청의 재정 지원을 안 받는 데다, 학급당 인원이 적고 다양한 특성화 교과를 운영하기 때문에 일반학교에 비해 운영비도 많이 든다는 얘기였다.

이 선생님의 설명은 이어졌다. "두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일반 학교에 비해 비싸다는 견해도 있고, 그 등록금으로 학교 운영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우려도 있어요. 일단은 최대한 노력해서 계속 등록금을 낮춰갈 계획입니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입학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일정 비율의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발할 계획도 있고요. 사실 현재로서는 매년 3~4억원의 적자가 예상됩니다. 그것은 이우학교를 설립한 이우교육공동체가 부족분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등록금 얘기가 끝나자마자 조심스럽게 '영재 학교'나 '귀족 학교'란 비판을 전했다. 반응은 단호했다. "제발 딱지 붙이듯이 그런 말만 하지 말고, 현실 교육을 바꿀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라고 충고해주고 싶습니다." 생각보다 '센' 반응이다. "이우학교는 공교육의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서로 북돋워주면서 같아 나아가야지……."

이광호 선생님은 아이들 책걸상을 가리켰다. 빈 교실에 들어가서 본 아이들 책걸상은 일단 모양부터 일반 책걸상과 다르다. 디자인이 예쁜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체형과 사용의 편이성을 최대한 고려해 자체적으로 고안한 것이라고 한다. 만나는 아이들마다 "학교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로 예쁘고 편한 책걸상"을 꼽았다.

"아이들 책걸상이 선생님들 책상보다 훨씬 비쌉니다. 올해는 소량 생산이어서 더 그랬지요. 올해 사용해서 좀더 보완한 다음 내년에 추가로 주문할 예정입니다. 다음에 주문할 때는, 다른 학교로도 이런 책걸상이 확산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가격도 더 싸질 테고."

대안 교육은 이렇게 아이들 책걸상을 바꾸는, 사소해 보이는 일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똑같은 아이들, 다른 수업**

이광호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간 후, 혼자서 수업 구경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우학교는 수학·영어·체육을 제외하고는 분기별로 '주제'를 정해 집중 학습을 실시한다. 수업을 두 시간 동안 진행하는 것도 다른 학교와 차이점이다. 45분 수업을 하던 중학생 친구들이 두 시간 수업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중학교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태수업2>

맨 먼저 들어간 교실에서 20명의 아이들이 조별로 모여 각자 가져온 과자 포장지에 적힌 갖가지 정보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시간표를 보니 중학교 1학년 '생태' 수업이다. 인상 좋은 선생님 경력도 예사롭지 않다. 원주에서 생활협동조합 운동을 하는 김용우 선생님.

선생님은 "각 과자의 원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손에 들어오는지를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아이들에게 주문을 했다. 선생님 설명 들으랴, 옆에 앉은 친구와 속닥거리랴, 낯선 이방인에게 눈길을 주랴 산만한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 선생님 지시를 따르기 시작한다.

<생태수업3>

중학교 아이들이 발표 내용을 정리하는 동안 고등학교 국어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을 찾았다. 교실로 들어가면서 앞에서 발표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알고 보니 내가 인사를 한 사람은 발표를 맡은 김민석(16) 학생. 정작 국어를 담당하는 김철원 선생님은 교실 구석에 앉아 있었다. 오늘 주제는 "언어의 이질화"였는데, 민석이는 '인터넷 언어'에 대해 조사해 온 것을 친구들에게 발표하고 있는 중이었다. 발표하는 민석이도 앉아있는 친구들도 시종일관 즐거운 분위기다.

한 시간이 지난 후, 잠시 쉬는 시간에 민석이를 만났다.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제일 좋아요." 인근의 비평준화 고등학교에서 한 학기를 마치고 온 민석에게 이우학교의 좋은 점을 물었더니, 대뜸 나오는 대답이다. "수업 준비하는 데 한 다섯 시간 정도 걸렸어요. 선생님께서 인터넷에 올려놓은 자료가 큰 도움이 되었고요."

이우학교의 수업은 선생님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자료를 토대로 아이들 스스로 준비해 온다고 한다. "수업 준비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학원이나 과외를 하면 아이들이 너무 괴로울 거예요."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얘기다.

