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일반 유권자에게 낯선 제도이다. 뿐만 아니라 선거관계자는 물론, 심지어 현역 국회의원에게도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는 이 제도 자체에 대한 설명이나 이 제도를 왜 도입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고(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책 <독일 정치, 우리의 대안>을 참조), 이 제도와 관련하여 흔히 잘못 받아들여지고 있거나 간과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라온 법안을 둘러싼 각 당의 전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안을 하고자 한다. 각 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소 편파적인 선거제도를 만들기보다 객관적으로 어느 당의 입장에서 보든지 공정한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연동형 제도관련 오해
연동형 선거제도와 관련한 논의를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부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비례대표'에 관한 것이다. 그러한 오해가 생기는 것은 새로운 제도의 비례대표도 현행 선거제도에서의 비례대표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 정당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어떤 협회장이 다음 총선에서는 비례대표를 한 자리 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거나 또는 비례대표는 매관매직이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 같은 것이 연동형 제도에서 비례대표가 어떤 의미인지를 잘 모른다는 증거이다. 새로 도입하려는 제도에서 비례대표는 기존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Y 지역 내 10개 지역구에서 A 정당은 40%, B 정당은 30%, C 정당은 20%, D 정당은 10%를 득표했다고 해보자. 여기서 그 득표율은 지역구 득표율과 정당 득표율을 동시에 의미한다고 가정한다. 이럴 경우 현행 우리의 선거제도 하에서는 A당이 10석 전체를 가져가게 되고, 다른 정당은 모두 0석이다. 그런데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A당은 4석, B당은 3석, C당은 2석, D당은 1석을 얻게 된다. 이렇게 되면 현행과 연동형 중에 어떤 선거제도가 이 지역 유권자의 의사를 더 잘 반영한다고 보는가? 당연히 연동형이다.
연동형 제도에서 비례대표란 이 경우에 지역구에서 당선되지 못했지만 B, C, D당의 정당 득표율에 따른 당선자를 의미한다.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후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입후보하는 것이다. 어떤 권역에서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되는 의석수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제외한 숫자가 비례대표인 것이다. 따라서 비례대표의 순번이 대단히 중요하게 되는데, 이 순번은 당원들의 비밀투표로 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독일에서는 선거법에 그렇게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두 번째 고려사항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자 한다면, 그 권역을 현재의 광역단위에 맞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패스트트랙에 올라온 안에서는 그것을 6개 권역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나중에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지역이 나타날 수 있다. 실제 선거에서 지역별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비례순번을 배려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역을 광역단위로 해야 하고, 권역의 수가 너무 많아 줄여야 한다면 먼저 광역을 통합해서 줄여야 한다.
셋째, 현행 봉쇄조항의 내용을 정당득표율 5% 미만 또는 지역구 당선자 3석 미만으로 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회에 과도하게 많은 정당이 난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독일의 경험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 때에는 아예 봉쇄조항이 없어서 제국의회에 보통 15개의 정당이 난립했다. 이러한 교훈에서 2차 대전 이후 새로이 선거제도를 만들면서 5% 봉쇄조항을 넣게 되었고, 이는 광역단위의 지방선거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각 당의 전략에 대한 제안-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하여 패스트트랙에 올라온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 번째 문제점은 제1당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제도라는 점이다. 민주당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제도가 공정하지 못한 것은 문제다.
원래 제1당은 지역구에서 월등하게 많이 당선되기 때문에 비례대표를 통한 당선은 당연히 줄어들게 된다. 유권자의 표심이 이미 지역구를 통해 충분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례대표 의석을 추가적으로 더 얻기 위해 이상한 제도를 제안한 것이다.
이번 준연동형에서는 정당득표율에 의해 결정되는 의석수를 1차로 연동비율의 50%만 적용하고, 나머지 2차 50%는 기존 선거제도에서와 같이 별도의 비례대표에 적용하여 합산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연동비율을 나누어 1~2차로 적용하는 방식은 아마도 세계에서 처음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제1당은 정당득표율보다 의석비율이 더 늘어나게 되고, 소수 정당은 정당득표율보다 의석비율이 감소하게 되어 민심 그대로의 선거제도를 만들려는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필자가 민주당의 40% 정당득표율과 130석의 지역구 당선을 가정하고 시뮬레이션 해본 결과, 2차 50% 적용을 통해 약 13석을 더 얻게 되어 의석비율은 48%가 된다. 물론 이러한 예측은 이미 2개의 가정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찌됐든 이것은 민주당이 욕심을 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와 같은 편파성은 민주당이 제1당이 안될 경우에는 반대로 치명적 손해가 된다.
