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우리나라를 상대로 경제보복을 시작하는 등 한일 갈등이 거세지는 가운데 이 영화가 개봉한다. 위안부를 부정하는 일본 극우세력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主戰場)>. 주전장이란 전쟁의 중심이자 가장 중요한 전선이라는 의미다. 오는 25일 개봉을 앞둔 영화 <주전장>의 언론 시사회와 기자간담회가 15일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렸다. 이번 간담회에는 이 영화를 연출한 미키 데자키 감독이 참석했다.
이 영화는 그간 한일 관계의 역학 하에 피해자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던 우리의 보편적인 시각과는 그 결이 조금 다르다. 영화는 다양한 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위안부 문제에 관한 심각한 인권유린 주체로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라'는 이들과 이를 부정하는 세력 즉,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을 교차로 보여준다.
따라서 영화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일본 우익 인사들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영화 속 우익인사들은 위안소와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해석이 우리와 다르다. '위안부들은 일본 정부의 강제에 따라 자신의 의지에 반한 성노예가 됐다'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서 돈을 많이 벌어간 매춘부였다"라는 식이다. 이들의 결론은 결국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모집과 위안소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 이전 '보통국가'로의 회귀를 꿈꾸는 극우세력에게 인권유린과 같은 전쟁범죄는 결코 인정해서는 안 될 커다란 흠이다.
한국인으로서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는 또 있다. 영화는 "피해자들의 증언이 계속 번복되고 있다"거나 "한국도 베트남 전쟁에서 위안소를 운영했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에 문제제기할 자격이 없다)", "위안부 20만 명설의 근거는 없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다만 영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우익 인사들의 위안부 생존 피해자 증언 폄훼 발언을 소개한 후 "심한 인권유린의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에게 논리 정연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그들의 주장에 반박하는 학자들과 인권운동가들의 인터뷰를 다시 소개한다. 고구마와 사이다가 반복한다. 영화의 지향점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일견 불편해 보일 법한 영화가 국내 여론의 관심을 모은 까닭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생각이 많아진다.
영화를 연출한 미키 데자키 감독은 기자회견에 앞서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점이 옳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받는 만족과 즐거움을 위해 오늘날 많은 뉴스와 다큐멘터리는 곧잘 한쪽의 입장을 취하곤 한다. 그렇기에 <주전장>은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에게 불편한 영화일지 모른다"고 밝혔다. 감독 말대로 영화는 내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눈으로 양 측의 입장을 바라보았다.
다만, 이 같은 감독의 입장을 존중하더라도 아쉬운 부분은 있다. 영화는 피해자들을 '성노예(sex slave)'가 아니라 '위안부(comfort woman)'로 표현한다. 아울러 이 단어를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위안부'라는 표현보다 강제성과 인권유린이 잘 드러나는 '성노예'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권고한 바 있다.
영화가 한 발 깊이 들어가는 대목은 위안부 문제를 계기로 일본 극우 세력의 핵심을 파고 드는 부분이다. 영화는 위안부 문제를 폄훼하는 일본 극우 정치인과 아베 총리를 잇는다. 나아가 영화는 일본 극우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새역사교과서를만드는모임(새역모)과 같은 우익세력은 일본 최대 극우 단체인 '일본회의'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 일본회의에는 국회의원간담회가 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의 거물들이 모두 이 일본회의 국회의원간담회 소속임을 영화는 밝힌다.
이 극우 정치인들은 일본 특유의 종교인 신토를 적절히 활용해 전범과 군국주의의 명맥을 현대에도 이어간다. 영화는 그 상징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조명한다. 일본 극우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는 오랜 기간 한국인을 불편하게 해 왔다. 이로써 <주전장>은 위안부 문제로부터 일본 극우의 반성하지 않는 역사 인식의 민낯을 드러낸다.
인터뷰에 응한 일부 극우 인사들의 발언은 강경하다. "국가는 사죄하지 않는다"는 후지오카 노부카츠 새역모 인사, "한국이 귀엽다. 중국 붕괴 후에는 가장 친일적인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우익 인사 카세 히데아키 등의 발언은 한국 관객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위안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세계의 시각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영화 내용만이 아니었다. 한 외국 기자는 "위안부 문제제기가 왜 90년대에나 들어 시작됐느냐"고 질문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가부장적인 정서, 정조를 잃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비난, 이후 90년대에 불어온 한국의 민주화 바람 등 우리에게는 당연한 역사적 맥락이 국제무대에서는 설명이 필요함을 새삼 확인 가능한 부분이었다.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은 2013년 일본에서 '일본의 인종차별'을 다룬 유튜브 영상을 게재했다 일본 누리꾼의 거센 공격을 받은 뒤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위안부 문제를 밝혔다가 일본 우익으로부터 거센 공격과 살해 협박까지 받은 우에무라 타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다. 지난 4월 일본에서 <주전장>이 개봉한 후 데자키 감독은 영화에 출연한 우익인사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고, 우익단체의 협박을 받기도 했다. 한 우익인사는 누리꾼들에게 "영화를 보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데자키 감독은 '수난사'를 이야기하면서도 "영화 홍보에 큰 도움이 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주전장>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일본 사회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일본은 아베 총리 집권 이후 2012년부터 중학교 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위안부는 생소한 주제다. 영화 속 일본의 어린 학생들과 청년들은 위안부의 존재를 "모른다"고 답했다. 감독은 "영화 개봉 후에도 트위터 등에는 '(알지 못한 이야기라) 충격적이다'라는 반응이 많이 올라왔다"고 덧붙였다.
미키 데자키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하는 것은 그들을 추모하는 것이며 그것은 언젠가 그분들의 정의가 구현되는 희망을 뜻한다. 또한 인종차별, 성차별, 파시즘과 맞서 싸우는 것을 뜻한다"고 강조했다. 위안부 문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인권의 주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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