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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반도 만세 - 총독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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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반도 만세 - 총독의 소리"

김민웅의 세상읽기 〈200〉

"충용한 제국 신민 여러분, 제국이 재기하여 반도에 다시 영광을 누릴 그 날을 기다리면서 은인자중 맡은 바 고난의 항쟁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제국 군인과 경찰과 밀정과 낭인 여러분, 제국의 불행한 패전이 있은지 이십유여 년, 그간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의 정세도 크게 바뀌었거니와 패전의 그 무렵에 우려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띠고 전개되어 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지하방송의 육성은 작품 〈광장〉으로 우리 문학사에 전환점을 새겨놓은 작가 최인훈의 단편소설 〈총독의 소리〉의 첫 대목입니다.

해방된 이후 이 땅 어디엔가 은신하고 있던 일제 잔재 세력의 총결집을 촉구하는 이 '총독의 소리'는 우리 역사가 걸어 온 길에 대한 맹렬한 반성과 성찰을 반어법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건 말하자면, 식민지에서 벗어난 땅이 여전히 식민지로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지하방송의 총독은 한국 현대사에 등장한 역대 정권을 또한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건 이른바 한국사가 자신의 주체성을 가지고 움직인 것이 아니라 식민지적 근성을 가진 타율적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식민지사관의 되풀이였습니다.

"희망은 있습니다. (…) 반도의 역대 정권은 본질적으로 매판정권으로서 민족의 유기적 독립체의 지도부층이 아니라, 외국세력의 한국에 대한 지배를 현지에서 대행해줌으로써 자신들의 지위를 보존해 왔던 것입니다. 그들은 부족의 이익보다 외국 상전의 이익을 먼저 헤아렸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최인훈은 이를 "총독의 소리"라고 내세우면서, 이 작품은 일제의 식민지사관을 현실에서 우리가 얼마나 부정할 수 있겠는지 묻고 있습니다. 기존 권력에 정치적 도전을 격렬하게 했던 바가 없는 지식인 최인훈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는 너무도 매섭게 현실의 모순을 가격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이 나라 민중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힌 의식의 세계에도 주목합니다.

총독은 계속해서 자신의 충용한 제국의 신민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40년의 경영에서 뿌려진 씨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며 이는 폐하의 유덕을 흠모하는 충성스런 반도인의 가슴 속 깊이 간직되어 있는 희망의 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비밀입니다. 해방된 노예의 꿈은 노예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 되게 굴던 서방을 여자는 못 잊는 법입니다. (…) 제국의 반도 만세."

1965년 한일협정 당시의 현실을 목격한 서른한 살의 청년 최인훈은 이렇게 우리 역사의 골수에 사무쳐 있는 식민지 의식의 남루한 현실을 난타하고 있습니다.

그 최인훈의 격렬한 몸짓은 오늘날이라고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듯 합니다. 하여 그는 끊임없이 미국으로 귀결된 서구사의 반복적 복사를 우리의 발전으로 여기는 의식에도 치열한 비판을 가합니다.

그는 그의 또 다른 작품 〈회색인〉의 한 대목에서, 식민지를 희생시키고 발전해 온 서구의 역사를 그대로 따라 잡는다는 것은 우리 또한 식민지가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와 미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각종 군사, 외교, 경제 현안들의 처리방식은 〈총독의 소리〉에 새삼 주목하게 합니다.

"제국의 반도 만세"라는 저 육성이 현실이 되어간다면, 해방된 노예의 꿈은 노예로 돌아가는 일이라는 예언 아닌 예언이 맞아떨어지게 됩니다.

총독의 소리 지하방송의 현장은 다름 아닌 우리 안에 있습니다. 너무도 깊이 박힌 갈쿠리 모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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