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고 북측이 23일 발표함에 따라 정상 간 톱다운 소통이 북미대화 재개의 돌파구가 될지 주목된다.
특히 김 위원장이 "흥미로운 내용"이라고 언급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에 김 위원장을 다시 협상 테이블로 견인할 새로운 제안 등이 담겼는지 어떤 때보다 관심이 쏠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20∼21일 방북과 금주 일본 오사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계기에 열릴 미중 정상회담, 이달말 한미 정상회담 등 릴레이 정상 외교전을 통해 '하노이 노딜' 이후 이어진 북미 간 교착을 타개하려는 모색이 이뤄지는 와중에서다.
미국 측은 일단 친서 전달에 관해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는 것에 대해 백악관은 이날 확인을 거절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그러나 고비마다 '친서외교'를 통해 교착을 뚫었던 북미 두 정상이 이번에도 친서 를 통해 톱다운 돌파구를 마련해 가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1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11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으로부터 "어제 아름답고 매우 따뜻하며 매우 멋진 친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런 만큼,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는 그에 대한 '답신'으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 지난 17일 인터뷰를 하면서 김 위원장의 친서를 꺼내 "생일축하 편지"라며 "어제 전달받았다"고 소개한 바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날짜를 헷갈린 것인지 아니면 며칠 사이 추가로 또 받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북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가 전달된 날짜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시기적으로 시 주석의 방북과 맞물려 있다는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며칠 후 있을 미·중 정상회담에서 어떤 식으로든 시 주석의 입을 통해 김 위원장의 메시지가 전달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북미 정상 간 서신 교환이 "중국의 시 주석이 김정은에게 중국의 역할론을 강조하며 '전 세계가 미국과의 핵 협상에 있어 진전을 이루길 바란다'고 말한 가운데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6월이 북핵 협상 재개의 전기를 마련할 중대 분수령으로 떠오른 가운데 북미 정상 간 '직·간접적 대화'가 분주하게 오가는 흐름이다.
시선은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에 담았을 내용으로 모이고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 대해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고 언급했고 북측도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에 대해 "흥미로운 내용"이라고 소개한 점에 비춰보면 김 위원장이 보낸 '흥미로운 대목'에 트럼프 대통령이 '흥미로운 내용'으로 화답한 셈이 된다.
더욱이 김 위원장이 그 내용을 "심중하게" 생각해보겠다고 한 만큼, 북한 입장에서 검토해볼 만한 모종의 '새로운 제안'이 담겼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와 맞물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가 지난 19일 워싱턴DC에서 열린 싱크탱크 행사에서 '유연한 접근'을 언급하며 북측에 유화적 제스처를 보낸 것이 주목된다.
비건 특별대표는 당시 "북미 양측 모두 협상에 있어 유연한 접근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다. 협상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며 조속한 대화 재개에 대한 희망을 표명하며 북측에 '올리브 가지'를 공개적으로 내밀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대화 재개의 전제조건은 없다"며 문턱을 낮췄다.
지난 2월말 '하노이 핵담판' 결렬 이후 북한은 연말을 시한으로 제시하며 미국에 '새 계산법'을 요구했고, 이에 대해 미국은 '서두르지 않겠다'며 속도조절론으로 응수하며 '빅딜론'을 견지, 양측이 평행선을 달려왔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하노이 노딜' 충격파를 달래면서 기존의 빅딜론에서 한발 물러는 구체적인 '새 제안'을 했다면 새로운 모멘텀이 마련될 수 있다. 그러나 친서라는 의사소통의 형식이나 그동안의 전철에 비춰볼 때 세부적 내용이 담겨있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미국 측은 '비핵화 조치 없이는 충분한 진전이 이뤄질 수 없다'는 입장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
비건 특별대표가 유화 메시지를 발신한 지난 19일에도 러시아 회사에 대한 대북제재를 단행한데 이어 대북제재에 대한 행정명령 연장, 북한에 대한 인신매매 최하위등급 국가 유지 및 종교의 자유 특별우려국으로 명시된 보고서 발간 등을 통해 강온 병행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비핵화 협상이 북미 간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돼온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했을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일각에서 나온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빨리 만나게 되길 바란다'는 수준의 원론적 언급을 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3차 톱다운 담판으로 직행하자고 제안하기 보다는 실무협상 문제를 함께 거론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톱다운 담판'에만 전적으로 의존한 방식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측은 최근 들어 '선(先) 실무협상 재개' 입장을 피력하며 북측에 "우리는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해 왔다.
더욱이 지난 18일 플로리다에서 출정식을 갖고 재선 행보에 본격 시동을 건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구체적 성과가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에도 '하노이 노딜'의 전철을 반복, '빈손 회담'의 결과를 받아들 경우 재선 가도에서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이란과의 전선이 첨예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실무협상을 통한 철저한 사전 준비 없이 모험을 걸기란 부담스러운 처지이다.
그 연장 선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층 유연한 태도를 보이면서 일단 실무협상을 통해 대화를 재개한 뒤 이른 시간 내에 정상 간에 만나자는 취지의 제안을 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건 특별대표와 함께 19일 기조연설을 했던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북미간 실무협상이 빨리 재개돼야 한다는 것이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라고 언급한 바 있다.
북측이 아직 미국의 대화 재개 제안에 응답하지 않는 상황에서 비건 특별대표가 트럼프 대통령의 이달말 방한에 앞서 금주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이 기간 북미간 전격 접촉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이다.
이제 다시 '공'이 북측으로 넘어간 가운데 김 위원장의 호응 여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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