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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오슬로 선언'이 돌파구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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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오슬로 선언'이 돌파구가 되려면

[정세현의 정세토크] 대화의 문 닫은 북한, 이유는

정부는 지난 5일 WFP(세계식량계획)와 UNICEF 등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 집행을 의결했다. 하지만 북한은 남한 정부의 인도적 지원에 대해 "부차적이고 시시껄렁"한 문제라면서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거론, "북남 선언에 제시된 근본 문제를 성실히 이행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북한은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제의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아무런 응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사실상 남한과 대화를 끊어버린 셈이다.

북한의 이러한 대응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우선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비롯해 그들이 말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이 풀리지 않는 상황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 5월 4일과 9일에 방사포와 단거리 미사일을 쏜 이유도 4월 말에 시작된 한미 양국의 공군 합동 훈련에 대한 반발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남한에 실망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대체해 하반기에 한국군 대장 주도로 실시하는 '19-2 동맹' 훈련이 열리는데, 북한은 이 훈련이 지난해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당시 남북 간 체결된 '9.19 군사분야 합의서'의 합의를 무시하는 규모 또는 범위로 실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며 "북한은 이 부분에서 남한에 실망한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는 "남북이 9.19 군사분야 합의서를 통해 공동경비구역의 무장 해제도 합의했고 출입 문제에 대해서도 합의했는데 유엔군 사령관이 여기에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북한은 '남한은 미국이 조금만 이맛살을 찌푸려도 아무것도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남한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한편으로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최근 경향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자력갱생은 단순히 구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하고 그건 남한과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며 "미국의 압박과 제재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겠다는 건데, 이러면 외부에서 지원을 받기가 좀 곤란해진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이같은 대응에 촉진자로서의 남한 입지도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12일 오슬로 선언을 통해 '베를린 구상'의 뒤를 잇는 대북, 대미 메시지를 발표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1차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이 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내용에 따라서는 임팩트가 생길 수도 있다고 본다. 이달 말 방한을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메시지를 보내는 성격도 있을 것이고, 이 회담 결과를 기다리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들어있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를 만족시켜서 3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뤄지게 하려면 북한 내부 사정에 대한 보다 치밀한 분석을 토대로 해서 내용을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10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북한이 최근 남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부차적인 겉치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군사 분야 합의를 잘 지키라고 이야기했는데요.

정세현 : 북한이 지금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안에 답이 없고, 정부의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사실상 문을 닫아버린 진의를 읽어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북한은 지난 5월 26일 대외용 주간지인 <통일신보>에서 "부차적이고 시시껄렁한 인도주의 지원"이라면서 남한에 "북남선언에 제시된 근본적인 문제들을 성실히 이행하는 실천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정부 차원의 인도적 지원은 받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것이죠.

그러면서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남한이 여전히 자신들에 대한 '적대행위'에 매달리고 있으면서 인도적 지원을 언급하는 것은 "남북 간 합의 이행을 위해 할 바를 다하고 있다는 것을 생색내기 위한 것"이라면서 말이죠.

이런 점을 통해 봤을 때 북한은 우선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비롯해 그들이 말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이 풀리지 않는 상황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지난 5월 4일과 9일에 방사포와 단거리 미사일을 쏜 이유도 4월 말에 시작된 한미 양국의 공군 합동 훈련에 대한 반발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광복절 이후 실시됐었던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대체해 하반기에 한국군 대장 주도로 실시하는 '19-2 동맹'에 대한 견제도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북한은 '19-2 동맹' 훈련이 지난해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당시 남북 간 체결된 '9.19 군사분야 합의서'의 합의를 무시하는 규모 또는 범위로 실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한국이 "남북 간 9.19 군사분야 합의서가 있어서 한미 연합 훈련의 규모가 커지면 합의서에 저촉될 수 있으니 훈련 규모를 최소로 하자"라고 미국에 말하기를 바랐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이런 메시지를 미국에 보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실망한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또 남북이 9.19 군사분야 합의서를 통해 공동경비구역의 무장 해제도 합의했고 출입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합의했는데 유엔군 사령관이 여기에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고요. 게다가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북한은 '남한은 미국이 조금만 이맛살을 찌푸려도 아무것도 못한다'라고 생각하면서 남한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 지난해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북한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러한 배경 하에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근본 문제를 성실히 이행하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관측됩니다. 남한이 근본 문제를 이행하는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 인도적 지원도, 정상회담도 없다는 것이죠.

물론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을 깨는 편지를 보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발 빠르게 원포인트 정상회담을 해서 다시 북미 정상회담의 모멘텀을 살려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6월 12일 진행됐던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시킨 것은 문재인 대통령입니다. 그리고 이후 북미 공동성명에도 북한의 논리가 순서대로 담겼고요.

