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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젖은 서울의 옛 철길 흔적을 찾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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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젖은 서울의 옛 철길 흔적을 찾아 걷다

프레시안 조합원 모임, '서울의 옛 철길, 경성 순환선을 따라 걷다'

"오늘은 서울을 가볍게 산책해보자는 마음으로 준비했는데요. 아주 가까운 동네에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 그러나 잊혀진 과거를 알고 나면 '사실은 이게 아주 색다른 공간이었구나' 느껴지게 되는 곳들을 찾아가겠습니다." (박흥수 기관사)

프레시안 조합원들이 한적한 토요일 오후 동네 산책에 나섰다. 경의선에서 뻗어 나간 서울의 지선 경선 순환선의 역사를 알아보고 그 흔적이 남은 길을 걷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의 옛 철길, 경성 순환선을 걷는 행사가 협동조합 프레시안 주최로 지난달 29일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철도의 눈물>(후마니타스 펴냄), <시베리아 철도여행>(후마니타스 펴냄)의 저자 박흥수 기관사가 산책 가이드 겸 강연자로 나섰다.

경성 순환선이란 경의선 신촌역과 용산선 서강역 사이에 신촌 연결선을 설치해 순환선 형식으로 운행하던 노선을 일컫는다. 1929년 9월 20일에 개업한 이 노선은 1944년 3월 31일에 폐업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짧은 역간 거리로 도시철도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던 노선이었다. 원정, 미생정 등의 일본인 거주구역에 역을 많이 설치한 것으로 보아 일본인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목적도 있었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특이한 점은 단선임에도 양방향 순환 운행을 했고, 그에 따라 거의 모든 역에서 '교행'(단선 구간에서 마주 보고 운행하는 두 열차를 역이나 신호장에서 서로 비켜 가게 하는 것을 뜻한다)이 필수였다. 그러나 1944년, 일제가 전쟁물자 공출을 위해 서소문역, 아현리역, 원정역, 미생정역, 공덕리역을 철거하면서 교행이 불가능해지고 설상가상으로 모든 열차를 일제가 가져가면서 노선이 폐지됐다.

▲ 6월 29일 프레시안과 경의선 범대위가 함께 답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프레시안(최용락)


눈물 젖은 조선 철도의 시작, 그리고 경성 순환선의 개통

모름지기 잊혀진 것을 보는 눈을 가지려면 알아야 하는 법. 본격적인 산책에 앞서 박흥수 기관사가 조합원을 상대로 마이크를 잡았다. '경의선의 역사'에 대한 박 기관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런데, '경성 순환선을 걷는데 웬 경의선의 역사?' 의문은 강연을 들으면서 풀렸다.


경의선에는 일제강점기 철도 건설 과정에서 조선인이 겪은 아픔이 그대로 서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아픔은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모든 철도에 서려있는 아픔이었다.


경의선은 일본이 러일전쟁 때 군대를 이동시키기 위해 건설한 철도 노선이다. 경의선 공사는 1904년에 시작해 2년 만에 끝났다. 박흥수 기관사는 "아마 세상에 있는 철도 노선 중에 이 정도로 빨리 완공된 선로는 없을 것"이라며 당시 철도 공사는 "인력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철도 건설 현장에 끌려가면 죽어나간다'는 말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철도 건설 현장을 감독하고 업무를 지시한 것은 일본군이었지만 일본인만 조선인을 못 살게 군것은 아니었다. 조선 관료 중에는 일본인보다 악질적으로 구는 사람도 있었다. 박흥수 기관사는 송병준을 예로 들었다.

"일진회 대표였던 송병준이 '일진회는 성전을 수행하는 일본에 신뢰 의지를 표시하며 그에 따라 황해도민을 경의선 철도 공사에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라고 편지를 써요. 이때 일본군은 '고맙다. 그런데 공짜로 쓸 수 있냐. 최소한의 임금은 지급하겠다'고 답해요. 그랬더니 일진회는 '임금을 어떻게 다 받냐. 밥값만 빼고 다 방위성금으로 내겠다'고 하죠."

수탈을 못 견딘 사람들은 싸움을 택하기도 했다. 교하에서는 일본군이 모내기철에 철도 공사 인부를 동원하려 하자,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평양에서는 조선 관료가 보상금을 빼돌린 데 항의하는 사람들이 관찰사를 둘러싸고 집회를 열었다. 일본군은 조선인의 이 같은 움직임을 총칼로 진압했다.

