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한 달 동안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공동주최한 '주거복지학교'에 참석했다. 모든 강의가 인상 깊었지만 특히 두 번째 순서를 맡은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리가 번쩍했다.
최 소장은 주거복지 실태를 설명하면서 아동 주거권을 강조했다. 지난해 말에 보도된 <한국일보> 기획 기사 '단칸방에 갇힌 아이들'의 보도 내용도, 경기도 시흥시의 의뢰로 한국도시연구소가 지난해 하반기에 진행한 '정왕지역 아동 주거 실태조사' 결과도 새롭게 접했다. 단칸방에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아동 가구의 위태로운 삶에 대해서도 들었다. '가족들이 눕기에도 좁은 방', '움직이기도 힘은 좁은 부엌', '성별이 다른 3명의 자녀와 부모', 이 세 가지 문구에 가슴이 먹먹했다.
우선 법적 토대가 갖춰져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아동 주거권을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법이 없다. 영국의 주택법(Housing Act of 1985)을 본받아 우리도 조속한 입법이 필요하다. 영국의 주택법은 방의 개수와 주거 면적을 통해 과밀 기준을 정하고 있다. 이는 점유자, 임대인, 지방 주택 당국 등 주거 주체들에게 과밀 기준을 준수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지키지 않을 경우 벌금, 소송 등의 법적 장치가 있는 강행 규정이다. 특히 10세 이상의 이성 아동이 한 방에서 자는 것, 부모일지라도 10세 이상의 이성 아동과 한 방에서 자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아동 주거권을 보장하는 법과 정책이 없을까? 아이들이 선거권을 지니고 있지 못해서일까? 사실 정치권, 특히 거대 정당들이 주거권에 관심을 가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조기 대선에 이르러서야 청년을 비롯한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주거권 공약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2년 전 대통령선거에서 각 후보들은 어느 때보다도 청년 정책공약을 강조하였다. 조기 대선의 원인이 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이른바 촛불시민혁명이 있었고, 여기에는 청년들의 참여가 컸다. 청년들은 부정부패를 저지른 권력 심판을 넘어서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 해결까지 이야기했다. 이미 주거 문제는 일자리 문제와 함께 청년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어 있었다.
각 정당들이 청년 주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공약을 발표하고 정책을 제도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청년들의 어려운 상황에 비하여 정책의 실효성이 아직 크지는 않지만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자는 사회적 인식은 어느 정도 생겨나고 있다고 보인다. 정부와 정당들은 다음 선거에서도 청년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도 청년 주거 문제를 간과하지 않을 것이며, 청년들은 자신들의 주거권 확보를 위한 목소리를 계속 높여갈 것이다.
그렇다면 아동들이 겪는 주거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정당들은 선거권이 없는 아동들의 주거 문제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 청소년을 제외한 어린 아동들 역시 자신들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조직을 만들고 힘을 모아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운 처지에 있다. 그래서 아동 주거권 보장을 위해서는 사회적 연대의 힘이 절실하다. 정부와 정치권이 먼저 논의를 시작하지 않는다면, 시민사회가 먼저 나서서 아동 주거권 보장을 위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서 거친 생각이지만 활발한 논의를 위해 아동 주거권 보장을 위해 다음 다섯 가지 정책 과제를 제시한다. 아이들이 선거권이 없다고 주거권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 아동 주거권을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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