그런데 이후 실행 단계에서 미국은 북한의 '선(先)행동'을 요구했습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도 그랬죠. 이 대목에서 남한이 북미 양측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도 북한은 남한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설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줬죠.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 이후 군사 문제에서 남한은 미국의 견제를 물리치지 못하고 계속 끌려다니는 듯한 모습만 보였습니다. 그걸 보면서 남한의 대미 협상력에 대한 북한의 기대감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무자들에게 발목 잡혀서 제대로 협상하지 못하는 것이 못마땅하고 불안한데 그런 미국을 움직여주길 바랐던 남한은 미국이 '노(NO)' 하니까 한 발짝도 못 나가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남한을 믿을 수 없고,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합의나 이행히라는 말을 하게 된 것이죠.

또 지난 2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때도 미국이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남한이 북한에 슬쩍 알려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북한에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남한이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도 북한이 실망한 것 같고요.

한편으로 여기에는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최근 경향도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자력갱생'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자강도 출신의 당위원장을 내각 총리로 앉히지 않았습니까? 이건 일단 연말까지는 버텨보겠다는 겁니다.

전임 총리였던 박봉주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의욕적으로 시장경제를 도입해서 북한에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장마당'을 생기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이 사람을 김정은이 2013년에 다시 총리로 임명했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경제 요소를 더 투입하겠다는 의지로 읽혔죠.

그런데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던 총리가 자력갱생을 외치던 사람으로 바뀐 겁니다. 결국 이는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미국의 변화를 기다리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이 먼저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고요. 즉 미국의 압박과 제재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겠다는 결정인데, 이러면 외부에서 지원을 받기가 좀 곤란해집니다.

자력갱생은 단순히 구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하고 그건 남한과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은 '자력갱생'을 통해 미국이 압박과 제재를 통해 자신들을 굴복시키려는 것은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할 겁니다. 그러려면 남한과도 어느 정도 냉랭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인도적 지원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프레시안 : 그렇지만 정부는 일단 인도적 지원을 추진한다는 입장입니다.

정세현 : 정부가 130만 톤 정도가 비축돼있고 창고 보관료만 1년에 4800억 원이 들어간다고 밝혔는데요. 이걸 인도적 지원 문제가 거론됐을 때 초기부터 말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북한의 반응을 끌어내기 전에 국민의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한데 1년에 이렇게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것을 국민들이 안다면 여론은 달라질 수 있는 측면이 있으니까요.

또 농민들도 좀 더 나서줬으면 좋았을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1995년 김영삼 정부 당시 북한에 쌀을 지원할 때 경남에 있는 농민들이 서울로 올라와서 남한산 쌀을 보내라고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6월 27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던 정부 입장에서는 농민들의 이러한 요구를 외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북한에 많은 양의 쌀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려면 한미 간 협의를 비롯해 여러 과정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쌀 지원에 대한 남한 내 여론이 강력하다면 미국과 협의가 좀 더 수월했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좀 아쉬운 대목입니다.

세계식량계획(WFP)이든 유니세프든 대북 인도적 지원을 실행하게 되면 그에 따른 행정비가 일정하게 지급됩니다. 20% 정도 지출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WFP를 통해서 450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해도 이 금액이 전부 북한 주민들에게 가는 것은 아니죠.

이렇기 때문에 국제기구에 공여하는 방식으로 하면 지원에 대한 생색을 내기가 힘들뿐만 아니라 남북 간 대화의 물꼬를 트기도 어렵습니다. 인도적 지원 카드의 효용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어차피 지원을 할거면 우리가 직접 하는 것이 좋습니다.

북한, 대화 재개? 또 다른 미사일 발사?

프레시안 : 6월 말 한미 정상회담이 계획돼있는데요. 한미 전에 남북 정상회담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른바 '원 포인트' 회담이라도 남북 정상회담이 가능할까요?

정세현 : 오늘이 벌써 6월 10일이라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정상 간 핫라인이 가동되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그 채널이 가동되는 것 같지는 않고요. 국정원 라인도 정상 작동이 어려운 상태로 보입니다. 그나마 남북이 만날 수 있는 통로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인데요. 2월 말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여전히 북측 소장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이에 대한 책임으로 김영철이 통일전선부장에서 밀려난 상황이지 않습니까? 이러면 김영철이 겁이 나서 서훈 국정원장과 선뜻 대화에 나서기 어렵습니다. 북한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대대적으로 조사 및 검열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간부 중에 어느 누가 남한과 접촉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다만 북한도 미국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미국이 특정한 조건을 들어준다면 자신들도 얼마든지 미국이 원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고 그러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면 이 이야기를 가지고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이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만약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노르웨이 수도인 오슬로에서 '베를린 구상'의 뒤를 잇는 대북, 대미 메시지를 발표할 계획인데요. 오슬로 선언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요?