경의선의 역사에 대한 강연을 마무리하며 박흥수 기관사는 경성 순환선이 개통된 1929년의 연표를 보여줬다. 원산 총파업, 신간회 전국대회 금지, 그리고 광주 학생 학쟁까지. 그 해도 여느 때의 일제강점기와 같이 "일제의 탄압과 그에 대한 저항이 비빔밥처럼 얽히던 시기"였다.

▲ 박흥수 기관사가 경인선의 역사와 경성 순환선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최용락)

표지석 하나 남아있지 않은 옛 역사와 철길의 흔적들

개통 이래 도시 철도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던 경선 순환선은 1944년에 폐선됐다. 전쟁에 대비하여 철 등의 물자를 조달하려는 일본의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그 뒤로 7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우리의 산책길에 철도 건설 과정에서 조선인이 겪은 아픔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역사나 철길이 있었다는 흔적도 희미했다.

"우리는 지금 100년 전 철길을 걷고 있는 거니까요. 나카무라나 이런 일본 경찰들 다 못 오게 막아놨습니다."

박흥수 기관사의 너스레를 들으며 우리는 경성 순환선이 지나던 길을 따라 걷기 위해 출발했다. 먼저 도착한 곳은 경성 순환선의 연희역이 있던 자리였다. 역사가 세워져 있던 자리 앞에는 철망이 처져 있었다. 철망 너머 계단 위로 잡초가 무성했다. 따로 설명을 듣지 않으면 역사가 있던 자리라고 상상하기 어려웠다.

연희역 자리를 본 뒤 맞은 편으로 난 골목길을 걸으며 박흥수 기관사는 철길의 흔적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네이버 지도나 구글 지도로 이곳을 보면 주변 골목은 다 반듯한데 여기만 구불구불해요. 철길이 있던 흔적이죠."

골목을 빠져나온 우리는 방송소(放送所)앞 역으로 향했다. 방송소앞 역은 옛 당인리선이 지나던 자리이지만 철길의 흔적이 재미있는 형태로 남아있는 자리이기에 택한 곳이었다.

홍대 한복판에 위치한 방송소앞 역 자리에도 표지석은 없었다. 그러나 높게 지어진 건물들 사이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3층 건물들이 꼭 기차 모양으로 서 있었다. 역시 옛 철길의 흔적이었다. 기차 모양 건물을 보며 재미있어하는 우리에게 박흥수 기관사는 말했다.

"이 건물들이 수십 년간 철거 위기를 겪었는데 버티고 버텨서 지금은 홍대의 가장 핫한 거리가 됐어요."

이어 우리는 종착지인 옛 당인리선과 경성순환선이 만나는 지점으로 향했다. 경의선 숲길이 바로 그곳이었다. 보존된 철길 위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경의선 숲길은 시민의 쉼터가 되고 있었다. 공원 한가운데에 아직 남아있는 옛 선로 전환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으며 우리의 산책은 끝났다.

▲ 프레시안 조합원과 답사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옛날 철길이 있었던 골목을 걷고 있다. ⓒ프레시안(최용락)

사라지고, 마침내는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맡겨두었던 짐을 챙기기 위해 다시 경의선 공유지의 작은 가건물로 돌아온 우리에게 박흥수 기관사는 말했다.

"이곳 경의선 공유지도 또 하나의 잊혀질 수도 있는 공간입니다."

알고 보니 산책의 거점이 되어 준 염리동 경의선 공유지도 사라지고 잊혀질 위기에 처한 공간이었다.

경의선 공유지는 지상으로 다니던 기차가 지하로 지나게 되며 생긴 땅이다.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국공유지는 시민 모두의 것이기 때문에 인문학 연구단지와 같은 공적 용도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마포구청은 이곳의 사용권을 민간 사업자에게 넘겨 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시민 대토론회 등을 기획하며 염리동 경의선 공유지를 지키는 중이다.

박흥수 기관사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오늘 찾아간 공간들을 봤더니 표지석 하나 없잖아요. 기억하고 지키는 게 매우 중요한 일인데도요. 경의선 공유지도 제가 운전하면서 계속 다녔던 길입니다. 그런데 이 길이 대재벌의 마케팅 공간으로 변하고 숲이 없어지고 있어요. 이런 건 슬픈 일이 될 것 같아요. 나중에는 ‘철길이 다녔고 숲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간이 돼버릴까봐 무서워요."

우리는 철도의 건설 과정에 얽힌 슬픈 이야기를 잊고 산다. 옛 역사와 철길이 있던 자리 또한 잊혀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적인 공간이 사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해 잊혀질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70년이 지나면 이곳 또한 흔적도 없게 될까.

▲ 염리동 경의선 공유지 안 작은 건물 앞에 달린 답사 프로젝트 현수막. ⓒ프레시안(정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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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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