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의 회동으로 청와대가 곤혹스러워졌다. 정보당국 수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인사의 만남이어서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심을 사는 데다 야당은 이 문제를 국회 정상화의 선결 조건으로 이슈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8일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두 사람의 만남이 국정원의 정치 개입과 무관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과도하다"고 말했다. 만남 자체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사적인 만남으로 알고 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확하게 그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는지를 알 수 없다"며 "그것과 무관하게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에 대한 기존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거듭 "서 원장과 양 원장의 만남은 청와대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라면서, 서 원장과 양 원장의 회동이 국회 정상화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청와대에서 뭐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야 간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 많은 노력들이 진행이 되고 있고, 다만 여러분에게 확인드리기 위해서는 조금 더 무르익어야 해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거리를 뒀다.
청와대의 이 같은 언급은 서 원장과 양 원장의 회동 자리가 독대가 아닌 언론인이 포함된 사적인 소통 자리였던 만큼, 정치 개입으로 볼 수 없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입장과 일치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원의 탈정치화'를 내세우며 국정원의 국내정보담당관제를 폐지하는 등 국정원 개혁을 추진해온 점에서 서훈 원장의 처신이 적절했느냐는 여전한 논란거리다.
특히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6월 청와대에서 서 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국정원의 궁극적이고 완전한 개혁 방안은 앞으로 좀 더 논의해서 좋은 방향을 찾아야 하는데, 그때까지 우선적으로라도 국내 정치만큼은 철저하게 금지하는 것은 국민들께 우리가 여러번 드렸던 약속인만큼 꼭 좀 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서 원장은 이에 대해 "취임하면 바로 첫 번째 조치로서 국내 정보관의 기관 출입을 전면 폐지하겠다"면서 "통상 IO(국정원 정보관)라고 부르는, 부처, 기관, 단체, 언론 이런데 출입하는 정보관들을 폐지하겠다"고 밝히고 그날 바로 IO 폐지를 국정원에 지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서 원장은 IO 폐지로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이 약화돼 자신이 직접 그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원장과 양 원장의 회동에 동석했던 현역 언론인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관련 대화는 없었다면서도 서 원장이 "예전에는 국정원에 '국내정보 담당 조직'이 있어서 여론 수렴도 하고 소통도 했었는데, 이제는 모두 국정원장이 직접 해야 한다고 한다"고 말했으며, "그래서 시간 나는 대로 여야 정치인이나 싱크탱크, 전문가, 언론인과 소통하려고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편 강효상 의원의 한미 정상통화 유출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자유한국당은 '서훈-양정철 회동'을 적극적으로 이슈화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한국당 의원들이 이날 오후 국정원을 항의 방문한 데 이어, 당 차원에서 서 원장을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이날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황교안 대표는 "한 사람은 총선 준비하겠다고 나와서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이고, 또 한 분은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있다"며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시기에 두 분이 만난다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라며 "아무리 사적 만남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만나서는 안 될 때"라고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결국 관권선거가 시작된 것 아닌가하는 강한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면서 "한국당은 과연 왜 만났는지, 무슨 대화가 오고갔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국회 정상화가 되기 전이라도 정보위를 열어 진상을 파악해야 한다는 바른미래당과 달리, 나 원내대표는 "당 차원이나 국회 차원에서 서 원장을 부르는 여러 방법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을 다 고려해 보겠다"고만 말했다. 정보위 개의보다 당 차원에서 서 원장과 양 원장의 만남 자체를 이슈화하는 쪽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국회 정보위원장인 바른미래당 소속 이혜훈 의원은 "한국당의 반대로 국회 정보위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한국당이 정보위 소집에 비협조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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