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를 비롯해 유신 정권 '긴급조치'로 고초를 당한 피해자나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법원은 양승태 사법부 시절 대법원이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해석 논리를 김 전 대통령 등 사례에도 적용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김선희 부장판사)는 지난 13일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1976년 수감됐던 피해자들과 그 가족이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소송에는 선고 사흘 전인 10일 별세한 이희호 여사와 지난 4월 별세한 김 전 대통령의 장남 홍일씨, 2·3남인 홍업·홍걸씨 등이 참여했다.
이 밖에도 문익환 목사, 함석헌 선생 등의 유가족과 함세웅·문정현 신부 등 75명이 원고로 이름을 올렸다.
김 전 대통령 등은 1976년 2월 "우리나라는 1인 독재로 자유 민주주의와 삼권분립 제도가 말살됐다"는 내용의 민주구국선언문을 작성하고, 그해 3월 명동성당 미사에서 낭독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받았다.
당시 김 전 대통령 등에게 적용됐던 긴급조치 9호에 대해서는 2013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
유족들과 일부 생존 인사들이 재심을 청구했고, 이를 받아들인 서울고법은 실형 확정 36년 만인 2013년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피해자와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맡은 1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가 위헌으로 선언됐다 하더라도,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라며 공무원의 고의·과실에 의한 불법행위가 아니므로 민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는 양승태 사법부 시절 대법원이 국가배상 요건을 엄격하게 봤던 판례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해당 판례가 나온 이후 일부 하급심 판결들이 이에 반대하는 해석을 내놓긴 했으나 상당수가 대법원 판례를 따르고 있다.
이 밖에도 재판부는 당시 긴급조치 9호에 따라 피해자들이 영장 없이 구금되고 재판받은 것에 대해서도 "당시 긴급조치 9호가 위헌·무효임이 선언되지 않았던 이상 수사기관이나 법관 등의 고의 또는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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