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시체도 못 찾았는데, 내가 어찌 눈을 감나. 이렇게 죽어서는 남편을 못 만날 것 같다. 내가 죽기 전에 남편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찾아줬으면 좋겠다."
현경아(97) 할머니는 제주시 아라동 구산부락 출신이다. 1948년 남편 오형률씨와 슬하에 딸 둘을 두고 아라동에서 밭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았다.
그해 11월 군경에 의해 마을 전체가 불에 타자 가족들은 지인이 있는 남문통(이도1동)으로 몸을 피했다. 며칠 뒤 경찰이 찾아와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라며 남편을 끌고 갔다.
1948년 12월8일 열린 불법적 군법회의에서 남편은 징역 15년을 선고 받아 목포형무소로 향했다. 그게 마지막이다. 71년이 지난 현재까지 남편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제주4.3 생존수형인에 이어 4.3행방불명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재심 청구에 나섰다. 70여년 전 전국 각지에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 사라진 죽은 자에 대한 첫 재심 청구다.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회장 김필문)는 3일 오후 2시 제주지방법원을 찾아 행불인수형자 대표 10명에 대한 재심청구서를 접수했다.
행불인수형인은 4.3사건이 불거진 1948년과 이듬해인 1949년 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아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끌려간 후 시신을 찾지 못한 희생자들이다.
전체 행방불명 희생자 3000여명 중 1949년 7월까지 군사재판으로 옥살이를 한 수형인은 2530명이다. 이중 상당수가 제주로 돌아오지 못하고 연락이 끊겼다.
이번 소송은 행불인수형자 중 10명의 유족 대표가 먼저 진행한다. 생존수형인과 달리 행불수형자는 생존자가 없어 직계 가족이나 형제가 소송의 청구 대리인이 된다.
청구 대상자는 이학수씨, 서용호씨, 문희직씨, 양두창씨, 김경행씨, 오형율씨, 진창효씨, 전종식씨, 이기하씨, 김원갑씨다.
재심의 특성상 청구인은 직접 재판에 참석해 피해사실을 증언해야 한다. 행불인수형자의 경우 재심 대상자들이 생존하지 않아 유족들이 이를 입증해야 할 상황이다.
생존수형인 사건의 경우 2017년 4월19일 재심청구부터 2018년 9월4일 재심 개시 결정까지 504일이 걸렸다. 그 사이 청구대상자들은 법정에 출석해 피해 사실을 모두 증언했다.
김필문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은 "행불인 가족들은 그 동안 피 맺힌 아픔을 안고 살아왔다. 우리도 얼마후 무덤으로 가야 한다. 이제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유족회 산하 6개 위원회 중 예비검속을 제외한 5개 위원회에서 10명의 우선 청구 대상자를 선정했다"며 "향후 재판과정에서 청구인은 더 늘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승문 4.3유족회장은 "행불인협의회는 3년 전부터 재심 청구 재판을 준비해 왔다"며 "부디 재판부에서 현명을 판단을 내려 줄 것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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