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일 정상회담 불발 가능성을 연일 언급하고 있어 배경이 주목된다. 6월 28~29일 일본 오사카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관계의 전환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국내외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일본은 한일 정상회담의 선결 조건으로 한일 갈등의 쟁점인 '강제동원' 문제에 해법을 내놓으라며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방문단으로 일본을 방문 중인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은 28일 만난 와타나베 미키 참의원 외교방위위원장이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일본 국회 분위기는 중재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중재에 응하지 않으면 정상회담은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29일 전했다.
윤상현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역시 이날 도쿄에서 현지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일본 의회는 일본 정부의 중재위 설치 요구에 한국 정부가 응해야 하며, 만일 한국 정부가 이를 거부할 경우 G20 정상회의 계기 별도의 한일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일본 집권여당인 자민당에서도 이러한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지지통신>은 이날 자민당 외교 정책 합동회의에서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대응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잇달았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회의에 참석한 외무성 간부는 지난 23일 열린 한일 외교 장관 회담에서 고노 다로 외무상이 G20 정상회의까지 (한국 정부에) 해결책 제시를 요구했다"며 "G20 에서는 정상 회담에 우선 순위를 둘 필요가 있는데 현 상태로서는 한일 정상회담 개최는 어렵다는 인식을 나타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와 한일 정상회담을 결부시키면서 실제 G20 계기 한일 정상회담 성사가 어려울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이 있었음에도 한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일본의 주장과 사법부의 판단에 행정부가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우리 정부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본의 압박 전략은 외교적 관행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취임 2주년 언론 회담을 통해 "아베 총리와 회담을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며 우호적 의지를 보였음에도 정상 간 회담에 집권당과 관료들이 정치적 현안을 조건으로 내걸며 저울질하는 모습은 외교적 결례로 비쳐진다.
고노 외무상이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며 대통령이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언급한 데에 대해 지난 23일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이 "일본 기업이 우리 대법원 판결을 이행할 경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응수하면서 양국 간 감정의 골도 깊어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 의지를 수차례 피력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일본 정부가 한일 정상회담을 지렛대로 삼아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압박하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겠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한 이번 G20 정상회의 주최국인 일본으로서도 문 대통령을 초청해 놓고 양자 정상회담을 갖지 않는 모양새는 결국 피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있다. 일부 일본 언론에서도 G20 의장국으로서 한일 정상이 마주할 모처럼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며 아베 내각의 강경론에 제동을 거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만 우리 정부 역시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사법부 판단 불개입' 방침만 되풀이하지 말고 최악으로 치닫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병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G20 정상회의 계기를 놓지면 한동안 양국 정상이 얼굴 맞댈 기회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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