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중반이었을 무렵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것을 꿈꾸었다. 서른 언저리에 한국 사람이 거의 없던 피지에 가서 얼마간 살아보았다. 정작 피지 본토에는 가볼 만한 해변이 없었다. 좋은 곳은 대부분 배로 한두 시간 들어갔다. 트래져 아일랜드(treasure island)라는 섬을 찾아갔다. 우리말로 보물섬인데, 비는 추적추적 오고 배에서 내린 관광객이라고는 제법 넓은 곳에서 필자 혼자뿐이었다. 바람 불고 파도치는 해변에서 혼자 앉아 있으니 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꿈꾸던 섬은 정작 심심한 장소였다. 본토로 돌아가는 배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로빈슨 크루소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당시의 나는 <로빈슨 크루소>(류경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를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소설을 읽으면 낭만은 깨진다. 소설 <로빈슨 크루소>는 낭만이라고는 전혀 없는, 어느 냉혹한 부르주아의 식민지 건설 이야기다.
대니얼 디포(1660~1731)가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쓴 것은 그의 나이 59세인 1719년이다. 늦은 나이에 완성한 소설이지만 이후 근대 소설의 효시(曉示)라는 영예를 안게 된다. '크루소'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탄생시킨 이 소설에 대해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한 개인의 생각에서 나온 작품이라기보다는 자기 종족(근대 부르주아를 의미. 필자) 그 자체를 익명으로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크루소는 당대 부르주아의 전형이었다.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로빈슨 크루소는 1632년 영국 요크 시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다. 형이 두 명 있었는데, 큰형은 스페인 전쟁에서 전사하고 작은형은 집을 나가 행방이 묘연하다. 독일 출신 사업가인 아버지는 막내아들 크루소가 법조인으로 안정된 중산층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그러나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바다로 나가기를 희망하던 크루소는 집을 나와 당시 국제무역의 핵심 노선이었던 기니행 항해에 나선다.
크루소는 첫 항해에서 지인들에게 받은 40파운드를 300파운드로 불린다. 이후 또 다시 무역선에 몸을 싣지만, 아프리카 카나리아제도 주위를 지날 때 터키 해적선의 공격을 받아 무어인의 노예가 된다. 기회를 노리던 크루소는 무어인 소년 슈리와 탈출에 성공한다. 크루소는 포르투갈 노예무역선에게 구조되어 브라질로 간다. 같이 탈출한 소년 슈리는 선장에게 10년 후에 풀어줄 것을 다짐 받고, 노예로 넘긴다. 브라질에 간 크루소는 담배와 사탕수수 농장을 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크루소는 우연한 기회에 친하게 지내던 다른 농장주들에게 아프리카무역에 대해 이런 저런 정보를 준다. 농장주들이 특히 귀를 기울인 것은 흑인노예였다. 책 속 노예무역에 대한 설명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노예 교역은 도입된 지 얼마 안 되었고 도입되었다 하더라도 노예 공급 계약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왕의 허가를 얻어야만 하는 독점 사업이었다. 따라서 극소수 흑인 노예들만 들여올 수 있었고 그 값도 엄청나게 비쌌다." 농장주들은 로빈슨에게 은밀히 노예무역을 제안한다. 크루소는 투자를 안 해도 동일한 노예를 나누어주겠다는 농장주들의 제안을 받고, 노예무역을 위해 다시 기니로 향한다. 그는 아프리카를 향하던 중 브라질 북부 현재의 베네수엘라 동쪽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조난을 당하고, 어느 무인도에 도착한다. 전북대 경제학과 원용찬 교수는 글 '대니얼 디포와 로빈슨 크루소-자본주의 여명기에 나타난 원시적 자본축적의 모습들'(2014년 4월 <인문과사상> 통권 192호)에서 당시 노예무역이 왕성해진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경제사적으로 16세기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들여온 상품은 금과 은 등의 귀금속이었지만 이후 설탕과 담배 등 열대산 제품의 비중이 늘어난다. 광산에서 금과 은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현지 원주민의 노동으로도 충분했지만 사탕수수와 담배 작물을 키우는 플랜테이션 농장은 열대성 기후와 풍토병에도 강한 흑인노예의 노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홀로 살아가는 무인도에서의 삶이지만, 크루소는 치밀한 계획 하에 자신의 생활을 통제한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면서 거처를 요새로 만든다. 그는 식인종에게 잡아먹힐 뻔한 원주민을 구해주고, '프라이데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준 뒤 함께 산다. 그러던 중 선상 반란이 일어난 배의 선장을 구해주게 되고. 결국 그 배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온다.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책의 내용에 대해서 '매우 교묘한 왜곡'이라며 분노한다.
