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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영재학교, 경쟁률 11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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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과학영재학교, 경쟁률 11대1

제2의 과학고 전락 우려

국내 제1호 과학영재학교인 부산과학고등학교의 2004년도 입시 경쟁률이 11대1에 달하는 등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과학기술부와 부산광역시 교육청은 2004년도 신입생 입학원서를 접수한 결과 14백4명 정원에 전국에서 1천5백96명이 지원해 11.08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많은 논란 속에서 2000년에 영재교육진흥법을 제정하고 올해 처음으로 신입생을 받은 영재학교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한 결과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과학영재학교가 과연 성공할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1983년 과학영재 육성을 목표로 내걸고 의욕적으로 출발해 현재 전국에 16개 학교가 있는 과학고의 전철의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고는 현실의 입시교육과 충돌하면서 원래의 설립취지를 살리기보다는 명문대 진학을 위한 ‘입시 학원’으로 전락했다는 것이 교육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과학영재학교 과연 특별한가?**

과학영재학교 측은 이런 우려에 대해서 “선발방법과 특화된 교육과정을 통해서 기존 과학고의 실패를 밟지 않겠다”라고 답변한다. 이 학교가 기존의 중등교육법이 아닌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운영돼 일반 고등학교와 크게 다른 학사일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도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학교는 무학년제와 졸업학점 이수제를 적용해, 학생들의 선택권을 높이는 맞춤식 교육을 시도하고 조기졸업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첫 신입생들은 이런 방침에 따라 국어 등 일부 과목을 제외하고 영어 원서로 진행되는 수업을 받고, 과목별 시험을 통과한 30여명의 학생들은 따로 KAIST에서 파견된 해당 과목 교수들과 개별 수업을 하는 등 차별화된 교육을 받고 있다.

교육 환경 역시 기존 고등학교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학생 6명당 교사 1명의 현재 비율을 더욱 줄이기 위해 박사급 전문강사를 더 채용할 예정이며, 과학기술부가 1백20억원을 들여 만든 대학 실험실을 능가하는 장비들을 갖춘 첨단과학관과 1억원 어치의 과학도서가 구비된 도서관이 운용되고 있다. 추가 시설확충과 첨단 기자재 구입을 위해 해마다 50억원씩 과기부의 지원도 받는다.

과학고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입시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학교의 방안도 나온 상태다. KAIST와 포항공대에 특별전형으로 진학할 수 있는 협정이 체결되었고 서울대를 비롯한 다른 대학과도 협정을 맺는 것을 추진 중이다. 약 40%의 재학생이 해외 유학을 원하는 현실을 고려해 국내 대학교수들의 진학 지도를 위촉하고, 해외 대학과의 협력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과학영재학교 과연 성공할까?**

과기부는 부산과학고등학교의 운영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전국의 다른 과학고등학교의 교육에 적용하고, 단계적으로 영재학교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재학교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우선 영재학교와 비슷한 목표와 교육과정을 가지면서도 대학입시에서 내신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는 기존 과학고 측이 ‘명백한 차별’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과학고는 2학년을 마치고 대학 진학을 위해 자퇴를 하거나 아예 내신 불이익을 피해 해외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급증하고 있다. 2000년부터 지난 3년간 모두 39명의 학생이 외국대학에 진학한 것이다.

과기부의 계획처럼 영재학교로 전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각 시, 도 교육청에 소속되어 있는 과학고로서는 해당 지역 학생들을 배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재학교로 전환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했던 수도권의 한 과학고도 신입생들의 지역비율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결국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계 관계자들은 지금 신입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2, 3년 후가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KAIST나 포항공대의 입학 정원이 제한되어 있는 현실에서 특별전형으로 진학시키는 것도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대 등이 특혜를 줄 경우에는 다른 고등학교나 학부모들의 엄청난 반발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향후 영재학교가 더 확대될 경우에 이 문제는 더욱더 크게 불거질 수밖에 없다.

더 근본적으로는 영재학교의 교육이 성공할지를 염려하기도 한다. 높은 수준의 지식 교육과 창의력, 사고력을 향상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와 타학문에 대한 통합적인 안목을 기르고 사회성 등을 함양하는 교육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다. 영재학교에 입학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사교육을 통해 선행 학습을 하고, ‘자기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국에서 한 곳의 영재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과학, 예술 분야의 영재들이 해당 분야뿐만 아니라 타 분야의 수업을 듣도록 유도하는 등 통합적인 안목을 기르도록 교육하고 있다. 미국 역시 영재교육의 중요한 목표를 ‘사회에 나가서 지도자적인 구실을 해내는 것’으로 두고 있다. 즉 창의적인 전문가로서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태도를 신장하기 위한 교육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다.

초등학교까지 번진 고등학교 입시 열풍도 큰 문제다. 이번 부산과학고등학교 입시 경쟁률에서도 드러났듯이 기존 과학고, 외국어고 진학을 위한 학원 과외를 영재학교가 더 부추길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미 서울 시내에는 특목고 준비반을 별도로 운영하는 1백여 곳이 넘는 학원이 성업 중이다. 이 학원에서는 토플, 토익 등 어학 시험 준비뿐만 아니라 경시대회 입상 성적, 내신 성적 관리까지 해준다고 한다. 이런 사교육 과정에서 오히려 “잠재적인 영재들의 영재성이 훼손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영재학교,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한 교육 단체 관계자는“학교 교육을 정상화할 때 이를 기반으로 영재교육도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이라며 확장하는 영재교육 시장을 우려했다. “공교육이 엉망인 시점에서 영재교육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영재교육이 필요하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단 교육이 큰 사회문제인 한국 사회에서 우리에게 어떤 영재교육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첫 영재학교의 운영을 계기로 뒤늦게라도 영재교육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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