<국어수업1>

수업 내내 꼭 쿠션을 안고 있어서 눈에 띄었던 배성림(16) 학생에게도 이우학교가 만족스러운지 물었다. "네, 재미있어요. 학교 시설 하나하나마다 학생을 배려한 티가 나는 것도 좋고, 자유로운 수업 방식도 꼭 마음에 들어요." 혹시 불만은 없을까? "개성이 제각각인 친구들이 모여 있어서 서로 의견 충돌이 많은 것 같아요. 다들 공부도 잘하고, 매사에 적극적이고." 성림이는 바로 자기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중학교 1학년 생태 교실을 찾았다. 선생님이 내준 과제를 끝낸 아이들은 개인별로 나와서, 자기가 가져온 과자의 성분과 포장지 재질, 원료 등을 발표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일상적으로 먹는 군것질거리에 얼마나 많은 방부제와 화학 첨가물들이 들어 있는지를 체험할 수 있게끔 하는 수업 방식이다.

교실 밖으로 나서니 수업을 듣고 있어야 할 남학생 한 명이 교실 밖에 나와 있다. 모양새를 보니 벌을 서는 중이다. 이우학교에도 벌 서는 학생이 있구나. "수업 시간이 다 지났다고 큰 소리로 말을 했는데, 선생님이 나가 있으라고 했어요." 대전에서 전학 온 송한솔(13) 학생은 수줍게 얘기한다. "우리 학교에는 체벌은 없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이렇게 창피함을 느끼게 하는 벌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한솔이는 선생님들이 그냥 '주의'만 줘도 잘 알아들을 거라고 말한다. 잠시 후 수업을 마치고 나온 김용우 선생님이 머리를 한번 쓰다듬자, 한솔이 얼굴이 금방 환해진다.

이우학교 학생들이라고 수준차가 없을 리 없다. "아주 심합니다. 특히 영어, 수학의 경우에는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수준별 학습을 하고, 중학생의 경우에는 따로 선생님들이 보충 학습을 실시합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이광호 선생님의 대답이다. 수준별 학습의 경우에는 딱 한 명이 수업을 듣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학생 개개인을 최대한 배려하는 이우학교의 교육 철학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미술실>

***새내기 선생님의 교육관**

이광호 선생님을 졸라서 금방 회의에 들어가야 할 김진희 선생님을 만났다. 사회 과목을 맡은 김진희 선생님은 이우학교가 첫 직장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이우학교에 들어왔다. "기존 교육에 대한 나쁜 점은 많이 봐 왔으니까 자연스럽게 대안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꼭 사회운동을 하겠다기보다는 인간적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서 이우학교에 지원을 했어요."

아이들이 장점으로 뽑은 이우학교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대해 걱정은 없는지 물었다. "이우학교에서는 모든 것을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주도해서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려움이 있지요. 예를 들어 청소의 필요성을 스스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 내가 직접 청소를 해보기도 합니다. 또 수업 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거리지요. 가끔은 소리를 지르고 싶기도 하고. 과도기라고 생각하고 참고 있습니다. 같이 살아가는 과정을 아이들이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요."

고민이 묻어나는 김진희 선생님 표정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김진희 선생님 스스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이우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교육을 꿈꾸는 이우학교**

수업이 다 끝나고 하교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뛰어나가는 아이들 뒤로 흙길을 따라 학교를 내려갔다. 흙길 옆에는 꼭 구경하고 싶었던 3단계 연못을 이용한 오·폐수 자연정화시스템을 아직 만드는 중이다. "부지만 좀더 확보한다면 더 친환경적인 교정을 꾸밀 수 있을 텐데 아쉬워요. 아이들이 직접 농사를 짓기 위해 학교 앞에 대여한 8백평 땅도 언제 개발될지 몰라 걱정입니다."

이 선생님의 말 속에는 분당에 터를 잡은 이우학교의 고민이 들어 있었다. 학교를 둘러싼 야트막한 산이 언제 아파트 단지로 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나지막한 야산 속에 위치한 모교를 이우학교 아이들이 보기 위해서는 "이웃과 자연까지도 더불어 살 수 있는 인간"을 만들겠다는 이우학교의 '이우'가 단지 학교 안에서만 멈춰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이우학교를 뒤돌아보았다. 지금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인 어린 친구들이 이우학교에서 어떤 삶을 배우고 나갈까? 또 이우학교는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 있을까? "모든 학교가 이우학교가 되는 것을 꿈꾼다"는 이우학교 정광필 교장선생님 얘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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