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친서를 공개하면서 북미 간 대화의 불씨가 살아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한국 정부가 양측을 중재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다고 평가했다.
12일 서울시의회 제2대회의실에서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가 주최한 국제학술세미나의 기조강연을 맡은 이 전 장관은 "(북미 간 협상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트럼프가 김정은으로부터 친서를 받았고 우리가 나름대로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중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에서 일정한 자율성을 회복하는 일"이라며 "당장 남북정상회담 이뤄져서 우리에게 중재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 과제인데, 이것이 달성된다고 해도 남북관계에서 자율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향후) 중재하기가 어려워진다"고 전망했다.
이날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친서를 받은 점을 언급하며 "그동안 (북미 간) 대화나 접촉이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기대섞인 관측을 내놓았다.
문 특보는 외교부와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가 공동 주최한 '평화를 창출하는 한미동맹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문 대통령도 핀란드 순방 중에 남북·북미 대화가 곧 열릴 것이라는 낙관을 한 만큼 빠른 시일 내에 남북·북미 대화가 있지 않을까 예측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종석 전 장관은 한편 "미국이 남북관계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북미 관계, 비핵화 협상과 같이 가야한다. 먼저가지 말라'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지난해 한반도가 얼어붙었을 때 남북관계의 우선적 발전을 통해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키고 북미 협상도 진전시켰다는 점, 또 남북관계의 우선적 발전이 한반도의 평화를 만든 것이 지난 1년간의 역사적 경험이라는 점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그렇다고 남북관계에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을 넘어서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제재 바깥의 것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하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해야만 우리의 중재 역량도 생기고 그걸 통해서 비핵화를 위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는 우리의 공간이 넓어진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전 장관은 북한에게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중단이 상당히 큰 성과였다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리더십 문제 때문에라도 북한이 훈련에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지난 5월 4일과 9일 북한이 잇따라 미사일을 발사한 원인 중 하나가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었다는 진단이다.
이 전 장관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은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엄청난 것이었다. 훈련이 있으면 북한에서도 대응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공장에서 기계 돌리던 노동자들이 비상 걸려서 기계를 놔두고 훈련 현장에 가야했다. 이것 때문에 북한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는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타고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상당한 규모로 축소됐고, 이에 북한도 그만큼의 대응이 필요 없었기 때문에 경제 발전에 매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전 장관의 설명이다.
그러나 올해 4월 한미 양국 공군은 연합 훈련을 실시했다. 이 전 장관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중단하면 (북한의) 노동자들은 산업 현장에서 계속 기계를 돌릴 수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다시 훈련이 나오면 (노동자뿐만 아니라) 군인들까지 경제 현장에 투입했던 김정은의 리더십에 상당한 생채기가 나기 때문에 대응을 안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사거리 400km의 미사일도 발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장관은 "비핵화가 우리에게 절체절명의 과제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중단하기로 했다면 북한이 비핵화하는 동안에는 중단했어야 했다"며 "북한이 비핵화 과정에 합의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그 때 다시 (훈련을) 하면 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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