정세현 : 1차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이 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내용에 따라서는 임팩트가 생길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달 말 방한을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메시지를 보내는 성격도 있을 것이고요. 또 이 회담 결과를 기다리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들어있을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를 만족시켜서 3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뤄지게 하려면 북한 내부 사정에 대한 보다 치밀한 분석을 토대로 해서 내용을 준비해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은 물밑이나 비공개라고 할지라도 북한으로부터 일정한 사인이 나와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북한이 양보를 취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일 텐데, 문 대통령이 북한의 메시지를 미국에 전달해서 미국이 여기에 화답하는 형식이 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북한이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미국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갈 길을 가겠다는 식으로 내부를 강하게 단속하고 있다면 문 대통령이 촉진자 역할을 한다고 해도 시간은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현지시각) 핀란드 대통령궁에서 열린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

프레시안 :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약 100일이 지났습니다. 이정도면 북한이 내부 정리를 끝냈을 시간 아닌가요?

정세현 : 어느 정도 마무리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4월 12일에 연말까지 미국에 셈법을 바꾸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건 누가 보더라도 미국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설사 북한이 '우리가 먼저 미국에게 러브콜을 보내봐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라도 당장은 그렇게 하지 못할 겁니다. 북한의 대남‧대미 정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북한이 약자라는 사실입니다. 북한은 그렇기 때문에 명분을 중시하고 먼저 움직이기보다는 상대방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이걸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다음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겁니다.

북한이 선비핵화 조치로 일정한 움직임을 취했는데 미국이 이걸 따라오지 않으면 북한으로서는 더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북한에 '플러스 알파'를 요구하면 북한 입장에서는 그 '알파'가 하나로 끝날지, 더 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감이 더 커지는 것이고요. 그래서 북핵 문제는 단계적‧동시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다만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에서 지난 5월 24일 '동시적이고 병행적'(simultaneously and in parallel)인 방식으로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자고 밝혔는데요. 이걸 북한이 좋은 신호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만, 미국의 이 말만 믿고 나갔다가 또 험한 꼴을 보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북한은 일단 한미 정상회담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 확실한 미국 의중을 알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의 숙제가 더 커진 상황입니다. 이른바 '굿 이너프 딜'로 미국과 북한 사이 다리를 놓으려고 했는데 문제는 미국과 북한이 서로 원하는 방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스테이크 3개를 먹어도 배가 차지 않고 북한은 밥 한 공기를 먹어도 배가 부른 상황이기 때문에 이른바 '이너프'의 정도가 다른 것이죠. 그런데 미국 국무부에서 이런 입장을 보였다면 일단 큰 틀에서는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행동으로 해보자는 정도는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일부에서는 6월 말 한미 정상회담까지도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미국의 가시적인 조치가 없다면 지난 5월 4일과 9일에 미사일을 발사했던 것처럼 또 다른 군사적 행동을 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옵니다. 특히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맞춰서 이런 행동을 벌일 가능성도 있어 보이는데요.

정세현 : 그럴 수 있습니다. 불과 2년 전인 2017년에도 7월 4일에 맞춰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발사한 적이 있죠.

그런데 북한이 애매한 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에 발사한 북한의 미사일에 대해 "작은 무기들을 발사했다"며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인 적이 있는데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규정한 것과는 상당히 다른 접근을 했습니다. 이건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재개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도 설사 군사적 행동을 벌인다고 해도, 누가 보더라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탄도 미사일을 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발사하더라도 미사일이긴 한데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을 쏠 수는 있겠죠.

프레시안 : 현 시점에서는 남한이 북한에 "일단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하자. 미국이 반대급부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건 우리가 보장해 줄게"라고 말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지 않나요?

정세현 : 그런데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이 마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있는 겁니다. 만약에 미국이 마음 바꾸고 다른 행동을 하면 자신들은 사실상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죠. 스냅백도 불안해서 못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스냅백은 북한이 일단 비핵화에 대한 선행동을 하고 미국이 여기에 맞춰서 급부를 주고 그런데 북한이 또 핵 활동을 하면 미국이 줬던 제재 해제와 같은 급부는 다시 원상태로 회복된다는 건데,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이 주는 반대급부가 확실히 보장되느냐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이 했던 것만큼 진도를 빼지 않으면 자기들만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프레시안 : 그런가 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2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이란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일본이 미국과 이란의 중재자 역할로 나선 셈인데요. 북미 간 대화에서도 일본이 이런 식으로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을까요?

정세현 : 그러려면 북한이 일본의 정상회담 제의에 응해야 하는데 그렇게 쉽게 일본과 대화 테이블을 마련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본이 식민 지배와 관련해 배상금 액수를 올려주겠다는 메시지가 평양에 도달하지 않는 한 북한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물론 양국이 물밑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본은 배상금 및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고 북한은 일본인 납치자 유골을 일본이 알아서 찾아가라고 할 수도 있죠. 그런데 현재 대북 제재가 촘촘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아무리 물밑이라고 해도 북한과 이러한 식의 합의를 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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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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