<로빈슨 크루소>에 대한 평가는 매우 다양하게 개진되어 왔다. 미국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이언 와트(Ian Watt)는 '근대 소설의 효시'라고 평가했고, 아일랜드 출신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는 이렇게 평가했다. "로빈슨 크루소는 영국 제국주의의 진정한 원형이다. (중략) 그에게는 남성다운 독립심, 무의식적 잔인성, 불요불굴의 집요함, 느리지만 효율적인 지성, 성적 무감각증, 계산적인 과묵함 등 전적으로 앵글로-색슨족 특유의 기상이 넘쳐난다." <로빈슨 크루소>가 제국주의 소설이라는 것이다.
인문학자 박홍규의 평가는 더욱 가혹하다. 그는 글 '우리 안의 괴물들, 로빈슨 크루소와 오리엔탈리즘'(2003년 8월호 <초등우리교육> 통권 제162권)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학세계사라는 출판사가 이름에 걸맞게 세계에서 몇 번째로 <로빈슨 크루소>의 완역판을 내야 할 정도로 우리는 제국주의에 젖어 있다. <문학과 사회>라는 유수의 문학잡지를 내는 김병익이라는 문학평론가가 직접 번역하고 쓴 그 책의 해설에도 제국주의나 식민지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제국주의에 절여져 있다."
이들은 책의 어떤 부분 때문에 분노하는 것일까? <로빈슨 크루소>에 나타나는 제국주의적 편린들을 살펴보자. 책에서 제국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특히 미개인들과의 관계다. 로빈슨은 두 번째 항해에서 터키 해적선의 급습으로 무어인의 노예가 된다. 크루소는 무어인 소년 슈리와 함께 탈출한다. 그런데 크루소의 기억에서는 함께 탈출한 것이었지만, 객관적으로 상황을 재구성해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슈리와 처음 관계를 맺은 날은 슈리 옆에 있던 무어인 성인노예를 물에 빠트린 직후였다. 크루소는 이 장면을 본 슈리에게 묻는다. "슈리, 충직하게 복종만 한다면 너를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겠다. 하지만 내게 충직하겠다는 의미로 네 얼굴을 쓰다듬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마호메트와 그의 아버지의 수염을 걸고 맹세하지 않는다면, 너 역시 바다에 던져 버릴 수밖에 없다." 슈리는 동의한다. 크루소에게는 동의이고, 슈리에게는 강박임이 분명한 상황이다. 그런 약속조차 크루소는 가차 없이 던져버린다. 구출되자마자 슈리를 노예로 팔아넘긴 것이다. 창원대학교 영문학과 배경진 교수는 논문 '노예와 식인종: 로빈슨 크루소에 나타난 감정과 식민주의적 욕망'(2014)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크루소가 노에제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비유럽인의 복종을 예속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가 노예제를 일종의 동의에 기초한 계약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슈리가 충직을 맹세하는 장면을 보면, 사실 슈리는 크루소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슈리는 크루소가 들고 있는 총으로 상징되는 폭력에 복종한 것이지 순수한 자발적 의지에 근거해서 그의 탈출 계획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미개인 프라이데이와의 관계를 보자. 크루소는 어느 날 식인종 일행으로부터 원주민을 구출한 후 그에게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짓는다. 크루소는 프라이데이의 원래 이름을 아예 물어보지도 않는다. 크루소가 프라이데이에게 부르게 한 자신의 호칭은 '주인님'이었다. 그는 왜 프라이데이를 구조한 것일까? 여러 평론가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다. 식인종 일행을 보기 얼마 전 크루소는 꿈을 꾼다. 식인종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에 미개인 한 사람이 크루소가 있는 방향으로 탈출하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크루소는 미개인을 조타수 삼아서 본토 대륙(남미)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한다. 무인도는 완벽한 무인도가 아니라 본토 대륙과 다소 떨어진 오리노코 강 앞의 무인도였을 뿐이다. 다만 식인종들 때문에 본토 대륙을 안내할 원주민이 필요했던 것이다. 꿈에서 깬 크루소는 이렇게 다짐한다. "여하튼 나는 이 꿈을 꾸고 나서, 섬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가능하면 야만인 한 명을 손에 넣는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프라이데이를 살려 곁에 둔 것은 계산에 따른 행위였던 것이다.
