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주민카드사업이 지난 98년 계획 단계에서 무산된 이후 다시 추진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사태로 정보인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시점에 자칫 전자주민카드사업이 '제2의 NEIS'가 될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현재 전자주민카드사업은 KAIST 지식기반전자정부연구센터를 비롯해 삼성 SDS, LG CNS, 서오 텔레콤 등 시스템통합 업체와 은행, 카드사 등 금융기관이 공동으로 스마트카드 컨소시엄을 결성해 첨단 기술을 적용한 전자정부사업 아이디어를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행정자치부의 실무 부서인 주민과에서는 현재 플라스틱 신분증을 변경할 계획이나 컨소시엄과의 사전 접촉도 없는 상태라는 점에서 이같은 민간업체들의 의도에 대해 의혹이 일고 있다.
행정자치부 주민과의 실무자는 "플라스틱 신분증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전자주민카드 얘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국민의 신분증을 전면 개혁하는 중요한 일을 너무 기술 위주로만 생각한다는 인상을 받는다"면서 "지금은 차세대 신분증이 어떤 형태로 갈지에 대해 전문가와 국민 여론을 수렴해 연구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일부 IT 업계 관계자들은 민간 컨소시엄의 결성에 대해 "전자주민카드에 대한 분위기 조성을 위한 포석일 수 있다"면서 "전자주민카드 사업을 관철하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자주민카드 사업은 불사조?**
95년 당시 내무부가 추진했던 전자카드주민 사업은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국민연금증, 의료보험증, 인감증명서, 주민등록 등초본, 지문 등 7가지 신상정보를 담은 통합카드 구상으로 개인정보 침해를 우려한 시민단체와 일부 정치인 등 여론의 반발에 부딪쳐, 3년여에 걸친 논란 끝에 결국 1998년에 계획 자체가 폐기되었다.
그러나 전자주민카드 이후에도 전자건강보험증, 국방스마트카드 등 각종 전자카드사업이 관련 당국의 주도로 추진되다가 폐기된 적이 있고, 오는 7월부터 기존 공무원증에 PC 암호관리, 전자 서명용 관인 기능을 포함한 공무원 전자카드가 시범 운영될 예정으로 있는 등 전자카드사업은 여러 형태로 시도돼 왔다.
지난 4월에는 국가 정보통신 정책을 기획, 자문하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이주헌 원장이 취임하면서 "전자주민카드 사업 정책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자주민카드 사업이 끊임없이 추진되고 있는 데는 정보를 중앙으로 집적해서 관리하려는 정부의 권위주의적 행정 마인드와 전국민을 대상으로 사업이 추진될 경우 엄청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스마트카드 업계의 기대가 맞물린 것이라고 지적한다.
***전자주민카드 뒤에는 기업이 있다**
시스템통합업체들이 전자카드사업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라는 것이다.
국내 시스템 통합 업체 중 가장 먼저 스마트카드 사업에 진출한 삼성 SDS는 이미 공무원 전자카드 시범사업, 삼성서울병원 스마트카드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 SDS와 국내 시스템 통합 시장 2위인 LG CNS도 2002년부터 스마트카드 관련조직을 확대하고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스마트카드를 미래 핵심 품목으로 상정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들 기업들이 정부를 대상으로 설득작업을 더 확대할 것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98년 당시 전자건강보험증 반대 운동을 전개했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현 LG CNS의 전신인 LG EDS가 당시 "정부는 물론이고 시민단체를 대상으로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면서 "만약 전자주민카드가 다시 추진된다면 정부가 과연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정보인권 보호를 위한 시스템 마련 절실**
이같은 우려는 정보인권에 관한 국민들의 인식 수준이 매우 낮다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전자정부 구현에 있어서는 세계 1, 2위를 다투면서도 정작 '정보인권'에 대해서는 정부부터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1980년 정보인권 8원칙을 제정하고, 대부분의 회원국들이 프라이버시보호법과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라는 것.
참여연대 한재각 시민권리팀장은 "최근 'NEIS 사태'는 정보인권에 대한 국가 차원의 논의와 대비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줬다"면서 "프라이버시보호법과 같은 정보인권을 보호할 법령을 만들고 이에 관한 활동을 담당할 '개인정보 보호 위원회'를 독립적 기구로 만드는 등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법,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컨소시엄 결성을 주도한 KAIST 지식기반전자정부연구센터의 백용기 연구원은 19일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스마트카드가 미래 국제 시장에서 차지할 위치나 우리나라의 기술 결정력을 염두에 둘 때, 스마트카드 사용 환경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일단은 "교통 카드 전국 표준화나 특정 2, 3차 진료 기관의 의료 정보 공유 등을 통해 스마트카드 활용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라고 얘기했다. 백용기 연구원은 "장기적으로는 전자주민카드, 전자건강보험증 등으로 가야 한다"면서 "컨소시엄도 정보인권이나 기타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 신경을 쓸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공동 컨소시엄은 6월 30일 정식으로 발대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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