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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최수봉 의사 제98주기 추모제 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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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최수봉 의사 제98주기 추모제 엄수

의열단 가입 1920년 밀양경찰서에 폭탄 투척한 독립운동가

경남 밀양시 상남면 마산리 마을 입구에는 2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최수봉 의사의 순국기념비가 있다.

8일 오전, 이 순국기념비 앞에 최수봉 의사의 순국 98주기를 맞아 유족 최호성 외 2명 등 박일호 시장, 성균관유도회 밀양시지부 회원, 학생 150여 명이 참석해 추모제가 엄수됐다.


이날 최수봉 의사 순국 제98주기 추모제는 기관단체장의 추모사와 함께 참석자 모두가 살신성인한 애국심을 밀양인의 저항정신으로 승화시켜 민족과 겨레를 위해 초개(草芥)와 같이 목숨을 던질 수 있었던 위대한 애국자의 장거(壯擧)가 만대에 빛나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최수봉 의사 순국 추모비에 국화를 바쳤다.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으로 널리 알려진 최수봉 의사는 1894년 3월 3일 당시 밀양군 상남면 마산리에서 출생하여 밀양공립보통학교 3학년 재학 시 일본 황실 모독죄를 범한 불온 학생으로 퇴학당하고,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중학 과정인 사립동화학교에 입학해 을강 전홍표 선생으로부터 민족정신과 독립정신을 이어받고, 학교가 일제의 강압으로 문을 닫게 되자 명정 학교로 학적을 옮겨 졸업했다.

이후 그는 의열단에 가입하여 1920년 12월 27일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

이날 오전 9시 30분경 밀양경찰서장 와타나베 스에지로는직원 19명을 서내 사무실에 모아놓고 훈시를 하고 있는데 남쪽 유리창이 깨지면서 폭탄 하나가 날아와 조선인 순사부장 쿠스노키 게이고의 오른쪽 팔에 맞아 굴러떨어졌다.

▲8일 오전 제98주기 최수봉 의사 추모제에 참석 유가족 들이 헌화 하고 있다. ⓒ프레시안 (이철우)
투척한 폭탄이 경찰서 현관에서 터지면서 경찰서는 아수라장이 됐다.

폭탄을 투척하고 달아나던 청년은 추격하는 왜 경과의 거리가 좁혀지자 인근의 민가로 들어가 품속에서 꺼내던 단도로 복부를 그었다.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청년은 현장에서 체포됐고 부산 도립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은 뒤 일제에 의해 기소됐다.

체포된 청년은 이듬해 7월 8일까지 살이 타고 뼈가 깎기는 옥고를 치르면서도, 혀를 깨물며 동지들의 정보를 누설하지 않고 사형선고를 받고 대구감옥 교수대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꽃다운 28세에 세상을 떠난 청년이 최수봉 의사다.

정부는 최수봉 의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고 1969년 서울 국립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2016년 1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최수봉 의사를 선정해 다양한 행사를 펼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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