크루소는 프라이데이를 기독교로 개종시키지만, 둘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크루소는 자신이 프라이데이를 구했을 때 프라이데이의 행동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한다. "마침내 그가 내게 바싹 다가왔고 다시 한 번 무릎을 꿇었다. 그는 땅바닥에 입을 맞춘 후 그곳에 자기 머리를 댔고, 내 발을 잡더니 그걸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아마 영원히 내 노예가 되겠다는 맹세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최초의 근대 소설에서 서구와 비서구의 관계가 '자발적 굴종'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있다.
서평의 대상인 <로빈슨 크루소> 1부만도 400쪽을 넘는다. 소설에는 노예에 대한 묘사가 수시로 등장하지만, 노예에 대한 연민은 보이지 않는다. 대니얼 디포는 계몽사상의 세례를 받은 지식인이었지만, 노예의 자유와 인권은 그에게 가시화되지 않는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가 "이성이야말로 수학의 본체요 원천이니 이성의 도움으로 모든 것을 수식으로 표현하고 면적을 구하고 또 합리적으로 판단만 한다면, 누구라도 조만간 온갖 제작 기술의 대가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계몽사상의 충직한 추종자임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야말로 근대 계몽사상의 특징이다. 이들의 이성은 비서구 출신 노예를 향해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물론 당대의 도덕을 그 시점의 도덕적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회학의 거장 에밀 뒤르켐은 <사회분업론>(민문홍 옮김, 아카넷 펴냄)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현대인이 자연스럽게 여기는 세계 공동체주의가 처음 등장한 것은 철학적 발견 때문도 아니고 우리의 정신이 옛날 사람들이 모르는 진리에 열려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구조 속의 변화가 도덕 관습의 변화를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대의 사회구조가 당대의 도덕관을 형성한다는 주장이다. '노예제 옹호'라는 악덕은 이런 학설 뒤에 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방송대 강경선 교수의 논문 '노예제폐지에 관한 연구-영국의 경우'(2013)에 따르면 영국 퀘이커교도들은 1688년부터 노예제는 성경의 황금률에 반한다는 주장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로빈슨 크루소>가 씌어진 18세기 초에는 인권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노예제에 대해서 심리적 저항을 느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책 속에는 노예제에 대한 불편한 마음은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책만으로 판단한다면, 대니얼 디포는 노예제 옹호론자다.
다른 관점으로 책을 해독하는 사람도 분명히 많다. 여러 평론가들은 <로빈슨 크루소>에서 제국주의보다는 '근대적 개인주의'를 읽으려고 한다. 앞서 언급된 문학평론가 이언 와트가 대표적이다. 그는 <로빈슨 크루소>에서 아버지로부터 분리되는 개인적 삶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크루소의 경제적 개인주의를, 고독을 향유하면서 근면성을 잃지 않고 성경을 봉독하는 크루소로부터 종교적 개인주의를 끌어낸다. 서울대 외교학과 최정운 교수도 논문 '새로운 부르주아의 탄생: 로빈슨 크루소의 고독의 근대사상적 의미'(1999)에서 비슷한 방향으로 소설을 독해한다.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김용민 교수도 논문 '로빈슨 크루소, 에밀, 루소에 나타난 근대적 개체성'(1999)에서 유사한 논지를 개진한다. 그런데 크루소를 개체성을 확보한 근대적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 과연 합당할까? 근대가 개인의 존재론적 가치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크루소는 진정한 의미의 근대적 인간형일 것이다. 신뢰하기 어려운 해석이다.
중앙대 고부응 교수는 논문 '영문학 속의 식민이데올로기-로빈슨 크루소에 나타난 식민주의'(1995)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로빈슨은 자신의 이름을 '주인'(로빈슨이라 하지 않고)이라고 하며 그렇게 명명된 프라이데이에게 처음으로 가르치는 말은 '예'와 '아니오'이다. 서구인이 만나는 원주민 프라이데이는 처음부터 서구인을 위한 존재로 설정되는 것이며, 이 경우 서구 부르주아계급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독립된 자유인으로서의 개인성은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가 말하는 개인의 독립과 개성을 위한 '개인주의'는 대부분의 경우 서구인만을 위한 것이다.