두 번째는 이런 식으로 설계를 하다 보니 선거제도가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점이다. 연동배분의석과 잔여배분의석을 권역별로 어떻게 작성한다는 것인지, 또 서로 어떻게 관련이 되는 것인지 현재 제안된 법안만을 보아서는 잘 알 수가 없다. 이러한 과정에서 왜 석패율제를 도입하려는 것인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밖에 권역의 설정과 봉쇄조항의 문제는 위에 지적한 그대로이다. 그래서 준연동형이 아니라 원래의 연동형으로 선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자유한국당
선거제 개편과 관련하여 자유한국당에서 나오는 주장을 보면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 먼저 독일이 나치의 영향으로 연동형을 도입했다는 이야기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독일은 이미 나치 이전에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부터 비례대표제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또 유권자가 직접 선출하지 않아서 비민주적 선거라는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253개 지역구에서 당선된 후보들이 얻은 전체 득표수는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 2440만 명 중 830만 명(전체 투표자의 34%)에 불과했다. 나머지 1610만 명(전체 투표자의 66%)의 투표는 사표가 된 것이다. 어떤 것이 더 민주적인 것인지 궁금하다.
그밖에 비례대표는 매관매직의 우려가 있으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위에 설명한 것처럼 비례대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당은 기존의 선거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에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겠지만, 부산/울산/경남에서는 과거와 같은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특히 수도권에서 많은 어려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19대 총선에서 수도권에서 정당지지율에 비해 24석이나 부족한 당선자를 냈고, 20대에는 17석이나 손해를 보았다. 하지만 연동형을 도입한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 지지율만큼의 의석은 확보할 수 있으니 연동형 제도에 대해 보다 전향적인 검토와 자세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수도권의 후보자들은 이 점을 잘 고려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한국당은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라온 준연동형 대신에 '100% 연동형'을 제안하여 민주당의 추가 의석확보를 막아야 한다. 이렇게 할 경우에 한국당은 다른 소수 정당들로부터도 대단히 큰 환영과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밖에 지난해 연말의 합의안에 따라 권력구조의 개편에 대한 논의를 추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당은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수용하면서 동시에 권력구조의 개편을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유리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소수 정당
소수 정당들은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라온 준연동형 제안을 어쩔 수 없이 받은 것뿐이지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거대 양당의 줄다리기 사이에서 차선을 선택했을 뿐이다. 향후 논의를 통해 100% 연동형으로 가는 것이 소수 정당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치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그리고 민중당, 녹색당 등 일부 소수 정당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3% 봉쇄조항을 선호하겠지만, 이는 5%로 상향 조정할 수 있도록 양보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5%가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민주평화당은 지역구를 축소할 경우에 선거제도 개편에 나서지 않겠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는데, 이는 재고될 필요가 있다. 호남 지역의 지역구가 줄어들면 민주평화당의 의원이 감소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에서는 줄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과거에는 비례대표의 배분이 전국단위에서 이루어져 지역과 전혀 관련이 없었지만,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할 경우에는 비례대표 의석이 모두 지역으로 배분되기 때문에 기존보다 호남 전체의 의석수는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밖에 일부 전문가는 연동형을 실시할 경우에 비례순번이 높은 지역구 후보는 상대후보로부터 "이 후보는 이미 당선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자신을 지지해 달라"와 같은 '읍소식' 선거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다시 고민한 결과 이런 선거운동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1당이나 2당의 경우에는 지역구 당선자로 권역별 배분의석을 모두 넘어설 수 있어서 비례대표에게 아예 차례가 안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구 선거에서 양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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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복
독일정치연구소장
cho_sungbok@naver.com
조성복 교수는 1986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7년 30대 중반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2000~2007년까지 쾰른 및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2007년 쾰른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베를린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한 후 2010년에 귀국하여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국회 정책연구위원 등을 지냈습니다. 저서로 <독일 정치, 우리의 대안> <독일 사회, 우리의 대안> <독일 연방제와 지방자치>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무엇인가> 등이 있습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조교수의 사치'를 통해 우리 사회현상과 정치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소통하는 활동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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