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제주4·3의 역사적 진실이 재조명됐다.
‘제주4·3의 진실, 책임 그리고 화해’라는 제목의 인권 심포지엄이 20일(현지시간) 오후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최됐다.
이날 심포지움에선 제주4‧3 유족의 발표를 통해 미국의 책임문제와 함께 4·3의 정신과 진상규명운동 과정을 과거사 문제 해결의 새로운 세계적 모델로 모색하고 4·3평화 화해운동을 노벨평화상 추천운동으로 승화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기조발표에 나선 강우일 주교(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는 “제주4·3은 미국과 한국 정부 당국이 저지른 인권과 인간 생명에 대한 대대적인 위반이자 범죄였다”면서 “처형과 학살을 한국경찰과 군인이 저질렀지만, 정책을 수립하고 명령을 이행한 이들은 미군 지도부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당국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표명해 주기를 바라며 유엔의 다른 회원국들도 보편적 인권을 위한 연대의 표시로 이 잊혀진 역사에 대해 관심과 공감을 표명해주면 감사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현대사 연구의 저명한 학자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학교 석좌교수는 ‘제주4·3과 미국의 책임’이라는 발표에서 “미국인 대다수가 2차대전 종전 후의 한국상황과 무관한 방관자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일제에 부역했던 한국인들을 지원해 3년간 한국 군부와 군경을 이끌었다”면서 “결국 당시 제주도민 인구 10분의 1에 해당하는 3만명 가량을 학살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의 실질적 책임은 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미 국무부 동북아실장을 지낸 존 메릴 박사는 “한국은 1948년 8월까지 미군정 통제 아래 있었기 때문에 미국 역시 상당한 책임을 져야한다”며 “미군은 결과에만 주목하느라 종종 지역 치안부대의 폭행을 못 본 체했고 진압작전은 악랄하고 무자비하게 전개됐다”고 밝혔다.
노근리사건을 집중 보도한 공로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찰스 헨리 전 AP통신 편집부국장은 4·3 당시 미국 양대 언론인 AP통신과 뉴욕타임스의 보도태도에 대해 분석했다.
찰스 헨리는 기자는 “이들 언론의 제주4·3에 대한 보도는 한 단락 내지는 길어야 예닐곱 단락에 불과했고, 정보의 출처는 서울에 주둔 중인 미 육군 경우가 부지기수였다”며 “철저하게 냉전의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봤다”고 지적했다.
찰스 헨리 기자는 “두 언론은 미군의 제주도 주둔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기사의 내용은 미군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이는 무엇보다도 브라운 대령, 로버츠 장군, 딘 장군의 관리감독 역할을 간과한 보도였다”고 말했다.
‘제주4·3과 국제인권법’을 발표한 백태웅 하와이대학교 로스쿨 교수(유엔인권이사회 강제실종위원)는 “제주4·3 토벌의 과정에서 벌어진 과잉진압, 대량 학살, 초토화 등은 결코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며 그 책임의 유형도 형사법적 책임은 물론 민사법적 책임, 인권법적 책임 등을 망라한 종합적인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책임관계의 논의를 위해서는 구체적 사실관계의 확정과 증거의 축적 등을 포함해 매우 정밀한 논의와 검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4·3당시 북촌학살사건의 유족인 고완순 할머니는 일가족 6명의 피해 상황을 증언한 뒤 “유엔은 세계 평화와 인권을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라고 들었다”며 “유엔의 설립 취지에 맞게 미국이 4·3의 진실 해결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의 토론을 통해 4·3 참상의 진실과 미국 책임문제를 다루기 위한 국제위원회 발족 등 연대의 필요성과 유엔 기록보관소의 자료 검색, 워싱턴DC에서의 4·3심포지엄 개최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또한 노정선 연세대 명예교수는 한국전쟁 당시 6살의 어린 나이로 제주도에서 피난생활을 했지만, 서북청년단 가족의 일원이었다고 고백하고 “서청이 제주도에서 벌인 만행이 대해 사죄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4.3심포지엄을 위해 참석한 정현서 군(대정고)과 강혜민 양(신성여고)은 “4·3정신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교육이 이뤄진다면 보다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며 “이 심포지엄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4·3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