개인의 인권에 대한 강조와 함께 개인주의가 본격화되었다. 근대 계몽주의는 개인의 천부 인권을 절대시 하면서 구체제의 절대주의에 대항했다. 그러나 그들의 계몽사상의 목표가 실제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이었는지는 의심스럽다. 특히 판단의 대상이 비(非)서구로 넘어갈 때 계몽사상은 누구 못지않게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집단의 방패막이였다. 디포 시대 가장 명망 높았던 사상가 로크의 핵심 주장 중 하나가 노동력 투입을 통한 소유권의 정당화였다. 즉, 식민지에 농경을 통해 노동을 투입하는 인간만이 소유권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식민지 개척과 원주민 땅의 약탈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이 로크의 소유권 사상이었다. 계몽사상에 철저한 부르주아들은 비서구가 서구의 문명화사업을 받아들이면 비서구인들도 서구인과 같은 문명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로크의 소유권 사상에 따르면, 원주민의 토지에 대한 권리는 자동적으로 소멸된다.
이런 논리를 가장 능숙하게 주장한 세력이 영국이었다. 영국은 동일한 제국주의라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책 <로빈슨 크루소> 곳곳에 넘쳐난다. 로크 사상을 따르는 휘그당에 가까웠던 대니얼 디포의 책답게 크루소는 자신의 노동력이 투여된 무인도에서 스스로를 왕으로 인식한다. "이 모든 것이 다 내 것이며 나야말로 이 모든 지역에 대해 절대로 무효화할 수 없는 권한을 지닌 왕이자 군주이자 소유자라는 생각에서 나온 은밀한 기쁨(물론 다른 불안감과 뒤섞인 기쁨이긴 했다)을 느끼며 그 쾌적한 계곡 옆을 탐색하면서 조금 더 내려가 보았다."
영국은 스스로를 스페인과 같은 폭력적 식민주의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로빈슨 크루소>에서도 이 같은 관점이 드러난다. "그곳에서 그들은(스페인. 필자) 무수한 원주민들을 학살했다. 비록 그 원주민들이 우상 숭배자들이고, 야만인들이고, 잔혹하고 미개한 몇몇 의식들(이를테면 자신들의 우상에게 인간 제물을 바치는 의식 같은 것이다)을 거행하고 있긴 했지만, 사실 스페인인들과 관련시켜 놓고 볼 때에는 그들은 정말로 아무런 죄가 없는 순진한 사람들이다." 이런 문장도 보인다. "그런 형태는 스페인 왕국이란 나라가 사랑이라는 원칙도 없고 비참한 불행에 빠진 자들에 대한 연민과 평범한 동정심도 없는 족속들이 만들어낸 나라인 양 여겨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스페인 제국주의와 자신들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선포한다. 스페인에는 없고 영국에만 있는 것이 있다. "사랑과 연민과 동정심이야말로 우리들 마음속 관대한 심성의 표지물들 아닌가." 책 속 크루소의 말이다. 당시 영국인의 일반적 정서일 것이다.
제국주의자, 식민주의자, 노예제 옹호론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000년도 전에 맹자는 우물에 빠지는 아이를 구하려는 측은지심을 인간의 근원적인 도덕성향으로 파악한 바 있다. 제국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이런 자연적 도덕성을 체계적으로 지워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년 슈리를 노예를 팔 때 크루소는 잠깐 고민에 빠진다. 크루소의 자연적 도덕성이 반응하려는 찰나 크루소는 자신만의 근거로 잔인한 결정을 정당화한다. 도덕 감정을 억제하고 사적 이익을 취하는 방향으로 '의식적으로' 결심한다. 원주민들을 학살하려할 때도 잠시 학살의 정당성을 고민하지만 이내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인간의 도덕적 경향은 본원적이다. 도덕감을 벗어버리고 타인에게 냉담해지는 일, 이것은 손쉽게 달성되기 어렵다. 어떻게 가능하게 될까? 울산대 국문학과 소래섭 교수의 논문 '근대문학 형성과정에 나타난 열정이라는 감정의 역할'(2012)을 살펴보자. 소래섭 교수는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연구(심성사에 관한 연구. 필자)들은 감정에도 역사성이 있으며 감정이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거나 학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그래서 최근의 감정 연구는 개별 텍스트에 표현된 특정한 감정보다는 당대의 맥락에서 감정에 관한 논의들의 의미를 분석하는데 치중한다." 인간의 감정은 시대적 문화적으로 동일하지 않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감정은 변화한다. <감정의 거시사회학>(박형신 옮김, 일신사 펴냄)의 저자 사회학자 J.M. 바바렛은 감정으로 인식되지 않는 은폐된 감정을 "배후의 감정"이라고 한다. 자본주의의 밑바탕인 도구적 합리성은 비인격적 상품, 개인의 이익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추구하는 배후의 감정이 없다면 작동하지 않는다. 소래섭의 상기 논문을 인용해본다.
"시장경제는 당면 목적에 대한 헌신, 고용되어 있는 조직에 대한 충성, 더 많은 성공을 자극하는 성공의 기쁨과 실패에 대한 불만, 협력이 필요한 사람들과의 신뢰, 업무에 박차를 가하는 경쟁자들에 대한 시기심, 출세하고자 하는 욕구 등과 함께 움직인다. 또 시장경제 속의 노동자가 그에게 주어진 일을 한치도 빈틈없이 수행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가 오로지 자신의 사명에만 전념하게 만드는 감정들이 필요하다. 전문성과 기술에 대한 자부심, 일에 대한 만족감, 물질과 시간의 낭비에 대한 혐오 등과 같은 감정이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면 사랑, 증오, 공포, 분노와 같은 감정들은 시장경제의 합리성을 파괴하는 위험한 것들로 지목되어 배척당한다."
자연인 크루소가 무의식적으로, 기계적으로 배제하는 감정은 무엇일까? 사적 이익의 실현을 방해하는 '공감'일 것이다. 크루소는 슈리에게도 프라이데이에게도 진정으로 공감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사람들이 도구적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크루소의 자연적 도덕감은 이익이 결정되는 국면에서 좌절된다. 크루소 자신은 스스로를 이성적, 합리적이라 생각하지만 실제 크루소를 타산적 결정으로 추동한 것은 사적 이익을 향한 악착같은 열정 즉, 배후 감정이었다. 배후 감정의 이상성(異常性)을 본인은 인지하지 못한다. 그런 사익에 대한 집착을 문명인으로서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사적 이익에 대한 배후 감정으로서의 열정은 자동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특이한 마음의 성향은 자본주의라는 사회구조에서만 발생한다.
로빈슨 크루소는 자연인이 아니다. 그는 상업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새로운 인간 즉 자본주의형 인간이었다. 속된 표현으로 돌려 말하자면 돈에 환장해서 자신의 원초적 도덕감마저 억누르는 사람이었다. 사익에 대한 열정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의해 주조된 것이다. 바로 이 모습 때문에 <로빈슨 크루소>에서 근대적 개체성을 찾는 논설들은 설득력을 얻기가 어렵다. 근대적 개체성의 확보로 인정받을만한 개인주의적 모습은 보인다. 하지만 개인적 활동들은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따름이다. 게다가 사익을 극단적으로 추구하게끔 만든 배후 감정에 대한 아무런 자각도 없다. 과도한 욕망에 이끌리고 이 욕망이 초래하는 고난에 대해서 종교적 묵상을 한다. 고난은 묵상의 대상이 되지만 고난을 초래한 자신의 욕망은 묵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는 기계적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욕망을 주체 못하는 인간들이 넘쳐나는 사회가 온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런 인간형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안식(安息)의 말씀이 필요했다. 넘치는 욕망으로 분열되는 사회를 접합시킬 무엇이 필요했다. 19세기 영국의 문학비평가 매튜 아놀드(Mattew Arnold)는 이런 문제의식 하에서 "시가 종교가 되어야한다"고 말했다. 영문학의 개척자 조지 고든(George Gordon)도 "영국은 병들어 있다. 이제 영문학이 영국을 구원해야한다. 영문학은 우리의 영혼을 구하고 국가를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부응 교수는 상기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테리 이글튼은 이러한 사실을 밝혀내면서 영문학이 결국 노동자계급을 억누르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하층민에게 주입시키기 위하여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테리 이글튼(Terry Eaglton)이 말하는 하층민에 식민주의에 고통받았던 비서구인도 포함될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매우 재미있다. 그러나 이런 재미 속에 제국주의와 제국주의를 추동한 근대 부르주아를 제대로 읽어내는 일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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